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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윤 May 28. 2021

빠삐코가먹고 싶어요

우울증 극복기 1탄

불안한 생각과 두려운 감정이 내 가슴을 내리누르듯 짓누른다. 살살 배가 아파온다. 순간 주위의 공기가 어둡게 변하고 내 안에 있던 평강이 사라진다. 지금은 우울과 불안이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들과 느낌들이  조각으로 남아서 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그 감정에 끌려다녔겠지만, 이제는 잠시 있다 사라진다. 어느 정도 이 감정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글을 쓴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여유로운 플로리다에 살면서 마냥 인생을 즐기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인생의 가장 최악의 상황들을 나는 이곳 플로리다에서 겪어왔다. 갑작스러웠던 결혼과 시댁의 반대로 인한 갈등,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의 어쩔 수 없는 문화 차이와 이어지는 싸움, 내 꿈과는 달랐던 결혼생활과 나아지지 않는 형편. 언어의 벽으로 인한 주류사회 진입 실패와 먹고 싶은 것조차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이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벽들이 내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좌절감에 헤매기도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발작을 겪고 그것으로 인한 후유증들이 몇 년간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품은 완벽주의자로써 조급함을 가지고 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오히려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였다. 

9년을 이곳에 살면서 먹고 싶은 한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었고,  메로나와 비비빅밖에 구할 수 없는 이곳에서 빠삐코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은 적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빠삐코가 먹고 싶어요" 웃기지만 나에겐 슬픈 얘기다. 결국 빠삐코는 없었고, 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웃자고 먹는 것을 예로 들었지만, 이방인으로서 이곳에서는 정말 삶의 많은 부분들을 포기하고, 누르고, 참고, 견디고 살아야 한다. 와이파이가 느리다 못해 끊어지는 일도 다수인 이곳에서 내 인생이 꼭 이 느린 와이파이 같이 답답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거의 할 수 없는 이곳, 그러다 보니 내 인생에는 불평만 남아 있었고, 나는 늘 플로리다를 떠나고 싶었다.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나 할까. 8시간 거리에 애틀랜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곳은 한인들이 많고 한인타운도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인들이 살기에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늘 다른 곳을 품고 있으니 어떻게 삶이 즐거울 수 있겠는가. 이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 마음은 늘 불평과 불안이 뒤섞인 지옥이었다. 플로리다는 내게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 년 반 전 초대받지 않은 손님,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발작이 찾아왔다. 정상적이지 않은 죄책감과 정죄감이 내 하루를 짓누르고, 세상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말이 사라지고 참을 수 없는 울음이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뿐더러, 하고 싶지도 않았으며,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내 감정과 생각 안에 갇히기 시작했다. 이 어둠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내 인생은 이대로 끝인 것 같은 좌절감에 빠졌다. 



삶이 줄 수 없는 것보다 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늘 도망치고 싶던 플로리다의 삶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 불청객들이 찾아온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어디로 피하든 피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 고통은 또다시 찾아올 것을 알았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부터 잘 되진 않았지만, 나는 내 삶을 받아들이고, 이 답답한 삶도 무엇인가 선한 이유가 있겠지 믿기로 했다. 내 조급증과 압박감을 내려놓고 어쩔 수 없는 이 시간을 즐겨보자고 결심하는 것은,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나서야 내게 주어진 삶을 회피하고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받는 삶인지 깨달았다. 때론 싫어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움직일 수 없는 때가 있음을 인정하기로 했고, 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그것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나는 내 삶과 플로리다를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이곳이 나에게 줄 수 없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돈 하나 없어도 푸른 하늘과 야자수를 선베드에 누워 즐길 수 있고, 풀냄새 진동하는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도 있다. 이것이 플로리다가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다.  나는 다시 기도 했다 " 하나님 빠삐코가 먹고 싶어요. 그렇지만 내가 이곳에 사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빠삐코를 포기할게요" 나는 빠삐코와 더불어, 쉽고, 좋고, 빠르고, 맛있는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내게 주어진, 이 뜨거운 플로리다 자연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삶의 단면만 보고서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필요가 없다.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이 당신이 가진 인생의 문제만큼 그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산다. 또한  당신도 많은걸 포기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반면에 많은걸 누리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플로리다를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제일 먼저 바꾼 것은 "무덤덤함"을 "감사함으로"였다. 예전에는 내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 무덤덤하게 지나쳤던 수많은 아름다운 자연을 감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것에 환희했고, 그러자 내 마음에 기쁨이 조금씩 심기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라진 상황은 없는데, 이제 플로리다는 내게 "살고 싶은 곳"이 되어가고 있으며, 내 마음에도 우울보다는 기쁨이 더 많이 자라 있다. 



이전과 같은 상태로 애틀랜타로 이사를 갔다면 나는 과연 행복했을까? 그곳이 나에게 줄 수 없는 것에만 집중해서 또 같은 문제로 다른 곳으로 도망할 궁리를 하다가 불청객을 또 맞아야 했을지 모른다. 삶을 감사하고,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것은 내 마음에 불청객이 들어올 수 없는 울타리를 세우는 것과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내게 잠시 찾아왔던 우울감과 불안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오늘 글을 쓰면서 또 이 순간을 누린다. 여전히 내 삶에 존재하는 머리 아픈 일들은 잠시 제쳐두고, 나는 그냥 이 시간을 즐기며 감사하기로 했다.



-우울증 극복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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