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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윤 May 13. 2021

내 마음속 부서진 다리들

나는 바다다. 부서진 다리를 품어주는 바다.

내 마음속 부서진 다리들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공기, 쓸쓸하고 외로운 공간, 죄책감과 후회, 아픔과 실패가 가득히 존재하는 곳.

내가 기억하는 내 어릴 적 고향 집이다. 고향집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내 고향집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서울로 독립을 한 후에 가끔 고향을 찾을 때도 일부러 집 근처는 피할 정도로 말이다. 한때 그 집도 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담벼락에 나 있는 작은 부엌 창문으로, 학교 가는 내게 잘 다녀오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골목에 따스하게 퍼졌다. 집 앞 농원에 찾아온 새들의 아름다운 지저귐이 아침을 깨우고, 세 자매의 깔깔대던 웃음이 있었다. 그러나 사춘기즘음, 집 마당에 있던 공장이 멈추고, 조부모님이 시골로 귀농하시면서 아빠의 알코올 중독은 더 심해져 가고, 계속되는 가난과 실패 속에, 그 집은 더 이상 따뜻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수치와 고통, 기다림과 미움이 가득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나는 늘 이 집을 떠나고 싶었다. 이 동네를 떠나고 싶었고,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고만 싶었다. 그러면 이 모든 실패와 아픔이 사라질 거라 믿었다. 

20대 초반 그 집에서 나 혼자 맞이해야 했던 아빠의 죽음을 끝으로, 그 집과의 인연도 끝나 버린 줄 알았다. 언니는 서울로 시집을 갔고, 엄마도 새로이 독립했으며, 나와 동생이 마지막으로 서울로 상경하게 되면서 그 집과 그 집에서의 아픈 추억들도 다 끝나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그 후로도 그 집은 나의 아픔과 슬픔, 고통을 표현하는 상징이 되어 종종 꿈에 나타났다. 지울 수 없는 흉터처럼.


어찌 보면 나는 이 먼 미국까지 아픈 과거와 실패만 가득한 나로부터 도망하여 온 것인 줄도 모른다.

나는 상처와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 순간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숨겨두고, 지워 버리고, 회피하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새로운 인생을 찾아 도망 온 이곳에서도 여전히 내 마음의 상처들은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다가 열등감과 죄책감으로 찾아오곤 했다. 


집 근처의 바다. 끊어진 다리가 멋있게 어우러진다.

몇 년 전, 플로리다 중 남부 어디쯤에 위치한,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바닷가를 여행한 적이 있다.

사람이 별로 없는 드넓은 백사장의 모래는 뜨겁고 부드러웠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몇몇 사람들과 모래사장을 거니는 커플, 아빠에게 서핑을 배우는 아이들의 신난 소리가 간간히 들릴 뿐인, 이 한적하고 아름다운 바다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바다 한가운데 부서진 다리가 있는 것이었다. 

오래되어 제 기능을 잃어버린 부서진 이 다리는,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한가운데 당당히 서서  고대 그리스 건물처럼 웅장하고 멋있게 풍경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바다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마치 파라다이스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스러웠다. 

플로리다는 개발이 계속되면서 지나가다가 가끔 바닷속에 끊어진 다리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들을 빨리 제거하거나 보수하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다리들이 아름답게 플로리다 바다와 어우러 진다. 

플로리다 중남부에 위치한 어느 해변

부서진 다리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품어주는 바다 때문이다.


부서진 다리가 바다와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것은 것은, 그 흉물스러운 다리조차 따뜻하게 품어주는 플로리다의 바다 때문이다. 넓고, 여유로운 바다 안에서 그 부서진 다리는 아름다운 창조물로 재 탄생한다. 

나는 오랫동안 이 부서진 다리가 "나"라고 믿고 살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정죄하고 비난하였는데, 요즘에서야 다리가 아닌 "바다"가 나였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나는 바다다. 내 안에 부서진 다리를 품은 바다다. 부서진 다리가 그 바다를 대표할 수 없듯이, 내 안의 상처 또한 "나"를 대표할 수 없다

바다처럼 상처들을 품어주기로 결심하자, 신기하게도 내 안에 한껏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부서진 다리 같은 상처들이 나와 아름답게 공존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의 일부분으로서.


다리 밑에는 보물 같은 것들이 많다. 몇 살인지 모를 왕 소라와 게들, 조개, 물고기들이 다리 주변에 모여 산다. 처음 왕 소라를 찾았을 때 얼마나 신기하고 기뻤는지, 바다로부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상처를 품기로 했을 때, 상처들은 아름다운 보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상처를 품은 사람들이 내 안의 부서진 다리에서 보물을 발견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는.

        다리 밑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왕소라.           가져가는 건 불법.
이렇게 귀여운 게를 보았나






얼마 전 꿈을 꾸었다. 다시 예전 고향집 꿈이었다. 그런데 온갖 물건이 쌓여있던 집 마당이 아주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이다. 마당에는 잔디가 아름답게 깔려있었고, 대문 옆으로 작은 묘목 한 그루가 심겨 있었다. 그 묘목 주위로 예쁜 꽃을 심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꿈에서 깨어났다.

내 안의 부서진 다리들이 작은 묘목이 되어 새로운 생명으로 심겼다고 믿는다. 어두운 기억에 묻혀버린, 아름답고 따스한 추억들을 내 상처 주위에 심으며, 저 넓은 바다처럼 한껏 여유롭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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