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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Jun 25. 2020

불안장애가 아닐지도 몰라.

다음 주부터 주말에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러 학원에 간다.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약이 남았지만 일주일 일찍 병원에 방문했다. 약은 3주 치를 받았었는데, 2주 만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약이 많이 남았는데 왜 왔느냐 물었다. 다음 주 주말에 못 와서 한 주 일찍 왔다고 했다.


지난주는 어땠냐고 물었다.

생리를 해서 그런지 기분이 엄청 요동쳤다고. 2018년 이후로는 자해나 자살시도는 한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목을 졸라 자해를 했다고.

선생님은 원래 생리 전 증후군이 그만큼 심하냐고 물었고. 나는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다고 했다.


차트를 이리저리 보고, 벡 우울척도 검사지 (BDI)를 보시더니. 이제 우울한 건 괜찮아졌잖아? 하셨다.

네 그랬었는데. 잘 모르겠어요.

잠은 잘 자요?

아뇨. 12시에 잘 때도 있고, 3시 4시에 잠들 때도 있어요.

늦게 잘 때는 왜 그렇게 늦게 자요.

저도 모르겠어요. 똑같이 약을 먹고 누워도 잠이 안 오는 날이 있어요. 저도 패턴을 잘 모르겠어요. 그런 날은 기분도 가라앉아요. 어떤 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아도 처음에 약을 먹으면 나아지다가 두 달쯤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의사 선생님은 대뜸 집중 잘해요? 하고 물었다.

아니. 전혀. 나는 2017년 이후로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계속해서 집중력이 떨어졌다. 책을 읽어도 진득하게 읽지를 못하고. 운동을 해도 오래 하지를 못했다. 나중에는 친구와 단둘이 대화를 하는데도 친구의 말에 집중을 못할 때도 있었다. 그저 나는 이게 우울증 때문에 뇌가 손상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뇨. 집중 못해요. 제가 느낄 정도로 예전보다 집중을 훨씬 못해요.

감정 기복은 심해요?

네. 엄청요. MMPI 검사에서도 그렇고. 제가 느끼기에도. 저녁에 기분 좋다가 한두 시간 후면 또 기분이 안 좋아요.

화는 잘 나요?

아뇨. 화 잘 안내요.

아니. 표현하는 거 말고 마음속에 화가 나는 거.

아... 네 최근 1,2년 사이에 심해졌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왜 이런 일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나지? 하는 것들에도 화가 나요.


지금까지 상담 중 가장 오랜 상담을 하고, 의사 선생님은 쪽지에 뭔가를 써서 건넸다. 내가 우울이 없는 건 아닌데. 우울이 아주 심한 건 아니라고. 좀 이상한 구석이 있어서 한 가지 확인할 게 있다고 했다.

'초.중.고 생활기록부'

다음에 병원 올 때 초중고 생활기록부 가지고 와요. 자기는 어리니까 아마 나이스에서 온라인으로 발급이 될 거예요. 그리고 집에 가기 전에 검사지 하나 작성하고 가고.




의사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밖에 나갔더니 간호사 아주머니가 검사지를 하나 주셨다.

성인 ADHD 검사 ASRS

나는 내가 정신질환에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다. 의사가 당신 성인 ADHD요! 한 것도 아닌데도 정말 기분이 나빴다. 내가 성인 ADHD라고? 그런 사람들은 사회 부적응자 같은 사람들 아냐.

우울증을 의지박약이라고 나약한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을 보고 상처 받았으면서. 성인 ADHD도 똑같이 뇌가 아플 뿐인데. 순간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들이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스트레스로 뇌가 망가지면서 ADHD가 오고, 거기에 우울증이나 다른 게 따라왔을 수도 있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정말 혼란스러웠다.

나는. 나는 지금까지 병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모르겠다. 3주 후에 병원을 가봐야 알겠지.




2019년, 제주도


오늘 무례한 사람과 몇 마디 말을 섞었더니 갑자기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더 이상 놔두면 공황발작이 올 것 같아 오랜만에 필요시 약을 먹었다.

남자 친구는 그런 사람은 그냥 무시해버리라고 했지만. 계속 마주칠 사람을 무시하고 지낸다는 게. 그게 어떻게 쉽게 되는 일인가.


왜 이리 불안하고 초조한 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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