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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안 Jan 28. 2024

고등학생 때 연애하면 바보?

     “고등학교 때 연애하면 바보! 대학생 때 연애 못하면 바보!”  

     다니엘관에서 사감 선생님의 말씀이 울려 퍼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다니엘관에 맨 끝 순번으로 들어갔다. 다니엘관은 1-3학년 중 상위 20명을 선별하여 수용하는 기숙사였다.  사감선생님은  전 고등학교에서   SKY에 다수의  학생들을 진학시킨 능력 있는 분이셨다. 매일 아침마다  우리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셨고,  5월에는   ‘연애금지'를 외치셨다.  


   연애 금지령, 그건 참으로 시기적절한 조치였다. 그해 봄, 유난히 봄바람이 불어 모두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한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등학교 1학년의 80%는 같은 중학교 출신이었다. 나머지 20%는 다른 중학교 출신이었는데, 그 친구들의 낯섦은 10대의 연애 세포를 자극했다. 입학한 지 3개월도 안 돼서, 8 커플이 생겼다. 


   다니엘관은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우리는 한 건물 안에 살면서 새벽 6시 운동장에서부터  새벽 1시 독서실까지 함께했다.  새벽에는 까치집 머리와 하얀 입주변인 상태로 모여 운동하고  밤에는 얼굴에 잠잔 자국과 눈곱이 달랑달랑하는 모습으로 독서실을 나가는데, 이성적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 그저 우리들 사이에는 전우애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1학년 내에서 돌던 연애 바이러스가 우리의 틈에 스며들었다. 


    언제부턴가 남자애 하나가 어색하게  행동했다. 그 애는 높은 도수의 뿔테 안경을 끼고 덥수룩한 머리 스타일을 한 친구다. 같은 중학교 출신이 아니지만 소년만화를 좋아하고 그림도 잘 그려서, 금방 친해졌다. 어느 날, 그 애의 기숙사 사물함 문에 나와 닮은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는 말을 건너 건너 들었다. 설마,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맞았다. 독서실 앞 계단에 서서 진지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확 내뱉었다. “나 공부해야 돼. 내 인생 계획 망치지 말아 줄래?” 


   3일 후, 얼굴이 반반한 중학교 동창인 남자애가 고백했다. 깔끔하게 생긴 외모 탓에 중학교 내내 여자친구가 끊이지 않았던   녀석이다. 얘는 왜 이러나 싶어, 이렇게 말했다. “넌 지금 봄바람 때문에 착각하는 거야. 그거 사랑 아닐걸?” 다음날, 그 아이는 충격을 받았는지 반삭을 하고 돌아왔다. 며칠이 안가, 그 녀석은 하얗고 예쁘게 생긴 중3 후배에게 고백을 하는 게 아닌가. 역시 순간적인 충동일 뿐이다. 그런 한낱 스쳐 지나가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게 어리석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생 때 연애하는 바보가 되지 않았다.  모든 건 대학교 때로 미뤘다. 그리고 선생님 말이라면 모두 따르기로 했다.  공부에 체력이 필요하다며 운동장 매일 10바퀴씩 뛰라고 해서 뛰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 예습 복습 노트 채우기, 혼자 밥 먹기,  걷는 시간에도 문제집 풀기 같은 것들을 하라고 해서 했다. 더불어 남학생이 착각하지 않도록 거리도 유지했다.  결국 1학년 2학기에 전교 1등을 거머쥐었다. 선생님의 말은 성적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 후, 선생님의 말을 다 지키진 못했다. 선생님의 연애 금지령은 세트인데, 고등학교 때는 바보가 아니었는데 대학교 때는 바보가 되었다. 대학교 가니, 연애 불가였다. 여초인 교대라서 그렇게 생각하련다. 돌아보면, 우리는 성공을 위해   공부했으나  정작 성공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성공의 기준은 다를 수 있고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하나의 성공 지점을 위해 친구 간의 우정과 설렘 같은 감정을 비우고 그 자리에 성과를 위한 경쟁심을 채웠다.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지 모른 채, 그 순간의 감정을 무시했다. 그렇게 억누르고 어디 가는지 모르고 달린 고등학교 시절 3년과 대학시절.  엉뚱한 방향으로 빨리 달린 걸 알고  올바른 경로로 돌아오는데만 10년이나 걸리고 말았다. 감정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바보로 지낸 그 3년의 시기가 참 아쉽다. 아, 다 사귀어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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