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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빙 Jun 27. 2024

돌이켜보아야 알 수 있는 것

220418


2년 전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썼던 일기를 꺼내어 보았다.


————


주말에 너무나도 우울했다. 당장 사라져 버리고 싶을 만큼. 내가 한심하고 쪽팔리고 가치 없게 느껴졌다. 나는 또다시 결함이 있는 한심한 인간이 되어있었다. 떠나고 싶었다. 어딘가로 먼 곳으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햇살이 따스하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미움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곳으로. 나의 역사가, 나의 무의식이 사랑하는 그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어차피 가느다란 모든 관계 끊어버리고 유유하게 천천히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생기니 마음속에서 조금은 따스한 희망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저녁 6시 15분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편의점에 먹을 거를 좀 사러 나갔다. 새삼 세상이 아름다웠다. 횡단보도가 있는 사거리에 다가서는데 문득 내가 이 공간을 좋아함을 깨달았다. 학교를 가는 시간, 편의점을 갈 때, 이 사거리에 서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곤 했다. 기온은 17도씨에 반팔에 가벼운 남방을 걸치고 나가니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절한 온도에, 세상은 예쁘게 주황빛으로 물들고, 그 와중에 여름이 서서히 다가옴을 알리듯 나무는 초록빛을 한층 더해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내 대학생활을 아름답게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언젠가는 이렇게 가만히 길에 서있는 것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온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나를 방어하기 위해 세상에 날을 세우고 살았던 시간들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쉽다. 아쉬운데, 아쉽다고 말을 하기에는 내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돌이켜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당장에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없는 경험들이 있다. 알게 되어야 보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가장 우울하고 슬픈 순간에도 인생에는 밝은 보석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 인생의 찰나를 깨닫고 슬픔의 아름다운 이면을 보고 비로소 가치를 깨달아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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