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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Jan 07. 2024

전두환의 공과 논란

사람들은 본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전직 대통령들의 공과(功過) 따지기를 좋아한다. 전두환이 사망했을 당시 한 언론사 편집 회의 중 이런 일화가 있었다. 누군가가 "그래도 전두환의 공(功)도 다뤄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자 다른 데스크가 "전두환의 공은 없습니다"라고 말을 잘라 서로 얼굴을 붉혔다는 것이다.


최근 '12·12 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상영하면서 전두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그런데 전두환이 일방적으로 비판받는 분위기가 싫은 사람들도 있다. KBS 내에선 전두환을 '전두환 씨'가 아닌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안팎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내 지인 중 한 분도 '전두환은 반란군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개인적인 글을 썼다. 전두환의 과(過)가 크지 않다는 취지에서 썼을 텐데, 그 글을 읽고 나도 생각을 정리해 본다.


일단 지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살해됐을 당시 현장에서 50m 떨어진 곳에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있었다. 그리고 사건 직후 정 총장은 김재규 함께 차를 타고 육군본부로 향했다. 김재규는 현장에 떨어진 본인의 권총이 발견되면서 범인으로 특정됐지만, 정 총장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그는 계엄사령관이 됐다.


이후 군부 일부와 일부 국민 사이에선 '정 총장이 박정희 시해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래서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은 정 총장을 연행해 조사하겠다며 최규하 대통령 대행에게 결재를 받으러 갔는데 여의치 않았다. 전두환은 결국 헌병대 병력으로 한남동 공관촌을 점거하고 정 총장을 강제연행했다. 대통령의 재가는 이후에 받았다.


지인은 "정승화는 대통령 시해나 혁명을 모의한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정승화를 조사하지 않을 순 없었다"며 군사충돌이 일어난 이유는 최규하 대통령 대행의 재가 거부로 일이 틀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듬해 5·18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신군부가 강경진압하며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지인은 이에 대해선 "최규하 대통령과 신군부 세력은 권력을 놓으려고 했는데, 역사는 전두환에게 책임을 덮어씌웠다"고 주장했다.


지인 주장을 정리하자면 '박정희 시해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전두환에게 처음부터 권력 찬탈 의도가 있었다 보긴 어렵고, 12·12 사태는 시해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 있어 불가피한 일이었으며, 5·18 민주항쟁의 참사는 전두환이 다른 정치 세력으로부터 뒤집어쓴 것'이다.


하지만 정 총장은 최초 수사에서 무혐의 처리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장도 없이 총기를 난사하고, 분단국가에서 최전방 사단을 후방으로 출동시킨 것을 정당한 수사였다고 볼 순 없다. 결과적으로 정승화가 무혐의로 밝혀졌으니 정당성도 없었다.


최소한 12·12는 군부 내 유혈 쿠데타였다. 당시 전두환에게 권력의지가 없었다 한들 이 사건 이듬해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확대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이런 점에서 정치학자 김영명은 저서 「한국의 정치변동」 242쪽에서 "12·12는 결론적으로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5·18 민주항쟁은 신군부에 반대하기 위해 일어났다는 점에서 원인제공도, 유혈진압의 책임도 전두환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전두환도 잘했다고 평가받는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두 경험해 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21세기북스)에서 전두환을 "정의를 내세웠으나 정의롭지 못한 대통령"이라며 전반적으론 비판하면서도 86아시안게임·88올림픽 개최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산업의 기초를 다진 점을 전두환의 공로로 꼽는다.


하지만 위 성과들이 '무조건 전두환'이었어야만 이룰 수 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선출된 지도자가 더 큰 발전을 일궈냈을지 모를 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게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력 쿠데타를 용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전두환 정권은 전임에 이은 '잉여 군사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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