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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라쥬 Jun 30. 2020

꾸벅꾸벅 세상에 대한 긍정의 표현을 얼마나 했을까


 오래 전의 나는 '믿는 대로 된다'라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피그말리온 효과도, 육체적 회복력을 불러온다는 플라시보 효과도 들어보았다.

심지어 '확실한 것은 부정적인 것보단 긍정적인 것이 낫다'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삶에서 긍정의 기운은 내게 쉽사리 찾아보기가 힘든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자주 찾아드는 요즘이다.

(반성합니다.)


 이런 나에게 종종 아니 자주 깨달음을 주시는 이웃분이 계신다. 작년 하반기에 블로그를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거의 초창기부터 이웃이 되어주신 이웃님이다. 처음엔 여러 전시회 포스팅을 자주 올리시기에 상당히 부족한 나의 감성을 채워주고픈 욕망으로 이웃님의 블로그를 즐겨찾기 했었고, 지금은 대놓고 선무당인 내가 보기에도 전혀 선무당이 아닌 이웃님께서 늘 선무당인 척 스스를 낮추면서 양질의 포스팅을 올리시는 것이 좋아 여전히 즐겨찾기를 하고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며 그 어린 시절에 참 열심히도 배웠는데.. 알맹이가 여물긴커녕 아직 속이 제대로 들어차지도 않은 나도 뻣뻣하게(버르장머리 없이) 대놓고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이 시점에, 수확을 앞둔 것처럼 보이는 황금빛의 이웃님은 여전히 본인은 쭉정이라는 투로 툭툭 츤데레식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대신다.


 그러고 보니 젊은 시절의 나는 유난히도 운이 좋았다. 복권을 사면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꽝이 나와 손해 보는 경우라고는 없었다.(지금은 대다수가 꽝입니다만..) 어려운 시험이나 승진에 있어서도 크게 노력하지 않고도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결과를 받아보는 타입이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는 정말이지 별생각 없이 살던 나였다. 아니 적어도 나쁜 쪽의 생각은 아무것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일이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리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은데.. 덕분에 삶도 그럭저럭 순탄한 편으로 흘러갔던 듯하고..


'그런데 어쩌다.. 쯧쯧..' 하며 혀를 차기 전에 한번 생각해본다.

 

 사실 생각할 것도 없이 답은 튀어나온다. 미니미들이 태어나고 나서부터다. 젊은 시절 나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다지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미련도 없었고 하루하루 즐거우면 그만이었다. (물론 아주 대책 없이 사는 타입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달라졌다. 나는 이 세상에서 너무 귀하고 소중한 것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기에.. 무언가 소중한 것을 가진 사람은 늘 불안 한 줌을 가슴에 달고 산다. 행여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부터 출발해, 혹여 내게서 누군가 이 귀한 보물을 빼앗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쓰잘 데 없는 걱정까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냥 즐거우면 되는 거지만, 혹여라도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예상해서 방지하자.'라는 삶의 모토가 생겨난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언제 생겨날지, 아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다가오는 긍정의 기운을 한껏 받아들여 그대로 즐길 수가 없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법이며, 적응의 동물이다. 어느새 나의 패턴은 그렇게 정해져 버렸고, 이미 일상은 불안에 대한 최적의 방어 시스템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턱 하니 날아든 이웃님의 문장 하나.

  '꾸벅꾸벅 세상에 대한 긍정을 표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세상을 순수하게 긍정의 눈으로만 바라본 것이 언제였더라.. '휙!' 정답지가 날아들듯 눈앞에 떡 하니 보이면 좋겠건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이 또한 나의 뒤통수를 연타로 가격하는 듯한 느낌이다.


역시나.. 긍정적인 삶을 위한 주객이 전도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10년이라는 시간이 꾸준하게 흘러가 버렸던 것이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니 알고 있음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전에는 그리도 호의적이던 세상이 하루아침에 내게 적대감을 드러낼 리가 있겠는가 말이다.


 세상의 호의란 전에도 지금도 동일한 분포로 존재할 것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일부의 부정적인 면 또한 운이 좋은 아이로 통하던 그 오래전에도 분명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결국, 내게 불안감으로 인한 부정적 정신무장을 야기한 세상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기보다는 내 마음속 공간의 온도였음을 이웃님의 짧은 문장으로 다시금 인정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무튼 결론은.. 의식적으로다가 반복적으로다가 조금씩만 더 긍정의 기운으로 잘 살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나 뜬금없이 갑자기?! 그러게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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