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 독일 최고의 도시
다음날, 생각보다 괜찮은 컨디션에 바로 여장을 꾸려 다음 여행지로 향한다. 어제 봤던 공연 곡들이 귀에 맴돌아 몇시간째 들으며 뮌헨 시내를 거쳐 기차를 통해 호수로 이동한다.
날이 좋은 뮌헨은 정말 아름답다. 어쩌면 이곳이 내가 제일 사랑하는 도시가 아닐까. 결국 이곳에 나는 정착하고 싶은걸까.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Isar강변에 있는 여러 공원들을 떠올리니 이 도시에 대한 추억과 감동이 몰려왔다. 흠인 겅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닐까. 하이젠베르크가 뮌헨을 찬양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Chiemsee.
또다른 바이언의 유명한 호수를 왔다. 몰랐지만 이 호수의 규모는 그 전의 내가 갔던 곳보다 훨씬 컸다. 그 대신 이 바이언 알프스만의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물과 고요함은 찾을 수 없었다. 페리 때문일까, 아니면 역시 많은 인파 때문일까. 너무나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점이 그런 결과를 낳은 걸까.
뮌헨에서 출발해 목적지에 도달해 또다시 호수까지 가는 조그만 열차를 타고 선착장에 도착했다. 꽤 많은 옵션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 유명한 관광지인 Herreninsel, Fraueninsel을 가는 표를 끊었다. 사실 이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남자섬, 여자섬이다. 섬의 규모는 남자섬이 더 큰데, 이 남자섬엔 노이슈바인슈타인 성의 주인공인 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2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궁전이 있다. 태양왕 루이14세를 경애했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성은 미완성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그동안 곳곳에 벌인 광적인 규모의 건축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법한 일이다. 이런 그의 광적인 화려함의 극치는 당시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겠지만 우린 그의 유산을 보고 있으니 이것도 의미가 있다 해야 할까. 그는 자기만족으로 이를 다 벌였겠지만, 이 자기만족이 불러온 수많은 관광객 같은 이후의 일들을 예상이나 했을까.
화려한 궁전의 외부를 둘러보고 떠나는데, 날씨가 무척이나 더웠다. 더위에 제일 좋은 건 역시 수영인데, 이상하게도 수영할 수 있게 오픈된 공간이 없다. 페리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요, 문화재 때문일 수도, 그것도 아니면 사유지여서 그럴 수 있다.
그리하여 수영할 곳을 찾아 떠났다. 여자섬에서 다음 정거장을 가니 오픈된 수영할 수 있는 Bad가 있었는데, 대단히 아름답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고, 경치도 훌륭하지 않았다. 이미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일까.
그래도 호수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니 더위가 삭힌다. 원래 계획은 Chiemsee 맥주를 먹는 게 목표였는데, 이상하게도 이 맥주를 취급하는 곳이 없다. 정말 이상하다. 알고 보니, Chiemsee 맥주는 Cheimsee가 아니라 옆동네 Rosenheim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란 걸 깨닫는다. 허허. 많은 게 아쉬운 순간이랄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여자섬으로 돌아간다. 페리 시간을 고려해서 남은 시간은 별로 없었는데, 조그만 여자섬을 보는 데에는 충분할 거로 생각했다. 다만 생각보다 여자섬이 너무 좋았다. 이곳은 베네딕토회 수녀님들이 가꾼 섬인데, 이 고립된 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생각에 잠시 잠긴다. 나이 많은 수녀님의 거동이 불편하여 문을 오랫동안 잡아줬는데, 카톨릭 신자냐며 고마워했다. 신앙이 깊으신 분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수도원과 성당을 둘러보고 서둘러 페리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뛰다 보니, 특별한 것 없었던 곳에서 수영하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여기서 수영을 하는 게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뭐 이런 조그만 후회도 여행의, 인생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다시 선착장, 역으로 돌아갔다. 이번 열차도 사람이 무척 많았지만 어찌어찌 자리를 얻어 나름 편안하게 갔다. 피곤함도 몰려왔다. 배터리가 얼마나 빨리 다는지, 계속 꺼놓고 니체의 글을 본다. 이제 다시 뮌헨이다.
뮌헨 동역에서 자전거를 빌려 Isar 강을 따라 영국정원까지 가겠다는 계획을 실현해본다. 여기 자전거 시스템은 어찌나 불편한지 빌리는 게 까다롭다. 어찌어찌 전기자전거를 빌렸다. 처음엔 안정성이 없다고 느껴졌는데, 타다 보니 적응이 된다.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쭉 치고 나가는 것이 다소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제어하는 부분이 너무 적다는 느낌이랄까.
Isar 강을 따라 달리니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친구들이 있는 곳은 사실 10분이면 갈 수도 있었는데,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한참 위까지 올라가 본다. 사실 이렇게까지 영국정원 깊숙이 와 본 적은 없었다. 이 자전거와 함께라면 저 멀리 Freising까지도 쉽게 갈 수 있을 듯하다. 한참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가니, 한적했던 정원에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이 배구를 하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거기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이태리인을 비롯해 Straubing을 떠나고 처음으로, 즉 2년만에 만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기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삶의 발자취가 내가 다 알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살았다면 똑같은 삶을 살았겠지.
그 많던 인간관계 중 지금까지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로 남은 건 고작 대여섯명 정도다. 평생 갈 친구를 구한 거니, 이 정도면 충분한가 싶은데, 한때 시간을 꽤 많이 보냈던 이들과 재회해도 별 감흥은 없었다. 역시 내 나이가 나이이지 싶다.
몇몇 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진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회포를 푸니 자정이 다 됐다. 친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뮌헨 시내에서 노상 맥주를 마시며 돌아갔다. 하지만 왠지 오전엔 그렇게 아름답고 살고 싶다고 느껴졌던 도시의 매력을 하루만에 잃어버렸다. 왤까. 그냥 너무나도 화려하다 못해 복잡스럽고 속물스럽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일까. 나 돈 많고 멋지고 매력 넘친다는 걸 과시하려는 젊은이들의 모습 때문인지, 서울 강남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걸 난 예전부터 혐오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