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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림 Oct 24. 2024

감정에게 2

상실감이 줄 수 있는 것

상실은 소유로부터 온다.

잃는다는 표현은 무엇이든 그것을 가졌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어떤 기억, 아끼는 물건, 사랑하는 누군가.

깊이 관계하고 있는 것일수록,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냉기가 더 몸에 와닿게 된다.



-

얼마 전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다. 처음에는 아예 걸을 수 없을 정도였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부기가 안 빠져 절뚝이며 걷는다.


당연했던 일상이 사라지고서, 나는 그간 내가 가진 것을 참 몰랐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왼쪽 다리의 존재는 아무렇지 않게 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상실감이 소유를 인지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비관도, 낙관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게 하는 힘을 마련해주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 내가 지금 상실감으로 슬프구나, 했을 때.

슬픔은 나를 매몰되게 하는데, 나를 주저앉게 하는데.

그럼에도 일어날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또한 슬픔이구나.


일어날 시간이 언젠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바로 슬픔이었다.

그때 나는 슬픔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

‘가졌다’라는 것. 나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갖고, 누린다.

나는 내가 가졌다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가진 것을 누릴 수 있다.


어쩌면, 아는 것보다 모르는 채로 누리는 게 더 ‘누림'에 가까울 것이다.

가진 것은 너무나 많고 그것을 일일이 짚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종종 떠오르는 내가 ‘가진 것’은 ‘실제로 누리는 것들’ 중의 일부로,

내가 바라는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때 ‘상실’이라는 사건이 더해진다면,

달갑지 않은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나의 이상적인 세계가 흔들리는 거대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가고, 변화를 품은 세계 또한 나의 세계가 된다.

이전과 다른 것을 꿈꾸고 이전과 다른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익숙해진다.


내가 바라는 ‘나’와 실존하는 ‘나’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대비된 모습을 띤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줬다가 뺏는 것은 너무한 것 같지만, 뺏기고 나서 생각해 보면 사실 나는 받은 적이 없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존재했고, 자연스럽게 ‘사라짐’이라는 현상으로 변화했다.


세상에 멈춘 것이 어디 있을까.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거실의 소파도, 언젠가 가구공장에서 제작되어 운반되었고

그 전에는 목재나 패브릭 같은 형태로 존재했었다.


어느 순간에 내가 그것을 지니고 있었고, 함께하고 있었다라는 건 나에게 묘한 안정감을 준다.
그 많은 경우의 수 중에 하나로 내게 고맙고 사랑스러운 것이 주어졌었다는 사실이 꽤 따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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