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6
읽는 내내 에셔의 그림이 떠올랐다. 작품 내에서, 작품 간에서, 심지어 전작과도 서로 교차하며 이어지는 순간들이 경이로웠다. 에셔의 입체 착시 그림들을 보면서도 알 수 있듯,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세계는 결국 하나의 거대한 닫힌 세계이다. 다시 말해 영원이라는 순간 속에서 열림과 닫힘은 서로 마주 접히게 된다. 우다영의 소설들은 이처럼 꿈과 현실을 오고가며 끝없이 열리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그려낸다. 그 세계는 수많은 가능세계들이 무수히 얽힌 채 펼쳐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의 환상곡(幻想曲)이자 환상(環狀)의 세계이다.
“이토록 불가해한 모습으로 연결된 세계를 발견할 때면, 나는 정말 우리가 우리를 기억하듯 과거로부터 온 존재가 맞는지, 어쩌면 닭과 달걀의 무한하고 단순한 연쇄처럼 미래로부터 시작되어 영원 속에 갇힌 영혼들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253)
닫힌 영원 속에 갇힌 영혼들은 닭과 달걀처럼 무한한 연쇄 속에서 무수한 경우의 수들을 살게 된다. 그리고, “광대한 경우의 수가 있었다는 자각은 언제나 우리에게 삶에 대한 경외감을 준”(139)다. 우리에게 까마득히 펼쳐진 수많은 가능세계들에 대한 경외감은 곧 그러한 가능세계들이 서로 꼬인 채 끊임없이 순환하는 하나의 거대한 닫힌 세계에 대한 경외감으로 이행한다. 그렇다면 이 세계가 하나의 정해진 운명처럼 운행되는 세계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세계를 무수한 가능세계들의 배열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환상곡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세계는 아직 눌리지 않은 건반 같은 거야. 곡의 진행 안에 눌리는 횟수와 순간이 정해져 있어.” (143)
무수한 가능세계들이 눌리지 않은 건반처럼 배열된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이제 우리에게 암호처럼 반복되는 물결처럼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언제나 해변에 있다.
“세상은 검고 달콤한 물이 닿는 모든 곳이었고, 솟아오르는 물과 가라앉는 물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모두 다른 물결이 연속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덩어리라는 사실이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우연하게 만들어진 순간이 아니라 유사하게 반복되며 배열을 만드는 세계의 암호처럼 느껴졌다.” (229)
그리고 그 해변에서 우리는 까마득히 돌아오는 이 세계의 어느 순간, 그러니까 나와 너와 우리와 사랑의 기원 따위를 찾아나서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 마음도 이름 모를 수많은 해변에서, 까마득히 오래된 우주에서 이미 시작된 걸지도 몰라.” (132)
“나를 만든 것,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어째서 먼지나 소음 속으로 흩어지지 않을까요?” (240)
닫힌 영원의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언제고 기원 없는 우리의 기원을 찾는다. 그런 영원은 영원 속에서 영원하다.
“살짝 꼬인 채 연결된 당신을 만나려고. // 꿈은 밤보다 길고, 어떤 하루는 영원과 같다.” (작가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