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마주하고, 감정을 나열하다
방 청소를 시작했다. 시작하기까지 3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어림잡아 말해도 말이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맥시멀리스트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갖고싶어 모은다기보다 살다보니 이것저것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얘기는 같았다.
친구가 웃긴 포즈를 취하면 홀린듯이 사진을 여러 장 찍었고,
커뮤니티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발견하면 습관적으로 스크린샷을 찍어 모았으며,
SNS에서 발견한 귀엽거나 유용한 릴스는 포크로 찍듯, 북마크 아이콘을 클릭해 보관함으로 보냈다.
끊임없이 무언가 갖고자 한다. 한 번 가지면, 버리기를 꺼린다.
버리려면 추려야 하고, 추리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다할 기준 없이 삶을 살아온 것이 26년이 넘어버린 것이다.
중간 중간 기준을 만들더라도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
나는 대체로 의존적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스스로 평가를 내리자면 그렇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렵도록 했다.
사람들은 다 다르고, 사람마다 갖고 있는 기준 또한 너무도 다양했다.
나는 어느 때에는 강력한 힘을 지닌 것 같은 기준에 편향하고 싶었던 한편,
또 어느 때에는 가장 쉽고, 친근해 보이는 기준에 몸을 담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일관성 없는 기준으로, 갖가지 범주에 속하는 소유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모아본들, 당당히 '이것들이 나예요." 라고 말할 수 없는 방이 완성된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고 만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수집욕을 그만두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되었다.
그 말은 곧, '나'를 알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혔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나다운 것들로 나의 서랍을 채우고 방을 가꾸고 싶었다.
-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한 도구로서 나는 첫째로 ‘감정’이라는 카테고리를 택했다.
감정은 내가 지닌 것 중 가장 솔직한 것이고 가장 나다움에 가까운 것이다.
누군가 옳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른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일 뿐이다.
감정을 하나하나 읽어보자. 내가 내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