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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Apr 03. 2024

뇌경색 6개월, 지팡이 졸업했습니다.

뇌경색과 재활훈련

지난주부터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외출할 때나 지하철로 사무실에 나갈 때도 긴급 상황에 대비해 지팡이는 접어서 가방에 넣어 다니기만 한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지 6개월 만이다. 지팡이로 짚고 걸으면 조금 더 빠르고, 안전하게 걸을 수는 있지만, 지팡이에 너무 의존하게 된다. 그러니 걸음이 과하게 빨라지고 걷는 자세도 몸도 비뚤어진다. 뿐만 아니라 지팡이를 짚지 않는 왼쪽 어깨에는 통증도 생겼다. 자주 스트레칭도 하고, 재활치료 시간에 어깨 훈련을 하고, 마사지를 받기도 하지만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 재활치료사 선생님은 삐뚤어진 골반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언젠가는 버려야 할 지팡이, 지팡이를 졸업하고 조금 더 천천히 올바르게 걸어 보기로 했다.

뇌경색 재활 골든타임 6개월


‘뇌경색 재활의 골든타임'이라는 6개월은 참 빨리 지나갔다. 재활에 집중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며 추웠던 겨울을 잘 견디어 냈다. 일반적으로 6개월, 180일이 지나면 장애가 회복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뇌졸중으로 입원하여 건강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도 6개월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지나간 6개월을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였다. 맨발 걷기를 하다 알게 된 소양섭 목사님께 퇴원 후 만나 뇌경색 스토리를 들려 드렸더니, 이런 경우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섭리’라고 한다고 일러 주셨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만약 혼자 있던 집에서 쓰러졌더라면 과연 골든 타임 안에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산으로 출발하는 집 현관에서 배낭 속의 호루라기는 손에 잡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 주고, 꺼내기 쉬운 곳에 다시 보관하도록 해 줬을까? 어떻게, 생면부지(生面不知)인 다카다(高田) 씨는 인적 드문 등산로에서 天仁의 호루라기 소리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셨을까? 경찰과 구급대를 불러 주고, 바닥에 쓰러진 天仁에게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옷을 입혀주고, 편마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天仁을 대신해 우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주셨을까?


휴일이었는데도 어떻게 우원장님은 바로 전화를 받으셔서 "뇌경색인 것 같다"는 판단과 함께 "한시라도 빨리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방향까지 정해 주셨을까? 덕분에 구급차를 뇌신경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가도록 부탁해 골든 타임 내에 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휴무 중이었는데, 국립 재해병원의 뇌신경과 넘버 2 의사 후루키 선생은 어떻게 응급 콜에 한걸음에 달려와 일사천리로 天仁을 치료해 주셨을까?


혈전은 전두엽에 대미지를 주어 좌측 팔다리를 마비시켰지만, 어떻게 언어, 인지 부분은 피해 갔을까? 덕분에 구조를 요청하고, 골든 타임 내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었고,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일본 최고 시설인 고탄다 재활병원(五反田リハビリテーション病院) 병원에 입원하여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개호보험의 심사에서 요개호(要介護) 2등급이 나와 부담 없는 비용으로 필요한 여러 가지 개호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재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도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다. 퇴원 후에도 실력 있고 인정스런 재활 치료사 선생님을 만나 재활훈련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나간 6개월을 되돌아보면, 위기의 순간순간마다 귀인들이 나타나 天仁을 구해 주셨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이고, 기적이다. 아내와 노모,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가 만들어 낸 기적이 아닌가 한다.


天仁님은 제 환자 중 가장 젊은 분


3개월간의 급성기 병원과 재활병원의 입원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성기 병원의 주치의 후루키(古木) 선생님은 “天仁님은 제 환자 중 가장 젊은 분입니다. 재활하면 이전의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재활의 의지와 용기를 주셨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상태였지만, 그 격려가 기적 같은 회복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초등학교 친구의 문자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아라고 생각하라" 며 "긍정의 힘으로 병을 이겨내라"는 응원과 격려도 진심으로 가슴에 와닿았다.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던 재활병원에서는 매일 명상을 했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휴가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도 편해져 재활훈련도, 힘든 시간들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퇴원 후에는 오전은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오후에는 전철을 타고 사무실에 나가는 ‘생활기 재활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월수금 주 3일은 재활 치료사 선생이 집으로 오셔서 함께 '방문재활훈련'을 한다. 퇴원 후 다니고 있는 뇌신경외과 주치의 선생님과 의논하여 한방병원의 침치료, 집부근 접골원 유도정복사(柔道整復師) 선생님의 도수치료, 마사지와 저주파 전기 치료도 받고 있다. 한방 침치료에 대해서는 주치의 선생님께도 의논을 드렸다. 주치의 선생님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침치료, 도수치료가 마비된 팔다리를 자극하여 감각 회복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치료를 받아 보라고 해 주셨다. 격주에 한 번은 동맥경화 재발 방지를 위해 EDTA 킬레이션 주사도 맞고 있다. 덕분인지 혈압약을 먹지 않고도 정상 혈압을 유지하고 있다. 그 외 혈당수치,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등의 수치도 모두 정상이다. 경동맥 초음파 검사에도 이상은 없었다. 체중도 잘 유지되어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BMI도 병원의 권장수치인 22를 유지하고 있다.   


발병 4개월 째였던 지난 1월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고, 숨쉬기가 곤란한 증세가 있었다. 심혈관 전문병원에서 응급으로 심장 CT, 24시간 심전도 등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그럼 가슴은 왜 답답했던 것일까? 그 답은 한방병원에서 찾은 것 같다. 설날과 그 한 달 후였던 선친 기일에 한국에 다녀왔는데, 부산대학교 한방병원과 대전의 고려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부산대 뇌졸중센터에서는 권정남 교수님, 이 인 교수님의 진찰과 침치료를 받았고, 심적환과 한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심적환과 한약을 한 달 정도 먹고 있는데, 그 효과인지 가슴이 답답함, 숨쉬기가 곤란한 증세는 없어졌다.


거래처가 있는 대전에 들릴 일이 있어서 고려한의원에도 다녀왔다. 회사 소속이었던 이오순 프로골퍼님의 소개를 받았다. 天仁이 방문했을 때 좁지 않은 한의원은 환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지방에서 오셔서 주변의 숙박시설에서 두어 달씩 지내면서 김재호 원장님께 침을 맞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운 좋게 김재호 원장님의 진찰과 진맥을 받았고, 침도 맞을 수 있었다. 원장님은 天仁의 뇌졸중 회복 속도가 기적같이 매우 빠르다고 하셨다. 짧은 예정의 선친 기일에 참석 후 일본으로 돌아 올 예정이어서 침을 더 맞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KBS 인간극장에 소개되었다는 대마도에 사는 한일부부의 주인공인 부인 '스즈키 준'씨도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1개월 정도 김재호 원장님의 침지료를 받고 많아 호전되어 일본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마침 남편인 이용철 님의 누님이 이프로님의 지인이라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김재호 원장님도 가슴 답답함에 대해 심장에 열이 있는 ‘심열(心熱)’로 진단하시고, '구기자차'와 '산수유'차를 자주 마시라고 권하신다. 두 가지는 3개월 정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준비해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외부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뇌 가소성'


아직 두 가지 동작을 동시에 하는 이중과제(Dual-task)에는 편마비가 심했던 왼쪽 팔과 다리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손이 자신의 뜻대로가 아닌, 마음대로 움직이는 신경 질환'인 '외계인 손 증후군(alien hand syndrome, anarchic hand, AHS)' 때문이다. 두 손을 함께 사용해야 하는 병마개 따기가 어렵고, 셔츠 단추를 잠그고 푸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PC를 타이핑할 때 왼손으로 Shift 키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다른 자판을 쳐야 할 때도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동작을 멈추고 새로운 뇌 세포가 동작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도록 한 동작 씩 나누어 천천히 다시 행동한다. 뇌세포는 일부분이 죽더라도 재활 치료 등을 통해 그 기능을 다른 뇌세포가 대신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뇌경색, 재활 건강 관련 책도 30여 권 읽다 보니 ‘뇌가소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움직임이 늦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다시 시도하곤 한다. 갑갑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가능하면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트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오른다. 처음에는 몇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이젠 천천히 안전하게 잘 오른다. 발의 감각도 많이 좋아졌다. 다른 사람이 왼쪽 발가락을 만지면 잘 알 수가 없었는데, 조금씩 감각도 돌아오고 있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일상생활을 하면서 재활을 계속하면 발병 후 2년까지도 마비되었던 감각이 돌아온다고 한다. 지금부터 또 6개월이 지난 후에는 6살이 될 히마리도 번쩍 들어서 안아보고 싶다. 다카오 산에도 올라보고 싶고,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달려보고도 싶다. 잠자리에 들 때는 늘 그런 모습들을 그려본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운이 좋아 “라고 말한다. 늘 감사하는 마음, 긍정의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급성기 병원에서 혈전을 녹여 막혔던 혈관을 뚫었고, 회복기 병원에서 재활 훈련을 계속했다. 일반적으로 발병에서 재활병원 퇴원까지 약 6개월 소요된다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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