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진료 때 의사 선생님은 초중고 생활기록부를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나이스에 접속하니 다운로드까지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찬찬히 읽어보니 꽤 재밌었다.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나는 정말 밝은 학창 시절을 보냈네. 나는 주관적 우울이 높지, 객관적 우울은 높지 않다. 그건 학창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2학년, 전교생이 심리검사지를 받고 조례시간에 검사를 했다. 그 당시 나는 정말 우울했기에 우울함과 관련된 항목에 몇 가지 체크를 했는데, 교무실에 불려 갔다.
왜 장난으로 검사지에 체크를 했냐는 것이 나를 교무실로 부른 이유였다. 저는 솔직하게 체크했는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너처럼 친구도 많고 밝은 애가 왜 우울하냐는 게 선생님의 대답이었다.
저런 것도 선생을 하고 있다니. 왜 청소년 자살률이 높아지는지 이해가 되는군.
아무튼 1차 검사에서 점수가 높게 나왔으니 방과 후 시간에 한 시간 정도 2차 검사를 받으러 가라고 했다. 알겠어요 하고 교무실을 나섰다. 2차 검사는 바로 다음날 이루어졌고, 나는 대충 우울한 문항에 그렇지 않다를 체크하고 상담실을 나왔다.
상담실에는 다른 반 아이들도 많이 있었는데. 나를 아는 친구들은 왜 네가 여기에 있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글쎄 내가 왜 여기 있을까 하고 웃어넘겼지만. 속이 쓰렸다.
나는 우울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봐.
검사 결과는 우편으로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결과지를 받아보고는 이게 뭐냐고. 네가 어디 이상한 애냐는 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전교생이 다 받는 그런 의미 없는 우편이라고 둘러댔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웃는 가면을 쓰고 산지도 10년 가까이 되었다. 고여있던 우울이 스트레스와 만나 공황발작으로 나타나기까지는, 그 누구도 나의 우울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다.
의사 선생님은 생기부를 살펴보시더니 별 다른 증거를 찾지 못하겠다고. 성인 ADHD가 아니라 PMS(생리 전 증후군)인지 한번 보자고 하셨다. 지난번 자살충동을 느낀 기간이 생리기간과 겹친 것이 이유였다.
약은 3주 치를 추가로 더 주셨다. 최근에 한번 공황발작이 있었다고 하니 그러면 필요시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하셨다.
병원을 다녀오고 이유를 알 수 없이 불안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견딜 수가 없어서 한동안 아침, 점심 약을 다시 먹었더니 괜찮아졌다.
실험실에 출근하며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나? 하긴 실험실에서도 일이 많기는 했다만.
교수님은 다른 연구실에는 학생들이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리고 한다는데 우리 연구실은 그런 게 없다고 했다. 정신과를 갈까 고민하던 언니가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는 병원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우울하면 안 되는 사람일까.
우울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