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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Jun 24. 2024

이집트는 돈 있는 사람들의 나라야,「야쿠비얀 빌딩」

1970s 이집트, 돈 가진 자들을 위해 살 것인가 신을 위해 살 것인가

이집트,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는지? 모래 날리는 사막 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집트의 이미지는 너무나 빈약하다. 이집트 사람들에 대한 알음도 고대 이집트 문명의 벽화 속에 머물러있었다. 1억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인구 대국이라는 것, 90% 이상의 사람들이 이슬람교 수니파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현대 이집트의 사회상

이 책을 소개 받았을 떄 '현대 이집트의 사회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좋은 책'이라는 추천의 말을 들었다. 읽고 나니 확실히 그렇다. 부자와 빈자, 이민자와 토착민, 정치 권력가와 소시민, 종교 지도자와 신도들, 노인과 청년, 여성과 남성, 첫사랑과 성소수자,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상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야쿠비얀 빌딩. 


1934년 당시 이집트 내 아르메니아 교민 회장이었던 백만장자 하굽 야쿠비얀은 자기 이름을 딴 주거용 아파트를 지을 구상을 했다. (...) 그는 술라이만 파샤 가에 있는 중요 지점을 건물 부지로 택했고 공사를 위해 유명한 이탈리아의 건축 사무소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 회사는 야쿠비얀 빌딩을 고전적 유럽풍의 거대한 10층 고층 건물로 아름답게 설계했다. 발코니들은 석재로 된 그리스인 얼굴 조각상들로 장식하고 기둥들과 계단, 복도 등은 모두 천연 대리석을 사용했으며, 엘리베이터는 최신형 쉰들러 상표가 붙은 것이었다.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빌딩의 공간 또한 다양한 층위로 쪼개지며 개별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야쿠비얀 빌딩이 최고급 빌딩으로 위용을 자랑하던 호시절부터 이집트 혁명 이후 쇠락기까지 시대적인 스펙트럼에 따라서, 새로운 공간이 된다.


1952년의 혁명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유대인들과 외국인들이 이집트를 떠나기 시작했다. 주인들이 떠나자 야쿠비얀 빌딩 내 모든 아파트는 텅 비었고 당시 영향력을 지닌 자들인 군 장교들 중 한 명이 아파트 한 채를 차지했다.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야쿠비얀 빌딩 Created by Dall-E

야쿠비얀 빌딩은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로운 공간적 특성을 갖게 된다. 해외 각계의 부호들이 거주하던 공간에서 혁명 이후 군 권력가들이 자리 잡은 빌딩. 그러나 비단 시간만이 이 빌딩을 변화시키는 건 아니다. 거주층과 옥상이라는 물리적 층위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인물들이 장악하는 무대가 된다.


야쿠비얀 빌딩 내 아파트를 소유한 부유층 사람들 중에는 아파트를 매각하는 자들도 있고, 막 대학을 졸업한 자식들의 사무실이나 개인 병원으로 아파트를 내주거나 아랍 관광객들을 위한 가구 딸린 집으로 임대를 놓는 자들도 있었다. 그 결과로 쇠 방과 건물 내 아파트들 간의 연관성은 점차 단절되었고 이전부터 살던 집사들과 하인들은 자신들의 쇠 방을 시골에서 막 올라오거나 또 는 도심지 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거리가 가깝고 값싼 거처를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받고 넘겨주었다.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부호들을 밀어내고 군 장교들이 빌딩을 장악하게 되면서, 창고로 사용하던 옥상 공간까지 세를 주기 시작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도시민들이 모여들면서 빌딩 옥상에 새로운 사회가 탄생하게 된다. 소설 「야쿠비얀 빌딩」은 빌딩의 과거와 현재, 거주층과 옥상층,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거주민들의 삶들을 생동감 있고 재치 있게 다룬다.


꿈 깨라는 현실이 빚어낸 파괴불가의 꿈, 지하드


「야쿠비얀 빌딩」의 중심인물이라면 단연 타하를 꼽을 테다. 타하는 야쿠비얀 빌딩의 수위의 아들이자, 부지런하고 영민한 수재로, 입신양명을 위해 경찰 대학 입학을 꿈꾼다. 하지만 경찰 대학 입학 면접에서 면접관에게 출신을 조롱당한다.


위원장은 타하를 모욕하는 것을 즐기듯이 태연히 질문했었다. “젊은이, 부친께서 건물 수위 아니신가?” 수위. 그건 타하가 생각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낯선 단어였다. 단어 하나가 그의 인생 전체였다.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경찰 대학 입학의 꿈이 좌절되고, 타하는 경제학과에 입학한다. 대학 모스크에서 예배를 드리다 종교 지도자로부터 일생의 영감을 얻는다. 


"(...) 우리는 세상에서 인간은 세 번째라곤 없는 두 개의 선택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는 짧고 덧없는 삶, 즉 어느 한순간 예상치도 못하게 끝나 버릴 그런 속세의 삶에 자신의 모든 노력을 집중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위해 멋지고 훌륭한 집을 지으려 하지만 그것은 바닷가에 모래로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 우리의 숭고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두 번째 선택은, 무슬림으로서 우리가 이 현세를 영원한 영혼의 삶 속에서 짧게 지나가는 단계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그는 신의 전사로써 지하드(Jihad. 이슬람을 확장하거나 지키기 위한 성전(聖戰)/이능우)를 되살리기 위해 현세의 삶을 바친다. 타하가 계층 상승을 위해 묵묵하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시절과, 그 꿈이 좌절되며 겪는 고통, 그리고 그 이후의 종교 생활에 대한 묘사가 참 현실적이면서도 생생했다. 지하드란 무엇이며, 종교 권력이 어떻게 정치에 관여하고 득세하는가, 신앙은 어떻게 도구화되고 젊은 인생을 이용하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타하의 이야기는 지하드에 대한 어떤 설명과 분석보다도 명확하게 지하드를 감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가난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이중의 폭력


북클럽 모임에서 많은 분들이 애정을 드러냈던 부사이나. 부사이나는 타하의 이웃이자 첫사랑으로, 갑작스러운 부친의 사망으로 어머니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어리고 예쁜 아이, 아버지라는 울타리가 없는 아이, 가족을 위한 돈이 필요한 아이. 그런 아이가 집 밖 세상에서 겪어야 할 고초를 짐작해 보는 데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겨우 얻어낸 작은 일자리, 지근거리며 다가오는 고용주들, 그녀의 상냥한 거절과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좌절하는 그녀에게 친구는 조언한다. 생각보다 별 일 아니라고.


탈랄이 다가왔을 때 그녀에게는 강하고도 상반되는 느낌이 밀려왔다. 주어진 기회를 잘 이용해 보자는 결심과,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쥐어짜고 그녀로 하여금 숨차게 하고 구역질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두려움이 그것이었다.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결국 부사이나는 옷가게 주인인 탈랄에게 유사 성행위를 용인해 주고 얼마간의 돈을 챙기며 일자리를 연명해 나간다.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돌아보며 신앙적 죄책감과 인간적 모욕감에 시달린다. 몰려오는 죄책감과 반항심을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탈랄과의 관계를 은근히 내비치는데, 묵인하는 엄마를 보며 모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가엾은 아이. 


돈 있는 사람들의 나라


부사이나는 탈랄과의 일을 겪고 나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는 걸 직감한다. 순진무구하게 꿈속 세상을 사는 타하와 다르게 말이다. 이집트에서는 무엇보다도 돈만이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해 준다고 믿게 된다. 


그리하여 빈자는 말한다. 


"타하, 이 나라는 우리 서민의 나라가 아니야. 이곳은 돈 있는 사람들의 나라야. 만일 네가 2 만 기네가 있어서 그들에게 뇌물로 그 돈을 준다면 그들 중 어느 누가 네 아버지 직업에 대해 묻겠어. 타하, 돈을 벌어. 그러면 모든 일이 풀릴 거야. 만일 네가 가난하게 산다면 넌 짓밟히는 거야."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실제로 「야쿠비얀 빌딩」 속 인물들의 관계는 권력가와 피지배자라는 수직적 관계로 요약될 수 있으며, 권력의 기반은 '돈'이다. 빈자에 대한 경멸과 착취는 타하와 부사이나의 이야기뿐 아니라 여러 인물 간의 관계에 드러난다. 신문사 편집장 하팀이 가난한 군인 압두를 옭아매고 성적으로 착취하기도 하고, 핫즈라는 대부호는 예순의 나이에 성적 욕구를 합법적이고 신실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과부 수아드와 비밀 결혼을 치르기도 한다. 


세상에서 통치하기 가장 쉬운 사람들의 나라


권력가들은 이렇게 속삭인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을 정부의 지배 아래 놓이도록 창조하셨지요. (...) 이집트 국민은 먹고살기 위해 평생 참고 지냅니다. 역사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이집트 국민은 세상에서 통치하기 가장 쉬운 국민입니다."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그도 그럴 것이 돈으로는 사람 몸을 살 수 있고, 종교 권력으로는 사람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사회다. 


현세의 욕망과 내세의 욕망 모두 권력가들이 차지해버렸다. 출세에 충성하자니 돈의 노예요, 신에 충성하자니 종교지도자들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벗어나려는 욕구가 더 깊은 속박으로 작용하는 시스템 속에서 인생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의외로 '사랑'이라고 답하며 소설을 맺는다.


인물들 하나하나가 참 정교하게 설계되고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어서 이집트 사회와 이집트 사람들에 대해서 가깝고 깊게 느낄 있었던 소설이었다풍부했던 여행.



참조 문서

1. 알라 알아스와니, 「야쿠비얀 빌딩」, 을유문화사 https://ridibooks.com/books/9500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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