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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안 Jan 28. 2024

축구왕 슛돌이

기억에 남는 노래 

축구왕 슛돌이 주제가


'슛 볼은 나의 친구, 볼만 있으면 난 외롭지 않네, 슛 볼은 나의 친구 승리를 향해 힘껏 달린다!'  

우리 삼 남매는 내복차림으로 일요일 아침부터 흥얼거렸다. 학원강사라 바쁜 아빠는 일요일에는 쉬었다. 에너지 넘치는 우리를 감당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빠는 일요일 오후마다  비디오 가게에서 만화영화를 빌려왔다.


 '축구왕 슛돌이'. 7살, 4살, 3살인 우리와 스포츠광인 아빠가 같이 보기에 적당한 만화였다. 주인공 강슛돌은 축구에 열정적이었고, 매 화마다 축구 경기가 펼쳐졌다. 슛돌이의 태권 슛, 독수리 슛으로 만화 속 대한민국 축구팀은 매번 상대편을 이겼다. 아빠의 어깨, 등에 한 명씩 기대어 보는 만화는 재미있었다. 우리는 어딜 가든 슛돌이 주제가를 흥얼거렸고, 어느덧 우리 가족의 주제가가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나는 슛돌이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대신 정중한 사과로 시작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이 순간이 꿈이라면’, 동화 속 마법의 세계로 손짓하는 저 달빛', '저 멀리 빛나고 있는 우리의 사랑~'. 바로 만화 '기적의 세일러문' 주제가였다. 주인공이 달빛 마법으로 예쁜 세일러문으로 변신하여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였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는” 단호함. 목소리만 들어도 정체를 알 것 같은데 끝까지 모르는 ‘턱시도 가면’의 미스터리, 거기다가 사랑 이야기까지.  땀만 뻘뻘 흘리며 공만 차는 슛돌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빠는 세일러문을 싫어했다. 마법을 부리는 여중생, 사랑을 고민하는 주제가, 짧은 세일러 교복이 이상하다고 했다. 어느 날, 일찍 집에 온 아빠가 나의 시청을 방해했다."어, 이건 일본 만화야."라며 재미없는 뉴스로 갑자기 화면이 바뀌는 게 아닌가.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조용히 안방으로 향했다. 작은 크기의 TV를 켜고 소리를 0으로 했다. 대사 따윈 없어도 됐다. 세일러문과 턱시도가 손을 잡기 시작할 때, 검은 화면으로 변했다.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왜! 틀어줘!" 아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안된다고 했지? 일본 만화잖아!  나쁜 거 나와. 보면 안 돼!"라며 TV 연결선을 뽑아 들고 방문을 쾅 닫았다. 세일러문과 슬프지만 이별이었다. 


    아빠가 TV의 전기를 차단할 수 있었어도, 나의 관심을 끊을 순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하자마자, 내 방은 일본어로 가득했다. 일본 건 안된다고 하니 더욱 궁금했던 걸까. 일본 드라마부터 예능, 만화, 심지어 일본 개그인 오와라이까지 빠졌다. 다들 무한도전을 외칠 때, 나는 가키노츠카이야아라헨데(일본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 이름, 애들 장난 같은 거 아니다는 뜻의 일본어)를 외쳤다. 심지어 일본 개그맨의 만담을 보기 위해 오사카 여행을 갔을 정도였다. 그렇게 4년 내내 보내고 나서야,  일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멈췄다. 


  지금도 아빠와 나의 TV 시청 목록은 다르다. 아빠는 스포츠, 사극드라마, 액션영화를 즐겨보고 나는 연애예능, 판타지드라마, 감성영화를 좋아한다. 함께 영화관을 간 적은 3번도 되지 않는다. 아빠가 리모컨을 차지하면 나는 휴대폰으로 본다.  어린 시절 슛돌이를 같이 불렀던 적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때는 어떻게 한 마음이 한 뜻이었을까. 아마도 축구왕인 슛돌이가 좋다기보다는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아서 본 게 아닌가 싶다.  


  오은영 박사는 "육아의 최종 목표는 한 사람의 독립된 개체를 키우기 위함"이라고 했다. 어른이 된 나는 아빠와 다른 존재일 뿐이다. 한마음 한 뜻을 가진 가족, 그건 이상을 넘어 환상일 수도 있다. 함께하는 것이 보기 좋지만,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은 함께는 고통스럽기만 하다. 간혹 우리 집에 놀러 오실 때, 아빠는 네가 보고 싶은 걸 보자고 이야길 한다. 그나마 우리의 간극을 더 좁히고 싶은 것일까. 그럴 때면 "아빠 요즘 이게 재밌대."라며 난 아빠가 좋아할법한 최신 드라마를 틀어 놓는다. 같은 걸 좋아하는 건 더는 의미 없다. 누구와 보내는지 중요할 뿐. 그렇게 한 시간 TV 앞에 머문다. 함께.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 : 


"아빠, 슛돌이 진짜 이름은, 킷카와 히카루야. 그리고 걔 특기는 가라데 슛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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