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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Jun 14. 2020

고양이 물도 위아래가 있다.

우리 집에 찾아오는 임신묘 듀오. 부뚜막 고양이와 흰냥이.

흰냥이도 뭔가 부르기 편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데 흰냥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작명 센스가 구려서 미안해.


여담이지만 우리 집 햄스터 이름은 알렉스였다. 그의 아들의 이름은 알렉스 주니어. 풀네임은 레드아이 알렌산더와 블랙 아이 알렉산더 주니어였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이름을 못 짓는다.


부뚜막 고양이는 묘생짬밥이 꽤 되는지 나와 눈이 잘 마주치는 자리를 안다. 내가 자주 보는 창밖 담벼락에 올라가서 기다리거나. 아니면 아예 밥그릇 주변에 앉아서 식빵을 굽고 있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면 찡긋 눈인사까지.

흰냥이는 아직 부뚜막 고양이 묘생짬밥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일단 나랑 눈 마주치는 위치를 모른다. 가끔씩 작은 화단에 물을 주러 나가면 구석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뭐야.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사료통을 가지고 오면 담벼락에서 내려와 밥을 주기를 기다린다.


부뚜막 고양이가 임신한 걸 보고 불쌍해! 한 게 엊그제 같은데. 흰냥이도 배가 불러있었다. 남자 친구에게 저 거봐 흰냥이도 임신했어! 하니 무슨 고양이 배 조그만 부르면 다 임신이라고 했다.


아니라고. 봐바.

음 쟤도 새끼 가졌나 보네.


고양이들 임신 출산 시기는 봄이라고 알고 있는데. 얘들아 지금 초여름 아니니? 애 없는 내 몸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여름에 새끼까지 돌봐야 한다니.

미안해. 내가 부자면 출산하고 중성화라도 시켜줄 텐데. 로또 되면 구청 TNR 말고 좋은 병원에서 중성화도 시켜주고 좋은 집사도 찾아서 입양도 보내줄게. 부뚜막 고양이와 흰냥이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괜히 나 혼자 나의 가난에 죄책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흰냥이는 밥을 먹다가 부뚜막 고양이가 오니까 슬쩍 보더니 자리를 비켜줬다. 부뚜막 고양이가 조심조심 와서 밥을 먹으니 뒤 돌아가는 듯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내 눈치를 보며 부뚜막 고양이 뒤에 자리를 잡았다. 쟤 뭐하냐. 줄 서서 밥 먹네 하고 소리 없이 웃었다.

흰냥이는 부뚜막 고양이와 아는 사이인 듯 부뚜막 고양이 꼬리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 귀여운 솜뭉치로 꼬리를 툭툭 치니 부뚜막 고양이가 귀찮은 듯 꼬리를 탁탁 쳤다. 흰냥이는 머쓱했는지 눈을 한번 끔뻑이고는 식빵 자세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남자 친구한테 고양이들이 줄 서서 밥 먹는 걸 봤다고. 꼬리 가지고 놀더라 하니 부뚜막 고양이가 엄마인가 보네 했다.

! 그건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군.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일기를 몰아 쓰는 습관은 여전해서 우리 집 고양이 일기는 항상 밀린다.


한동안 안보이던 흰냥이의 배가 홀쭉해져서 나타났다. 배가 풍선처럼 터질 것 같더니. 요 며칠 사이에 새끼를 낳았나 보다. 3kg도 안되어 보이는 작은 녀석이 새끼를 낳았다고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새끼 낳은 곳이 멀지는 않은지 계속 밥을 먹으러 왔다.

부뚜막 고양이는 배가 더 커져서 진짜 툭 건들면 터질 것처럼 보였다. 남자 친구에게 부뚜막 고양이 배 터지는 거 아니야 하니 고양이는 그 정도로 보이면 보통 새끼를 낳는단다.

그럼 부뚜막 고양이도 한동안 안보이려나?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나는 고양이들 밥 주는 게 걱정이다.

인터넷에 파는 고양이 급식소는 배송비 포함 12000원 정도인데. 살까 말까. 이거 괜히 샀다가 사람들한테 어그로만 끌리는 거 아니야? 막 옆집 아줌마가 왜 고양이 밥 줘요! 하고 화내면 어쩌지. 


이번에 동묘시장에서는 고양이를 줄로 묶어서 질질 끌어냈다는데. 인터넷 기사 댓글만 보면 세상에 고양이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가해자는 고양이가 무서워서 그랬다고 했다. 나는 개를 무서워하는데, 그럼 나도 무섭게 하는 개가 있으면 목을 올무로 감아 질질 끌어내도 되는 건가.

그 고양이도 같이 살아가는 생명인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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