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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un 16. 2024

누더기 현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쓰레기처럼 거리에 버려졌지만... 이봐, 시체도 사람이라고. 인간."

이 소설의 배경은 2000년대 초반, 이라크의 바그다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이후 혼란 속의 바그다드. 바로 직전에 읽었던 파리누쉬 시나이의 <나의 몫>에서는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이 등장하는데, 이번 책도 전쟁의 참상 그 한가운데에 있다. 이번 책에서는 미국-이라크 전쟁(2003)을 다룬다. 


이번 중동 소설 읽기 모임에서 선정해서 읽은 책 중 전쟁 이야기가 빠진 책이 있었나. 우리의 편협한 시각이 전쟁 이야기들만 골라 읽도록 한 것인지, 그들 세상이 전쟁으로 온통 얼룩져 있는 것인지. 아마 양쪽 모두 사실일 것이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을 고른 이유


최초에 독서 목록을 선정할 때 아랍 문학 전공자들의 조언을 구한 바 있었다. 다양한 국가의 작가들과 작품들이 거론되었는데 나의 마음을 심히 흔들었던 소개말이 있었다. 


'중동의 마술적 사실주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중남미 문학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다. 중남미 문학을 애정하는 나에게 이보다 혹하는 소개가 있을 수 있을까?


책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찾아보다 보니 표지의 문구도 눈에 띄었다.


'아랍의 카프카'


낯선 작가들 사이에서 무엇을 함께 읽는 것이 좋을지 확신하고 있지 못하던 열음님과 내게 동시에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책이었다. 너무 궁금하잖아!


이야기의 시작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은 세 가지 흥미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시의 시체를 주워 모으는 폐품업자 하디


하디는 도시를 누비며 돈이 될만한 고물들을 모아 파는 폐품업자다. 어느 날부터 그는 도시에 널브러진 채 방치되어 있는 시체 조각들을 집으로 가져온다. 한때는 건강한 사람이었을 그 몸덩어리들이 나뒹구는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다.


“경찰에 넘길 생각이었어. 쓰레기처럼 거리에 버려졌지만 이제는 온전한 시체니까. 이봐, 시체도 사람이라고. 인간.”

“그래서 온전하게 만든 거야. 안 그러면 쓰레기 취급을 받으니까. 다른 시신들처럼 소중히 다루고 신분에 걸맞게 장례도 치러주고 싶었어.”

_「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아흐메드 사다위


폭격으로 조각나 사방으로 튀어버린 시체들은 누구의 신체인지 알 길 없고, 인간 취급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썩어간다.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신분으로 만들고 장례를 치러주고 싶었다는 그. 당시 참혹한 바그다드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살기 위해 망자의 기억에 매달리는 엘시바


엘시바는 20년 전 아들 다니엘을 잃은 노파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들을 기다리며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바그다드에 홀로 남아 아들을 기다린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크고 텅 빈 집에서. 이라크를 떠나 있는 딸들은 그녀의 안전을 위해 바그다드에서 대피시키고자 하지만 엘시바는 떠날 수가 없다. 아들 대니얼을 기다려야 한다.


인간 이해 너머의 일들을 좇는 특수정보추적국


초심리학과 점성술을 활용한 예언가들이 활동하는 정보국이 등장한다. 예언가들은 도시에서 일어날 폭력 사태를 사전에 예측해 정부가 사건을 통제할 수 있도록 일을 하는 비밀 기관이다. 당시의 바그다드가 과학적 사고로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 일반적 규칙과 통치로는 통제되지 못하는 곳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


죽은 살덩어리들을 모아 하나의 시체를 만들겠다는 하디, 죽은 아들을 기다리는 엘시바, 그리고 초현실적 사건을 추적하는 특수정보추적국. 이 세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기묘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디는 어느 날 자신의 시체가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엘시바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이 돌아왔다고 알린다.

바그다드에 이상한 살인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특수정보추적국은 이를 뒤쫓기 시작한다.


그렇다. 하디가 괴물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괴물은 우연히 엘시바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엘시바는 괴물을 자신의 아들 다니엘이라고 여기게 된다. 


복수는 나의 생명


그렇다면 바그다드에 일어났다는 이상한 살인 사건들은 뭘까? 


DALL·E

괴물은 어느 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체부위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결국 그는 각 신체 부위의 주인을 죽게 한 자들을 찾아다니며 죽이고 그 신체부위를 대신해 새 살을 채워 넣으며 살아나간다. 부정한 사람들이 살해 당해 사라지는 바그다드. 정의의 실현인가?


"사람들이 나를 나쁜 괴물로 여기고 있소. 나보고 범죄자라고 욕을 하는데 그건 사실을 몰라서 그래요. 나야말로 이 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정의란 말이요."

_「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아흐메드 사다위


그 기묘한 날들이 계속되어 가면서 괴물을 추종하는 무리가 생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목숨을 괴물을 위해 공헌하겠다는 사람도 나타난다.


날이 지날수록 희생자들의 몸덩어리는 떨어져 나가고, 더 많은 복수가 필요해진다. 괴물은 어느 날 이러한 생명 연장법의 모순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임무는 근본적으로 살인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인물을 죽여야 하건만 누구를, 왜 죽이는지가 점점 모호해져 갔다.

_「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아흐메드 사다위


테세우스의 배가 된 괴물


나는 바그다드를 활보하는 괴물을 보면서 테세우스의 배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DALL·E

테세우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귀환한 그리스 신화의 영웅인데, 그를 기리고자 아테네 인들은 매년 그의 배를 타고 순례를 하는 기념식을 했다고 한다. 수 세기가 지나면서 테세우스의 배를 조금씩 수리해 가면서 결국 모든 부분이 교체된다면 그 배는 원래 배와 여전히 같은 배라고 할 수 있을까?


바그다드의 괴물도 테세우스의 배와 마찬가지로 부분의 교체를 점진적으로 이루어낸다. 희생자들의 몸으로 빚어졌던 그는 시간과 함께 떨어져 신체조각들을 다시 채워놓아야 했고, 그는 이 문제를 희생자들의 복수를 실행하면서 새로운 신체를 얻어 채워 넣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완전히 새로운 살점들로 몸이 채워지게 된다.


이 희생자의 복수를 한다면 그 대상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는 이제 과연 누구이며, 계속 정의로울 수 있을까? 


누더기 현실


신비롭고 폭력적인 이야기에 취해 읽다 보면 금세 마지막 장에 와닿게 되는 책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은 결국 이라크 현실에 대한 거대한 은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라크는 중동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종교적인 분열이 극심한 국가다.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의 인구가 순니파나 시아파 한 개 종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데 반해, 이라크는 시아파 60-65%, 순니파 32-37%로 통합이 어려운 인구 비중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반미냐 친미냐에 따라 세력이 나뉜다. 각자의 신념으로 무장한 채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정의이며, 서로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정의는 새로운 복수를 부르고, 새로운 복수는 새로운 희생자를 낳는다. 언제나 뜯어고치고 있지만 늘 한쪽은 썩고 흘러내리고 있는 상황. 


분열하는 정의 속에 갇혀버린 이라크의 딜레마 속에 빠져볼 수 있는 멋진 작품이었다.

                                                                           


참고 문서


1. 아흐메드 사다위,「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더봄 출판, 2008 https://ridibooks.com/books/2987000053

2. Wiki 백과_테세우스의 배 https://ko.wikipedia.org/wiki/%ED%85%8C%EC%84%B8%EC%9A%B0%EC%8A%A4%EC%9D%98_%EB%B0%B0

3. 외교부, 이라크 국가정보 https://www.mofa.go.kr/www/nation/m_3458/view.do?seq=192

 OpenAI, D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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