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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다유 Mar 21. 2022

사랑으로 시작해서 우정으로 살지 않는 결혼 유지법

결혼기념 여행, 낙산사와 양양 쏠비치 리조트


'결혼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우정으로 산다' 고 했던가?

난 그런 말에 찬성할 수 없다

결혼생활에 우정만 들어간다면 얼마나 삭막한가

부부가 친구처럼 다정하다는 말도 들어가겠지만 우정은 말 그대로 친구 사이다


남편과 27년을 살았다

첫 만남에서 가졌던 그 감정은 이미 사그라 들었다


유퀴즈에 나온 뇌과학자 말씀에 따르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2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랑의 감정 속에 들어간 두근거림을 일으키는 아드레날린이 계속 분출되며 폭발이 계속 이어진다면 뇌가 과부하가 걸려 사람은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결혼 선배들의 조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데 무슨 후회가 올까?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씌여졌던 보자기가 스르르 걷히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장점이 단점이 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 놀라고 당황했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열심히 살았다


.

.

.


둘만의 결혼기념일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것은

두 아들을 두고 가도 불안하지 않을 때부터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려 광고 속에 등장하는 '가족끼리 왜 이래?' 하는 말에 '바로 우리네,, ㅋ' 하면서 서로 웃다가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 맞을까,, 하는 것에 미쳤고 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결혼기념일 여행 장소는 강원도 양양으로 정했다

코로나로 거의 집에만 있다 보니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었다




양양 터널과 내린천


우리나라 최장 터널인 인제 양양 터널을 지나는데 터널 안에 무지개 빛이 보인다

워낙 긴 터널을 지나다 보니 터널 중간에 졸음방지를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무지개 불빛 샤워 구간을 지나면서,

어쩌면 결혼이라는 긴 터널 속에 우리가 떠나는 여행도 '잠시 두 사람만의 시간을 통해 쉬어가라' 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탁 트인 내린천이 보인다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고 높은 산봉우리들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물이 계속 반복되는 터널로 피로한 눈을 환하게 밝혀준다




아, 낙산사


셀 수 없는 터널을 지나 2시간 30분 만에 낙산사에 도착했다

평일이고 비까지 내린 추운 날씨라서 그럴까? 아니면 우리 부부 오롯이 지내라고 다들 자리를 비워준 걸까?

오늘은 우산 하나로 평소 안 하던 팔짱을 낀 우리 부부 말고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산 하나를 같이 쓰면서 팔짱을 끼고 함께 걸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결혼 기념 여행은 잠깐 잊었던 데이트 감성을 소환한다


서울에서는 보지 못했던 벚꽃이 이곳에서는 수줍게 피어있다

봄비를 맞으며 꽃봉오리를 피우고 있는 연분홍 꽃잎이 곱고 예쁘다



낙산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 세워져 있다. 1467년 세조가 행차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각 고을에서 한 개씩의 석재를 추렴하여 건립했다고 한다


조카의 자리를 탐해 왕의 자리를 앉은 세조는 어떤 마음으로 홍예문을 지나갔을까,, 힘들게 석재를 추렴하고 운반해서 만들었을 백성들의 마음을 잘 헤아렸기를 바라면서~~


낙사사 입구로 들어서자 사천 대왕이 보인다

어렸을 때 절에 가기 싫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저 무시무시한 사천 대왕의 모습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은 오히려 정감 있고 귀엽기까지 하다

옆에 남편을 바라보면서 나를 강인하게 만들어 준 결혼 동반자를 슬쩍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불의 화마를 이겨낸 칠층석탑


2005년 양양 산불은 낙산사를 초토화시켰다

목조건물로 지어진 대부분의 전각은 원통보전을 비롯 불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중에 보물 제499호 칠층석탑은 화마를 견디어 냈다

의상대사가 이 탑을 처음 세울 때 3층이었던 것을 1467년 7층으로 만들어 낙산사의 보물인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화마를 견디어낸 힘은 무엇일까?

자신의 몸 안에 봉안된 영묘한 구슬의 힘은 아니었을까?



해수관음상의 위용

낙사사 경내를 돌아 천천히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탁 트인 넓은 평지가 나온다

그곳에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해수관음상이 있다


압도당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바다를 바라보며 활짝 핀 연꽃 위에 서서 왼손으로 감로수병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가슴 쪽에서 들어 수인을 짓고 서 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해수관음상 발치 아래 서서 고개를 천천히 들어 거대한 석상을 바라본다

해수관음상도 나를 지긋이 내려본다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하듯이


검게 그을린 돌담을 바라보며

참혹한 화재 현장의 모습이 곳곳에 배여있다

산불로 검게 탄 돌담 안쪽 마당에는 봄꽃이 만개해 있다

서로 대비가 되는 모습 속에 희비가 교차된다


결혼도 많은 희비가 씨실과 날실로 엮여진다

그 희비를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이 두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던 것 같다

첫아이를 가졌을 때 서로 부둥켜안으며 좋아했던 그 마음은 태교를 하면서도 '꼭 아빠 같은 사람이 되어야해' 라며 뱃속의 아이에게 속삭였다

둘째 아이는 달랐다. 거래처 접대를 이유로 매일 밤 술 먹고 늦게 귀가하는 남편이 미워 뱃속의 아이에게 아빠는 닮지 말라고 했었다

참 신기하게도 큰아이는 생김새도 아빠를 쏙 빼닮았고 술도 잘 마신다

그런데 둘째 아이는 나를 더 많이 닮았고 술 한 잔만 해도 얼굴이 벌게진다


장엄한 일출의 대명사, 의상대


관동팔경 중 하나인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산세를 살핀 곳이며, 좌선 수행처라고 한다


주변의 해송과 암벽 그리고 동해바다가 어우러진 대표적인 해안 정자로 의상대에서 맞이하는 일출경은 

낙산사의 으뜸가는 경관이다


비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바람 소리가 파도치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린다

너무 추워 손이 곱아 사진을 찍기도 힘들다


우리가 결혼했던 날도 이렇게 추웠다

결혼식을 올리던 그날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난 3월 중순인데 눈이 내렸다

야외촬영을 위해 창덕궁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덜덜 떨면서 바들거리며 웃음 짓던 풍경이 떠오른다

결혼식 축하를 위해 온 손님들은 궂은 날씨에도 이렇게 덕담을 해주셨다


' 눈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 부자 된다'

그 덕담 덕분에 우리는 잘 살고 있나보다


바람에 전하는 나의 소망등


의상대로 올라가는 길에 자신의 소망을 담은 쪽지가 작은 연등과 함께 바람에 흔들린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나도 속으로 소망을 담아본다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주세요

마주 보며 웃는 날이 많게 해주세요

양가 부모님 건강하게 오래 곁에 있게 해주세요

우리 부부 서로 아끼며 사랑하게 해주세요



늦은 아침을 차 안에서 주먹밥으로 대신했더니 허기가 진다

바로 급하게 낙산사 근처 맛집을 검색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을 훑어 보고 가까운 식당을 찾아갔다

블로그 리뷰에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극찬? 했던 오징어볶음과 황태 해장국을 시켰다

관광지 근처 식당의 한계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 아주 맛있다면 소개하겠는데, 난 그 맛집이라고 소개한 블로그처럼 못쓰겠다




우리들의 숙소, 양양 쏠비치 리조트


숙소를 선택할 때 세 가지를 고려했다


첫째 바다 전경이 보이는 곳

둘째 조식이 나오는 곳

셋째 욕조가 있는 곳

그렇게 선택한 곳이 양양 쏠비치 리조트였다


모든 숙소에 욕조가 구비된 줄 알았는데 작년 제주도 여행 때 샤워부스만 있는 것을 보고 이번엔 제대로 점검했다

미리 준비해 간 온천 입욕제를 풀고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더없이 행복하다




다음 날 아침 뷔페 조식을 먹고 해변 산책로를 거닐었다

이곳은 해변이 접해 있어 바다를 언제든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날씨가 추워 수영장 오션플레이도 선비치도 해수풀도 개장을 하지 않아 아쉬웠는데

여름에 아이들과 다시 와보고 싶어지는 곳이다


남편 덕분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를 바로 예약할 수 있었다

한 회사에 30년을 근무한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맙고 짠하다



1박2일 짧은 여행이었지만 우리에겐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안겨주었다

베란다로 보이는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남편과 와인을 마셨다


파도 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며

고마운 마음, 사랑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이제 결혼기념일 여행은 우리 부부의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우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몸부림이 둘 만의 오붓한 여행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우리 함께 오래 사랑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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