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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Jan 06. 2025

2% 부족한 배려심과 김해공항의 안전 시스템

연말연시 부산 여행기

#. 침치료받으러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9일간의 연말 연휴에 부산에 다녀왔다. 한의원에서 침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아내가 지난 11월부터 부산에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를 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아 미적대고 있다가 임박해서야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저가항공을 탔는데도 항공료는 평소 요금의 2배나 되었고, 자리를 확보했음에 감사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침치료의 효과인지 후유증이 심한 발 감각의 일부가 돌아온 성과는 있다. 어느 발가락을 만져도 모두 네 번째 발가락을 만지는 것으로 느껴졌던 왼발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발가락의 감각이 조금은 돌아온 것 같다. "비싼 여비 들여서 오셨는데"라는 농담을 하시면서 휴일도 마다하지 않고 성심껏 치료해 주신 서원장님의 정성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 부산

부산에서 태어난 天仁은 서울에 살면서 "여유가 조금만 있다면 부산은 참 살기 좋은 곳"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부산은 서울에 비해 물가가 싸고, 아름다운 바다와 신선하고 맛난 해산물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홍콩에 출장을 갔을 때 숙소 옆 바닷가의 고층건물이 만들어 내는 야경에 감동하여 홍콩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해운대는 홍콩보다 더 아름다운 곳으로 변신했다. 아직 걷기가 불편하고 체력이 떨어져 장시간 앉아있기가 어렵다. 때문에 외식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연하리 송정 본점의 생선구이는 인당 1만 8천 원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선하고, 맛과 분위기가 압권이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올라갔던 쿠무다호텔 옥상에서 내려다본 송정 해수욕장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했던 해수욕의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동해남부선의 폐선 부지 그린레일웨이를 달리는 관광열차를 타고 있는 시민들의 표정, 걷거나 조깅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예전에 동해 남부선 열차를 타고 미포를 지날 때도 좋았지만, 연하리 식당옆 그린레일웨이에 서서 바라보는 송정 바다는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답다. 그렇다. 부산은 참 아름다운 도시다.


#. 2% 부족한 배려심

그런 좋은 추억을 깨뜨리는 아쉬운 경험들도 있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플랫폼에 지하철이 들어오면 승객이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도 여러 명이 동시에 다투듯이 올라탄다. 그러니 내리려는 사람과 타려는 사람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일본 지하철역에서는 전철이 플랫폼에 들어오면 승객이 내리는 문 앞에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전철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내리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문 양쪽으로 비켜서서 길을 터 준다. 물론, 미리 플랫폼 바닥에 부채꼴 모양으로 그어놓은 선에 맞추어 서서 전철을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은 내릴 사람들이 모두 하차 한 뒤에 전철에 오른다. 전철이 만원일 때 전철 안 문 주변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전철에서 내렸다가 다시 탄다. 하차할 사람들이 편히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부산 지하철 플랫폼 바닥에도 부채꼴로 줄 서는 위치를 표시해 두었는데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 안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한다.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는 일본의 '헬프' 배지를 가방 앞에  매달아 상대방이 볼 수 있도록 했지만, 헬프 배지의 의미를 모르는 우리나라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헬프 배지를 달고 있으면 공공교통의 우선석을 양보해 주거나, 길을 걸을 때도 부딪히지 않도록 배려해 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방문이 처음인 天仁네 옆집 히마리네 가족의 한국행에 아내가 동행했다. 김포공항에 내리니 입국장의 외국인 줄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더란다. 집에서 하네다 공항으로 이동하여 비행기까지 탔으니 2살, 4살인 아아들이 얼마나 피곤했을까. 지친 아이들이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안쓰러워 아내가 세관 책임자에게  부탁을 했다. "아이들이 너무 지쳐 있으니 아이들 만이라도 좀 빨리 통관을 시켜 줄 수는 없겠느냐"라고. 그랬더니 그 책임자가 "청탁을 하지 말라"라고 하더란다. 그런데, 출발 전 하네다(羽田) 공항에서는 같은 상황에 전혀 다른 대처를 경험했다. 주말이라 天仁도 공항에 배웅을 나가 있었는데, 긴 입국장 줄에 히마리 가족과 아내가 줄을 서 있자, 순찰 중이던 세관 직원이 다가왔다. "어린아이들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자"며 일행을 인솔해 먼저 통관을 시켜 주었다. 우리나라 세관직원은 '청탁'과 '배려'의 뜻을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 허술한 김해공항의 안전시스템

이번에 일본으로 돌아오는 김해공항에서는 정말  황당한 일을 겼었다. 1월 5일 일요일 아침 8시 20분 출발 비행기라 6시에 도착했는데, 공항은 벌써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로 보인다. 天仁처럼 해외에 거주하며 연말 휴무를 고국에서 보내고 다시 돌아가는 분들인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공항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우선 항공사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 항공사 직원은 예전에는 증빙 없이 발행해 주었던 '교통약자 스티커'를 줄 수 없다고 한다. 교통약자 스티커가 있으면 출국장에 들어갈 때 별도로 라인을 통해 들어가기 때문에 혼잡을 피할 수 있다. 일본 공항에서는 늘 교통약자오 배려해 주는데 우리 공항은 뭔가 제도가 바뀐 모양이다. 담당자는 매니저와 의논했지만, 天仁의 핸드폰에 사진으로 저장해 둔 '개호보험 요개호 2급 보험증은 교통약자의 증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도움을 받고 싶으면, 출발 40분 전에 체크인 카운터로 오라고 한다. 직원이 이미그레이션까지 동행해 주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30분 정도면 탑승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바쁜 항공사 직원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혼자서 줄을 서서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3층 식당가에서 곰탕을 한 그릇 먹고 2층 출국장으로 내려왔는데, 어디에 줄을 서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출국장은 공항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데, 줄을 서야 하는 위치 표시나 안내문도 없다. 결국, 줄을 서 있는 분에게 출국장으로 향하는 줄임을 확인하고 맨 뒤에 줄을 섰다.


줄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눈앞에 출국장 입구가 나타났다. 그런데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한 곳이 아니라 6개 정도 보인다. 왼쪽 3군데는 사람이 여권을 체크하는 것 같고, 오른쪽 3군데는 검색대처럼 보이는데 위에 '등록고객전용'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처음 보는 표지인데, 아직 이미그레이션이 아니니 '등록'이 지문등록을 뜻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입국장 입구에는 좌우 양측에서 온 줄이 여섯 개로 합쳐져 출입구로 향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등록고객전용'으로 갈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옆 줄에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성 3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등록고객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들은 입국장의 반대편을 가리키며 "‘바이오 등록’을 한 사람만 등록고객전용 게이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등록해 두면 신분증 확인 없이 들어갈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합니다."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그런 제도가 있었나? 그렇지만 지금은 등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직원이 직접 여권과 항공권을 확인해 주는 줄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막 이야기를 마쳤을 때 오른쪽 사전 등록게이트 쪽 줄의 어떤 사람이 아주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天仁이 "뭘 물어보는 것처럼 하면서 새치기를 했다."는 것이다. 정말 황당한 일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겹겹이 몇 줄로 서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들어와 새치기를 할 수 있었을까, 어이가 없어 대꾸할 가치도 없지만 안타깝다. 복장을 보니 해외여행을 출발하는 것 같은데, 즐거운 여행길에 왜 저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할까? "새치기가 아니다. 오해를 하신 것 같다"라고 간단히 말한 뒤 무시하기는 했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1시간 정도 걸려 출국장에 들어갔지만 첩첩산중, 검색대로 향하는 줄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약해진 체력, 탁한 공기 속에서 오래 서 있어서 그런지 속이 메스껍고 어지럽다. 후회 막급이다. 그냥 출국장 밖에서 커피나 한잔하고 있다가 항공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 들어오는 것이 나았는데, 일본에서 처럼 많은 시긴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줄 서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도 간혹, 홀로 산속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가 떠올라 힘들다. 혹시라도 쓰러질까 두려운 마음에 서 있던 줄에서 나와 가장자리에 있는 교통약자 통로로 가서 항공사 직원에게 도움을 구했다. 덕분에 조금 빨리 륙색의 보안 검사를 마치고 자동출입국 심사 게이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출국 신고를 마친 후 탑승구 제일 앞의 의자에 앉아 탑승을 기다렸다. 실제 거리는 5백 미터도 되지 않을 텐데, 출국장에서 줄을 선 후 1시간 30분이 걸려 탑승구까지 왔다. 아직 탑승시간 전이라 줄을 서지도 않았는데, 항공사 직원이 다가오더니 탑승이 편리하도록 사전에 체크인을 해 주겠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헬프 배지를 본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 자리에 앉으니 여러 생각이 또 오른다. 오늘 황당한 경험을 했던 원인은 이용객들의 줄 서기를 유도하는 바리케이드 파티션(차단봉)을 설치하지 않은데 있다. 항공사별 예약 상황만 봐도 어느 정도의 이용객이 몰릴지 알 수 있을 텐데 김해공항을 관리하는 공항공사에서는 왜 바리케이드 파티션을 세우지 않았을까? 정말 의문이다. 이태원 압사사고의 악몽이 다시 떠오른다.   

 

#. 가장 좋은 선물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주는 것

문득 전에 함께 일했던 사장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흔히 말하는 '영업통' 이셨다. 많은 것을 배웠는데, 대표적인 것이 '배려심'이다. 그분의 생각은 늘 고객, 상대방을 향해 있었다. 서울에 근무하고 있었을 때 아주 중요한 거래선의 고객을 모시고 도쿄에서 열린 업계회의에 출장을 왔던 적이 있다. 동행하다 보니 접대 아닌 접대가 되었고, 당연히 최고의 저녁 식사장소와 이후의 일정까지 모두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저녁이 끝나고 예약된 다음 장소로 모시려고 하는데, 고객께서 오래전 출장 때 들렀다는 한국 음식점에 가 보고 싶다고 한다. 말씀을 들어보니 그곳은 잘 알려진 곳도 아니거니와 예정된 장소보다 좋은 곳도 아니다. 그래서 사장께 본래 계획대로 이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천만의 말씀, 고객께서 가보고 싶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니, 그 한국식당으로 가자"라고 한다. 결국, 그날 저녁은 고객님의 추억이 남아 있다는 아카사카(赤坂)의 조그만 한국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안주삼아 2차로 한국 소주를 마셨다. 선물이란 무엇인가?, 접대는 무엇인가? 갖고 싶고, 받고 싶었던 것을 받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고 접대 아니겠는가. 늘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배려심이 있다는 것이다. 天仁의 생각이 짧았다. 허름했지만 일본의 한국 식당에서 즐거워하셨던 고객님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경제력만큼 시민의식도 높아져야 선진국

2023년 우리나라의 1인당 GNI*가 일본을 추월했다고 몇 달 전 우리나라 신문들이 대서특필 했다. GNI는 달러로 표시되는 만큼 환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일본의 경우 기록적인 엔저의 영향으로 실적이 낮아진 점도 있기는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성장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GNI가 세계 6위 가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 서울에서 열렸던 대규모 시위가 끝난 뒤에 쓰레기를 깨끗하게 치운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시민의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한국여행 경험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부르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의식과 사회 시스템도 함께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져야 한다. 우리가 역사적인 문제로 일본을 욕하고 깔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살아보면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매우 높고, 그 근저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있음을 느낀다. 일본의 디지털화는 우리보다 훨씬 뒤지지만 일본 사회 전반의 시스템에는 '배려와 공정'이 깔려 있다. 그래서 혹자는 더더욱 일본을 가장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말하기도 하기도 한다.


주*) 국민총소득(GNI): 국민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합계. 이를 인구수로 나눈 1인당 GNI는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자주 활용된다.(출처; 인터넷 조선일보)


송정 쿠무다 호텔 옥상에서 바라본 송정 해수욕장과 다릿돌 전망대.  
항공사 카운터 앞에는 줄 서기를 유도하는 파티션이 설치되어 있는데, 엄청난 이용객이 몰린 출국장 앞에는 왜 파티션을 설치하지 않았는지 정말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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