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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나길 Dec 15. 2021

책 <사랑받을 권리> 리뷰

<그림자 효과> 리뷰도 쓰려 했는데....... PASS

 -<사랑받을 권리>/일레인 아론/고빛샘/웅진지식하우스

 -출간연도: 2020년 (개정판인듯?)





 최근 내가 '셀프 가스라이팅의 귀재'라는  알았다. 나에게 과하게 엄격한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내가 셀프 가스라이팅의 귀재였을 줄이야!


 '뭐 그런 걸로 힘들다 그래?', '넌 왜 그렇게밖에 못해?',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는 해', '네가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평소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말들의 대상을 바꿔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누가 들어도 가스라이팅의 일종인 말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현듯 소름이 돋았다. 나는 왜 남에게도 꽂지 않을 비수를 서슴없이 내게 내리꽂는 사람이 됐을까?



http://aladin.kr/p/bNQkI



 "내가 이렇게 별로인데, 누가 내 옆에 있겠어?"


 일레인 아론의 책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을 읽던 중, 저자의 다른 책들을 둘러보는데 표지의 문구 하나가 유독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건 언제부턴가 내 가슴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던 말이었다. 짙은 안개처럼 내 삶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말. 그 말을 구체적인 글자의 형태로 맞닥뜨리자 이 책을 펼쳐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나를 별로인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 걸까? 그건 아무래도 내가 나를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테다. 사람들은 저마다 내면에 '못난 나'를 가지고 있다. '못난 나'란, 내가 가치 없다고, 영향력 없고 못났다고 여기는 자신의 일부를 말한다.


 '못난 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트라우마를 통해 생겨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어떤 부분을 '가치가 없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하고 부정하면서 무의식에 이런 '나'가 쌓여간다. 사람들은 이런 '못난 나'를 감추고 싶어하며 자신의 싫은 부분을 감추기 위해 여러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덮어둔 내면의 그림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나를 가두고 필사적으로 감추려 하지만 소용없다. 아무리 억누르고 없애려 해도 '못난 나'는 가장 어두운 곳에 웅크려 몸집을 불려 나간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 Carl Jung이 그림자의 원형을 가정했을 때, 그는 그림자가 자아를 뒤덮는 미혹의 안개를 형성한다고 했다. 이 안개 속에 갇혀, 우리는 자신의 어둠을 스스로 회피함으로써 그림자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 - 책 《그림자 효과》 中


 책 《그림자 효과》에서 다루는 '그림자'가 《사랑받을 권리》의 '못난 나'와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정 부분 교집합을 가진다. '못난 나'를 포함해 우리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억누른 감정 등을 그림자라고 볼 수 있는데,  몸집이 커진 그림자는 어느새 주도권을 빼앗아 우리가 생각지 못한 행동을 하게 한다. 그림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림자를 수용하고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는 책에서 '순진무구한 자아'와 '내면의 비판자', '보호자-학대자'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순진무구한 자아'란, 트라우마를 겪은 연령대에 멈춰선 우리의 상처받은 자아를 말한다. 사람들은 너무 큰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괴로운 감정을 내면 깊숙이 봉인한다. 그러나 '순진무구한 자아'는 괴로워하며 그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때로는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괜찮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뭔가를 하거나 하려고 하는 내 옆에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내면의 비판자랑 닮아서 가져와봄... 옆에 쭈구리 너구리는 나랑 닮았다.


 '내면의 비판자'는 자라면서 접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관점을 내재화해 비판을 가하는 내 안의 목소리다. 내면의 비판자는 우리의 외모나 우리가 하는 일, 성과 등에 대해 쉼없이 토를 단다.


 '보호자-학대자'는 우리가 상처받거나 고통받지 않도록 보호하려 하는 내면의 자아다. '보호자-학대자'는 우리를 보호하려고 하지만 그 방법은 오히려 해를 끼치기 쉽다. '보호'를 위해 삶의 모든 위험을 차단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변화란 곧 위험을 의미한다. '보호자-학대자'는 두려운 미지의 '변화'를 배척하고 익숙해서 그래도 견딜 만한 현재에 머무르게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보호자-학대자'는 우리를 보호하려 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학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사건건 내게 비판의 말을 늘어놓던 '내면의 비판자'가 하는 말은 내가 살아오며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의 말이었다. 난 그 말들을 모두 고스란히 흡수해 내게 겨누고 있었다.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던 자기파괴적인 행동들은 '보호자-학대자'가 나를 지키기 위해 꺼내든 것들이었다.


 나는 때에 따라 여러 방어기제를 꺼내 나를 보호하려 했고, '내면의 비판자'가 쏟아놓는 비판을 무작정 수용하고 있었다. '보호자-학대자'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채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했다. 내가 무가치하다고 생각해서, 혹은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받고 싶어서 했던 행동들이었다. 나는 그런 행동들에조차 비난만을 가하며 나를 더욱 혐오하고 내 가치를 깎아내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적극적 상상'을 통해 '순진무구한 자아'와 대화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때, 우리는 이 '순진무구한 자아'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상상해 대화를 하고, 그 자아를 존중하고 대접해주어야 한다.



 적극적 상상을 통해 '내면의 비판자'와 '보호자-학대자'와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면의 비판자'는 끊임없이 비판을 가하긴 해도 우리를 돕고 싶어한다. '보호자-학대자'의 목적은 우리를 지키는 데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든 간에 이들의 의도가 우리를 돕기 위한 것, 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에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사소해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이다.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과 내 힘듦을 비교하며 이게 이렇게까지 힘들어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아플 일이 아닌 것 같은데… 하며 자괴감을 느끼던 내게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돌이켜 보면 상처를 받았거나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은 많지만 그것들이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일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더 힘든 사람도 많고, 더 상처받은 사람들도 많은데 고작 그런 게 상처랍시고 주저앉아 징징대는 내가 싫었다.


 사람마다 어떤 일을 받아들일 때의 감각과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의 정도가 다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경험과 내 경험을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설령 다른 사람이 보기에 사소한 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왜 다들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데 난 이렇게 버거울까?'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도 버거운데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걸지도 모르고,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버거운 일이 내게는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네가 힘들다면 그건 힘든 게 맞아.'


 최근에 와서야 겨우 그 말을 내게 허락할 수 있게 됐다. 내가 별 것 아니라 치부했던 것들, 실은 그렇게 치부하고 싶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려봤다. 사실 힘들었구나…. 힘든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그런 약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나를 또 감춰야만 했던 거구나. 내 문제(라고 생각한) 행동 하나하나를 교정하려고 할 게 아니라 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봤어야 했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므로.


 그 외에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구체적인 방안들은 솔직히 나한텐 잘 맞지 않았다. 그래도 나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았고, 꿈을 통해 '보호자-학대자'가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추론해볼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성향을 인지하면 그에 적응하고 나를 더 확장해갈 수 있다. 성장한다는 건 확장을 의미한다. 확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진다.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던 행동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사랑받을 권리'가 있음을 확인받으려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내 존재가치에 대해 고심해왔다. 더 정확히 말해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말은 현학적으로 들렸다.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듯하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다. 나는 나라는 고유한 존재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채롭게 한다. 모두가 기질, 성향, 환경, 가치관, 관점 등이 다르기에.


 어쩌면 머지않아 이 말의 의미가 가슴까지 녹아들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가 있어야 '너'가 있다. 요즘 서투르나마 나를 돌보는 연습 중이다.


의식이 분리되는 것을 멈출 때 그림자는 힘을 상실한다. 당신이 더 이상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라면, 사방을 통틀어 하나의 자아 외에는 볼 것이 없다. 숨겨진 공간도 없고 지하 감옥도 고문실도 없으며, 아래에 숨을 만한 이끼 낀 바위도 없다. 의식은 스스로를 보게 된다. 그것이 의식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기능으로부터 우리는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것이며, 마침내 새로운 세상이 탄생할 수 있다. - 책 《그림자 효과》 中




사진출처:

https://pixabay.com/images/id-2617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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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책 《그림자 효과》

http://aladin.kr/p/toq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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