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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모리 Mar 27. 2023

주변 사람들이 모두 금식한다면, 라마단을 통해 배운 것

토마토 - 토론토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



라마단이 시작됐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에서 9월로 무슬림에게 가장 신성한 달이다. 이 한 달 동안 해 지기 전까지 낮동안의 금식과 의무인 선행, 금욕을 해야 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물, 커피, 껌 등 일체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문장으로 쓰니 간단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니 영 쉽지 않아 보인다. 캐나다는 이슬람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캐나다에 사는 무슬림은 일상은 일상대로 이어가면서 금식을 해야 한다. 캐나다는 이슬람 국가가 아니지만 어쩐지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라마단을 시작했다. 나는 라마단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사람이 되거나, 그저 체험만 해보는 비주류의 사람이 됐다.


너도 라마단 해?


가볍게 던진 질문이 긴 대화로 이어졌다. 내가 일하는 카페 매니저는 이라크에서 왔다. 누군가 한국의 삶을 물어보면 나는 주 69시간 근무시간과 ‘올 타임 넘버 원’ 출생률 0.7% 를 냉소하는 사람이지만, 그는 다르다. 이라크는 여행 금지 국가, 내가 아는 이라크와 다른 이라크를 보여준다. 숫자와 정책 너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정함을 얘기하는 사람이다. 내가 라마단을 궁금해하자 갑자기 강의가 시작됐다. 라마단을 하는 이유는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을 살아보며 베푸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라마단을 행하는 아시아 국가 사람들은 암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한다. 몸속의 노폐물을 비워내 건강해질 수 있다, 등. 일부러 나를 위해 쉬운 영어로 설명해 주는 라마단의 얼개를 배웠다. 그리고 사람은 왜 종교를 가져야 하는가 -부터 우리는 죽음 이후 어디로 가고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닌 내겐 다소 생경한 주제까지. 무언가를 열렬하게 행하는 사람의 눈은 반짝인다. 나는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를 도무지 거절할 수 없다.


너도 라마단 할 거야?


3월에 라마단이 시작한다는 것은 1월부터 알고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온 친구는 라마단이 시작하면 일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전에 바짝 일을 해야 한다고, 바쁘다고 늘 말했다. 와 너 턱이 두 개야 살찐 거 봐. 라마단 되면 다 빠져. 너 오늘 약속 있어? 조금 있으면 라마단이라 일해야 돼. 일상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친구가 라마단에 진심이니 나도 달력에 라마단을 적어놨다. 같이 어울려 노는 다른 친구도 라마단을 할 거라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 무슬림이 많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고, 파티와 술에 진심인 그녀가 라마단을 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러면 나도 라마단 할까?


내 주변 사람들은 특이하지만 비슷하게 평범했다. 비슷한 교육을 받고 크게 다르지 않은 음식을 먹고 유사하게 고통받았다. 내가 아는 세계는 작아서 규범 밖에 있는 사람을 나는 잘 몰랐다. 한국이 아닌 캐나다, 이제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라마단을 시작한다. 나는 호기롭게 한 달간의 금주와 금욕을 선언했다. 


라마단 첫날. 카페 출근 전에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다. 라마단을 수행하는 매니저 앞에서 뭘 먹는 게 조금 신경 쓰였다. 매니저는 늦게 출근했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처음 이틀간은 재앙 같고, 나흘이 지나면 되려 건강한 기분이 든다나. Ramdan Mubarak! 라마단을 축하하는 인사를 건넸고, 그는 웃으며 고맙다고 얘기했다. 오후 네시쯤 되니 의자에 널브러져 거의 쓰러져 있는 매니저를 모른척하며 몰래 물을 마셨다. 같이 일하는 코워커는 우크라이나에서 왔는데, 브레이크타임에 크로와상에 누텔라와 바나나를 올려 먹자고 말했다. 나는 아침을 많이 먹어서 배고프진 않다고 했다. 그리고 매니저가 라마단을 시작했다고 귀띔했는데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낮 동안 물 포함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된대. 눈이 동그래진 코워커는 왜? 어떻게 살아? 하며 먹는 게 좋아서 못한다며 야무지게 크로와상을 구웠다. 나는 괜히 괜찮다고 했다.


퇴근 후 이프타르에 초대받았다. 이프타르(Iftar)는 금식 후 처음 먹는 식사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파키스탄 전통음식인 Pakora 튀기는 것을 구경했다. 모둠 야채튀김 같은데 카레향도 나고 맛있었다. 음식을 한가득 차려놓고 모두 둘러앉아 핸드폰 시계만 봤다. 7시 32분 갑자기 다들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나는 따라서 눈을 감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손을 포개 가슴 앞에 두고 무언가를 읊조리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아무 생각이나 했다. 와우 흥미로운걸. 매번 이렇게 한다고? 알람이 울리자 다들 대추야자를 건넸다. 대추야자와 과일샐러드를 시작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하루종일 굶은 친구는 근황 토크는 나중에 하라며 음식에 집중했고, 나는 웃기지만 웃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다.


하루 다섯 번의 기도와 낮 동안의 금식.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해온 라마단을 다들 자연스럽게 한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금식의 의미. 노숙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매일 사원에 물과 대추야자를 기부하고,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캐나다에서 일 구하며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채용하는 마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게 되려 배려와 이해에 고맙다고 온 문자. 그 자연스러움과 당연함에 나는 괜히 겉도는 기분이 들어서 나도 금주할 거라며 대꾸하지만 지난주에 사둔 애플위스키가 여전히 방에 있다.


이상하게 라마단은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취미 없는 사람을 갱생시키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클라이밍, 손세차, 백패킹, 닌텐도 스위치 게임, 헬스, 기타 여러 가지 운동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한 발짝 걸쳤다가 도망간 목록은 수두룩하다. 네가 좋아한다면 나도 좋지만 그 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내 사랑은 잠깐 반짝였다가 쉬이 사라졌다. 라마단은, 최소한 하는 척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이 마음은, 주류에 끼고 싶어 하는 욕심일까. 아니면 내가 고작 알고 있는 규범을 넓히는 과정일까. 누군가의 일상을 체험한다는 감각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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