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토론토에서 맞이하는 토요일 아침
어제는 태어난 지 만 번째 된 날이었다. 언젠가 이날이 올까, 참 아득하다 하며 적어둔 날짜가 무상히 다가왔다. 쿠바로 여행을 떠날까, 퀘벡을 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문득 시간을 보니 새벽 1시에 퇴근하고 마감이 다가온 외주 작업을 끝낸 새벽 세 시였다. 아,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점심즈음 일어나 구석에 넣어둔 캐리어를 꺼내 뭉쳐있는 여름옷을 죄다 꺼냈다. 겨우내 입었던 옷과 침구를 빨래방에 가져가 윙윙 돌아가는 세탁기를 빙글빙글 보다가 은행에 가서 이제는 안 쓰는 계좌를 닫았다. 나는 여전히 못 알아들으면 눈치껏 대답하는 버릇이 있는데 은행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대충 분위기상 자동이체 걸어둔 빌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 같아서 ‘아님 낫 슈얼..’ 했지만 은행원은 당황하며 ‘아니 잔액 현금으로 줄 건데 쪼개줄까 큰 단위로 줄까’라고 다시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이런 것이 이제는 별로 부끄럽지 않다. 건조기에서 갓 마른 보송한 겨울옷을 차곡차곡 접어 캐리어에 넣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나는 와있다. 체류에서 영주로 나는 가고 있다.
5월 19일은 어학원이 끝나는 날이었다. 어느 겨울날 캐나다에 가능한 한 오래 더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한 계절을 한 번만 훑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쉬웠다. 이왕 온 거 해볼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고 싶었다. 원점에서 한 발짝 내딛는 게, 글쎄. 캐나다는 만만했지만, 한국은 막막했다. 캐나다는 이민자에 관대하니 나는 깍두기라는 방패를 휘두를 수 있다. 한국은 어림없는 소리. 이왕 새로운 것을 해본다면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었다. 얼레벌레 배운 책 편집을 좀 더 제대로, 업으로 삼고 싶어서 캐나다에서 유학을 결심했다. 어학원은 아주 첫 시작이었다. 어학원에서 수료증을 따면, 학교에서 입학 조건으로 요구하는 영어성적을 대신할 수 있었다. 수업을 등록한 날부터 끝나는 날을 달력에 적어놨다. 오랜만에 날짜를 기리며 규칙안으로 들어갔다.
3개월 동안 주 5일 하루 3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아침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카페에서 일하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5시 15분. 후다닥 밥을 차리고 삼키면 5시 50분. 책상에 앉아 줌으로 온라인 수업에 접속하면 선생님이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물어본다. 일이 없는 목요일은 어학원 과제인 에세이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거나 외주 일을 했다. 퇴사 후 프리랜서로 살다가, 그러니까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놀고 싶을 때 놀던 패턴에서 시간을 쪼개 쓰는 루틴으로 들어가니 죽을 맛이었다. 해방과 도망을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어학원이 끝나면, 여름일 테고, 내가 태어난 지 만 번째 되는 날이 올 테다. 아무도 기념하지 않는 일을 만들고 기대하면 어느 순간 기다리는 곳에 있게 된다.
5월 19일은 정말이지 금방 다가왔다. 하루하루 흘려보내다 문득 달력을 보면 벼락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럴 땐 술을 마셔야 한다. 어학원 수료를 핑계로 간만에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도 바위 같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객기를 부리는 후진 인간이다. 어느 날은 앞머리를 냅다 주방 가위로 잘라버렸고, 어느 날은 담을 훌쩍 넘다가 무릎을 박살 냈다. 그날은 피를 빼고 싶었다. 조금 부어있는 검지 손톱 옆 살을 콕 찔러서 피를 내서 거슬리던 거스러미를 없애고 싶었다. 바늘도 없고 대충 압정으로 콕콕 찔러 피를 내고 씻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새벽 2시에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심장박동과 고통에 깜짝 깼다. 검지 손톱부터 손가락 한 마디가 보라색으로 부어 있었다. 검색해 보니 생인손이었다. 치료는 '집 근처 피부과나 정형외과에서 고름을 째고 드레싱 받으면 됩니다.' 여기는 캐나다 토론토. 나는 의료보험이 없는 외노자.
캐나다는 약국에서 항생제를 팔지 않는다. 대신 약국이 아닌 드럭스토어에도 약사와 의사가 상주해 있는데 간단한 상담을 같이 해준다. 잘 먹으시고요, 항생제나 연고 잘 바르시면 됩니다. 물 닿지 않게 하시고요. 하지만 항생제는 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다. 나는 주변 친구를 통해 러시아산 항생제를 구했다. 러시아는 항생제 통도 크다. 1회 분량이 850mg이고 환상적으로 플라시보 효과를 보는 나는 약을 보자마자 어지럼증을 느꼈다. 나는 의료보험은 없지만 구하기 힘든 항생제를 내주는 친구와, 혼자 있지 말라며 자기 집 침대와 냉장고를 통째로 내주는 친구가 있다. 주말 포함 2박 3일을 칸쿤의 무더운 해변도, 쿠바의 이국적인 거리도 아닌 토론토 동네 친구네 집에서 꼬박 앓아누웠다.
기념할 일을 만들고 기다리고 기대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달력의 한 지점에서 뒤를 돌아보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만 같다. 하필 그런 날은 꼭 침대에서 뒹굴거린 날이다. 바쁘면 돌아볼 여유도 없다지. 물에 씻어버린 솜사탕 같은 이 허탈함 때문에 나는 자꾸 달력에 잡다한 날들을 적어놓는다. 내가 태어난 지 만 번째 날, 네가 캐나다에 온 지 1년이 되는 날, 이제는 외워버린 친구의 생일, 잊고 싶지 않은 기일, 에세이 마감하는 날, 굿즈 사는 날. 이런 일상들로 채워진 내가 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뒤섞인 달력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니 캐나다 생활의 한 챕터가 끝났다. 이게 한 챕터일지 한 문장일지는 더 나중의 내가 오늘을 돌아보고 이름을 지어줄 것이다. 앞으로 무수한 기념할 날들을 캐나다에서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