201206
1
어느덧 12월이다. 어느덧 내년이 될 것이다.
2
내년은 올해가 아니다. 올해는 오는 해가 아니다. 올해는 가고 있다.
3
눈 깜짝할 새 올해가 끝나가고 있다는 진부한 표현은 쓰지 않기로 한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가고 있는 것은 올해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지만,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
4
한 달이 끝나갈 때마다 몇 편의 시를 썼는지 확인을 하곤 한다. 올해에는 지금까지 15편의 시를 썼으므로, 대략 한 달에 한 편 내지는 두 편의 시를 쓴 셈이다. 물론 전자가 일반이며 후자가 특수다. 이제는 이런 빈도에 익숙해지고 있다. 올해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이것이다. 일주일에 두 편을 쓰던 삶에서 한 달에 두 편(이라고 해두자)을 쓰게 된 삶의 낙차를 견딜 수 있게 된 것. 이를테면 굳은살이 된 멀미.
5
굳은살은 반투명한 재질이다. 그 안에 갇힌 것은 멀미다. 나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면 생기는 물질. 반투명의 시간에 갇혀 있으면 모든 것이 무뎌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극심한 통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6
투명한 것들은 모여서 흐린 것이 된다. 반투명의 시간은 알고 보면 투명한 시간들이다. 투명하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든 아픈 것이다. 시간은 본래 투명하고, 투명이란 목숨을 던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시간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시간 속으로 나의 목숨을 던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실존은 기투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7
멀미를 느낀다.
8
올해가 끝나기 전에 원고를 묶을 것이다.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이 쓸 것이다. 더 많이 읽기도 한다면 좋겠지만,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다.
9
올해는 오는 해가 아니다. 그러나 쥐뿔도 상관이 없다. 이러나 저러나 시간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것은 내가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던지는 곳에는 내가 있다. 다시, 굳은살이 된 멀미.
10
올해는 오는 해도 가는 해도 아니다. 나는 늘 올해라는 시차에 갇힌다. 다가올 해에는 얼마나 많은 투명의 시간을 겪게 될까.
11
수를 헤아리는 것은 나를 괴롭게 한다. 그것이 투명한 것이라면 더더욱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다. 시간은 오지도 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굳은살을 뜯는 악취미가 있다. 투명한 것들이 모여 흐린 것이 되고, 흐린 것은 투명한 것이 되기 위해 흘려야 할 것이 있다.
12
12월의 창가에는 김이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