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일상
부활절이 되기 전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부활절 예배가 진행된다. 이때 사람들은 저마다 양초를 가져오는데 예배 중 12시가 되기 직전에 양초에 불을 붙이는 예식을 한다. 초에서 초로 불꽃을 전달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다. 그리고 12시가 되면 온 동네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뻥 뻥 큰 소리가 나는 화약이 터진다. 밤하늘에는 화려한 불꽃으로 장식된다. 동네마다 있는 교회들이 터뜨리는 화약 소리에 반려견들은 깜짝 놀라 짖어대고 이 모든 소리들은 하나로 뭉쳐져 요란하고도 흥겹게 예수의 부활을 축하한다.
교회로부터 부활의 불꽃을 양초를 통해 전달받은 사람들은 불을 켠 채 집까지 걸어간다. 집 현관에 도착하면 양초로 현관문 위에 십자가를 그으며 복을 빈다. 그렇게 부활절은 시작된다.
부활절에는 그동안의 고기와 유제품 금식에서 해방되어 온 가족이 모여 양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래서 보통 부활절 점심에는 온 동네에 고기 굽는 연기와 냄새가 진동한다. 아침에 눈을 뜨니 뒷마당에서 통구이가 벌써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 7시부터 4-5시간을 약불에 천천히 굽기 때문에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고기 굽기 담당은 큰오빠 몫이었다. 아침부터 계속 그릴 옆에 붙어 앉아 불을 조절하면서 정성스레 고기를 구웠다. 고양이들도 고기 굽는 냄새에 이끌려 오밀조밀 모여들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이사벨라의 어머니는 치즈 파이(띠로 피타)를 만드셨다. 밀가루 반죽 안에 치즈를 넣어 오븐에 한 시간 정도 구워내는데 맛이 일품이다. 이사벨라는 옆에서 밀가루반죽을 입힌 페타치즈를 올리브기름에 튀겨냈다. 튀긴 페타치즈에 꿀과 깨를 뿌리면 완성이다. 단짠단짠 + 바삭한 조합이 훌륭했다.
고기가 잘 구워지면 불에서 옮겨 해체 작업을 한다. 그러는 동안 고양이들은 옆을 지키면서 조금씩 얻어먹는다. 이사벨라 큰 오빠가 나에게도 살코기의 부드러운 부분을 맛보라고 주었다. 고양이들처럼 나도 얻어먹었다.
이사벨라 어머니는 부활절 계란도 만드셨다. 삶은 계란을 붉은색으로 염색한 후 장식했는데 장식할 그림을 계란 흰자로 붙이는 것이 신기했다. 이 부활절 계란은 부활절에 각자 하나씩 집은 후 계란끼리 부딪혀 깨뜨리는데 이때 누구의 계란이 먼저 깨지느냐로 운세를 점친다.
부활절 인사는 "크리스토 아네스티(Χριστός ἀνέστη)"인데 이 말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크리스토 아네스티"라고 인사하면 상대방은 "알리소스 아네스티(Αληθώς Ανέστη,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화답한다.
아이들은 부활절 전에 대모와 대부로부터 계란이나 토끼 모양의 초콜릿과 부활절예배 때 쓸 양초 등을 장난감 선물과 함께 받는데 이때 받은 초콜릿은 부활절 전까지 먹지 않고 참았다가 부활절에 먹는다.
부활절에는 굴루라끼(κουλουράκια)와 츄레키(τσουρέκι)라는 빵을 먹는데 츄레키는 큰 부활절 빵이고, 굴루라는 작은 부활절 쿠키이다. 이사벨라 어머니께서 직접 구우신 굴루라키는 부드럽고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부활절 점심을 함께 하며 따뜻하고 서로에게 특별한 부활절 명절을 보냈다. 모든 것이 편안했고 평화로웠다. 이사벨라와 요르고스, 리차, 아네스티스, 레오니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다시 한번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