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돼 의결서가 헌법재판소에 제출됐다. 16일 6명의 헌법재판관이 첫 회의를 열고 주심 재판관과 향후 일정을 정했다. 본격적인 탄핵 심판의 시작이다. 앞으로 헌법재판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일기로 적어보고자 한다. 회사 업무와 학업이 바쁘다 보니 신경 써서 글을 쓰긴 어렵고 아마도 기억나는 대로 메모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침 8시를 조금 앞둔 시각,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나와 헌법재판소를 걸어가는 길을 경찰이 곳곳을 지키고 서 있었다. 대통령 탄핵심판이 워낙 예민한 사건이다 보니, 성난 군중이 일으킬 돌발행동을 막으려는 목적이다. 이미 각종 언론사 사진, 영상 촬영 기자들이 헌재 본관 입구에 진을 치고 있었다. 헌법재판관들의 출근길을 촬영하고,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보는 예전 직장 동료 사진기자도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헌재는 기자들이 자주 찾는 곳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심판이 있을 경우에만 종종 찾는다. 8년 만에 열린 대통령 탄핵 심판에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리다 보니, 브리핑룸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헌재 측에선 급하게 복도에 파티션을 설치하고 여분의 책상을 가져와 추가 좌석을 만들었다. 헌재 외부에선 일본 기자로 보이는 해외 취재진이 리포트를 하고 있었다.
오전은 한가로웠다. 재판관들은 아마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겠지만. 점심시간에 돌담길 고적한 삼청동을 거니는 것도 좋았다. 다른 언론사 동료 기자와 곰탕을 한 그릇 먹고, 스타벅스에서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법조인들이 드글한 서초동과는 정반대의 여유로운 분위기다.
계엄 선포 이후 거의 매일 기사를 쓰다 보니 피로가 꽤나 누적되어 있었다. 브리핑룸으로 돌아와 앉자마자 수마가 엄습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잠을 쫓았다. 2시가 다가오자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브리핑룸으로 들어섰다. 브리핑 내용은 이미 언론에 상세하게 보도됐으니 이곳에선 생략한다.
계엄 선포를 긍정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 보인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에 대해선 각자 셈법이 다른 것 같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야,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기고 자본시장을 위협하며 대외신인도를 추락시킨 대통령이 하루빨리 내려왔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그다음을 생각한다. 추후 권력을 누가 잡을 것인가. 한 목소리로 계엄을 비판해 온 언론도, 탄핵심판에 대해서는 앞으로 온도차가 날 걸로 보인다.
아무래도 더불어민주당에선 탄핵심판 결과를 최대한 빨리 내고 싶어 한다.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내년 5월쯤 (개인적으론 더 미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확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벌금 100만 원 이상의 유죄가 확정되면 이 대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대표는 어떻게든 대법원 선고가 나기 전까지 대선을 치르고 싶어 할 것이다. 최소한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 사법부에 부담을 안길 수 있다. 반면 국민의힘으로선 탄핵심판 일정을 최대한 늦춰야 이득이다.
그 와중에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으로 정형식 재판관이 정해졌다. 정 재판관은 윤 대통령이 지명하고 임명한 사람으로,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이에 헌재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주심 재판관은 전산으로 무작위 배당되기 때문이다. 공교로운 우연일 뿐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주심을 다시 뽑아야 한다거나 헌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도 언론의 일원이지만, 그냥 차분히 심판을 지켜보면 안 되는 걸까? 우리 대다수가 원하는 것은 사건의 실체다. 지금은 너무 많은 증언들과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관계도 분명하지 않은 것이 많다. 재판관들의 성향이라는 것이 실제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헌법 위반인 것을 아니라거나 그 반대라고 판단할 사람은 없을 걸로 믿는다. 그들이 좌고우면 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게, 그럼으로써 2024년에 벌어진 말도 안 되는 계엄 사태의 전말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