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 발전기를 300여 기 세운다는 소식에 어민들이 배를 끌고 나왔다. 여수 앞바다에 4.7 기가와트의 해상 풍력단지가 조성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고기는 예전처럼 잡힐까? 배가 드나들 수는 있을까? 이미 태양광 발전으로 염전이 사라져 소금 값이 다락인데.
어민들은 불안하다.
풍력단지는 여수뿐 아니라 서해안 고창의 구사포 명사십리 바다에도 들어섰다.
“원자력과 화력 발전을 대체하기 위한 공사죠. 후손에게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물려줘야겠어요.”
바다에 세워진 거대한 풍차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미국의 진보주의자로 30년간 환경 운동을 했던 마이클 셸런버그가 ‘환경 종말론자’들에 대해서 쓴 양심 선언문이다. 저자는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환경 문제에 대응하자는 '환경 휴머니즘'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정직하게 자신의 입지와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할 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환경 휴머니즘'이다.
600쪽이나 되는 책을 읽는 건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하지만 환경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인류가 함께 보편적인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엇이 올바른지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환경 문제는 미지의 영역이기에 정답이 없다. 안다고 생각하기보다 의문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157쪽,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콩고의 비룽가(Virunga) 공원이 나온다. 이곳은 생물 다양성이 잘 보존되어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 게다가 세계에서 8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마운틴고릴라 -행동이 마치 인간의 사촌처럼 보이는 -가 있다. 공원의 책임자는 영장류 학자인 벨기에의 왕자 에마뉘엘 메로드이다. 이곳에 영국 석유 시추회사 소코가 들어왔다.
다큐, 비룽가(2014)
나는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듣고 싶어서, 넷플릭스에서 다큐 ‘비룽가(2014)’를 찾아봤다.
영화는 공원 내 마운틴고릴라의 개체수 감소가 석유 채굴과 생태 관광 때문이라고 고발한다. 영화 후기에는 천사, 악마, 돈 냄새가 나는 자본주의, 멸종 동물 보호, 생명의 가치 등 감상적이고 좋은 말들이 가득하다.
명사십리 바닷가에서 천천히 회전하는 풍차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관광객들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에 석유회사에서 파견된 인물이 주민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학도 보내주고, 앞으로 삶의 질이 달라질 겁니다."
우리는 현지 주민의 입장이 되어 고민해 봐야 한다.
만약 저런 제안을 받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거부할 수 있을까?
2014년 공원 책임자 메로드는 괴한의 피격을 받았다가 살아났다. 다큐에선 은연중 석유회사를 의심한다. 책에선 모든 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공원의 아래쪽 고마 시는 200만 명이 사는 대도시이다. 이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사람들은 나무로 불을 지펴 취사를 한다. 조금 여유 있는 사람들은 나무보다 숯을 선호한다. 숯은 쉽게 불이 피고 지속력이 있어서,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공원 인근에 숯 제조업자들이 있다. 이건 다큐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숯 제조업은 연간 3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거대 사업이다. 그에 반해 고릴라를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의 매출은 30만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민들 간에 이루어지는 숯 유통 거래는 은밀해 외지인들은 실상을 알기 어렵다. 책의 저자는 숲의 훼손 이유로 석유회사보다 숯 제조업자들을 의심한다.
메로드는 작은 댐을 하나 만들려 한다. 셸런버그는 그 정도의 작은 댐으로는 부유한 이들만 전기를 공급받을 뿐이라고 말한다. 가격이 비싸서 일반인들은 전기를 쓸 수 없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콩고강에 그랜드 잉가 댐(Grand Inga Dam)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프리카 전체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전기가 공급되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여자는 밥을 하기 위한 시간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고, 산업 구조는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옮겨간다. 개발 도상국 시대를 거친 우리가 체험한 사실이다. 당연히 출산율도 떨어져 삶의 질이 개선된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댐을 건설하면 콩고 정부가 굳이 이윤을 위해 석유를 파낼 이유도 없다. 하지만 저개발국의 사회적 인프라인 댐이나 다리의 건설은 선진국의 환경 옹호론자들에 의해 이미 막혀 있다. 2019년 유럽 투자은행은 가난한 나라에 화석 연료 발전소를 짓기 위한 일체의 자금 지원을 2021년부터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무엇이 우선일까?
메로데가 소장으로 부임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공원에서 농사짓는 이들을 강제로 쫓아내는 일이었다. 그는 이전까지 지역 공동체와 함께 환경 보전 연구에 몸 바쳤던 사람이었다. 공원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현지 전통 지도자들의 도움을 얻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간과했다. 사실 지도자들은 대개 불법 활동과 연관되어 있으니, 복잡하게 하느니 그냥 쫓아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강경한 태도는 지역민들의 보복 심리를 부추겨 야생 동물을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코끼리 250여 마리가 죽었다.
공원 주변의 주민들은 공원의 철망을 넘어온 야생 동물이 농작물을 훼손해도 어디에 하소연하지 못한다. 야생 동물을 죽이면 바로 처벌받는다. 이들에게 필요하고 다급한 건 공원이 아니다. 석유이고, 석탄 발전소이고, 댐이다. 환경론자들은 사라지는 종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과 함께 사는 현지인들의 피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지인들은 ‘환경’이란 말을 자신을 쫓아내고 자원을 강탈한다는 뜻으로 듣는다.
“그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나는 대학원에서 읽은 어떤 글을 떠올리곤 합니다. 환경 보호의 탈을 쓴 새로운 식민주의에 관한 글이에요.” (고릴라를 연구하는 영장류 학자, 세라 소여) p171
마운틴고릴라의 보존이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환경 옹호론자들은 공원을 보존하면서 지역 주민의 삶을 개선시킬 방도를 동시에 마련해 줘야 한다.
환경보호의 탈을 쓴 사업자들이 있다. 비룽가, 옐로스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만드느라 많은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들은 환경운동가들에 의해 쫓겨났다. 아프리카에서만 최소 1400만 명이 환경보호 난민이 되었다.
"원주민을 내쫓는 것은 환경 보호 정책의 부수적인 피해 같은 게 아니었다. 환경 보호 정책의 핵심이 바로 원주민 내쫓기였다."p168
전남 영암 학산면 일대 농지의 상당수가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 있다. 강대석 PD, 중앙일보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한국의 농토가 떠오른다. 전라도, 강원도. 전국의 논과 밭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태양광 시설’로 검색하면 줄줄이 기사가 뜬다. 기형적인 정부의 보조금 책정이 환경론자의 배를 불린 탓이다.
지난해 대통령은 유엔 기후변화 협약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미국‧ 영국보다 높게, EU의 배가 넘게 상향 발표했다. 이대로라면 2030년까지 원전 수십 기에 달하는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해야 한다.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반드시 바람직한 걸까?
최근 EU는 천연가스와 원자력 발전을 ‘녹색 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규정 안을 발의했다. 그러고 보면 원자력에 대한 우리의 공포도 과장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원자력'하면 '핵폭탄'을 연상하고 있지는 않은가? 에너지 밀도가 달라서 원자력이 그렇게 폭발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EU 국가 중 가장 재생 에너지 전환 비율이 높았던 독일은 2019년 여름 사흘간 전기 부족으로 정전 사태를 겪었다. 인접 국가에서 전기를 사 와야 했다. 원자력이 그린 택소노미에 들어간 이유이겠다. 재생 에너지만으로 전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지금 최선이라 여기는 방도가 시간이 지나면 아닐 수 있다. 25년 내지 30년이면 수명이 다한다는 태양광 패널이 쓰레기로 쏟아져 나올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2000년 초반 설치한 패널은 이미 수명을 다했다. 농지가 사라지며 낮아진 식량 자급률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코로나19 감염처럼 예측하지 못한 천재지변이 닥칠 때 식량을 자급하지 못한다면 나라의 주권을 보존할 수 있을까.
해상 풍력 발전은 원가가 원전의 5배인데, 이용률은 21.7%에 불과하다. 정부 보조금은 연간 10조를 상회한다. 정부는 이미 2034년까지 20기가바이트 용량의 해상 풍력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8일 오전 여수 해상에서 어선 600여 척이 해상풍력 발전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김영근 기자, 조선일보
해상 풍력에 필요한 풍속은 초속 7미터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평균 해상 풍력은 6.4미터에 못 미친다. 구글로 검색하니 2022년 2월 10일 여수의 풍속은 초당 4미터이다. 금요일은 2미터, 토요일은 3미터, 일요일은 5미터를 예상한다.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부제목이 책의 주제다.
곤충 무리는 먼 거리를 이동할 때 특정 기류를 사용한다. 풍력 발전은 그런 기류를 활용할 수 있는 높이로 건설된다. 곤충이 가장 높은 밀도를 보이는 높이는 150~250미터 상공이다. 발전기는 60~220미터 높이로 건설된다. 독일 항공 우주센터의 프란츠 트리프 박사는 논문에서 '풍력 발전소가 곤충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대략 1조 2000억 마리의 곤충이 죽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매년 영국에서 독일로 건너간 곤충의 3분의 1이 죽고 있다.
지구 환경에 관한 담론은 그간 계속 이어져 왔다.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예측과,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는 두 갈래 주장이 있다.
플라스틱이 나쁘기만 한 걸까?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인공을 받아들여야 할까?
코끼리의 상아와 거북의 등껍질을 대신한 플라스틱 때문에 멸종 위기의 코끼리와 바다 거북이 살아남았다.
북극곰의 개체수가 줄어든 건 지구 온난화보다 인간의 사냥이 원인이었다. 고래를 살린 건 그린피스가 아니었다. 기술의 발달로 고래기름을 대체할 인공 기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저 개발국에서 환경 보호를 주장할 수 있을까? 개발과 보호는 양립될 수 없는 걸까?
'무턱대고 그럴싸한 소리만 하는' 부유한 환경 옹호론자들의 '스타벅스 법칙' 은 우리의 농촌과 어촌에도 적용되었다. (풍력단지 건설은 스타벅스가 있는 중심가에서 최소한 5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입지를 선정해야 한다.) 풍력 에너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풍력 발전소 인근에 살지 않는다.
실제 기후 위기에 취약한 건 사회 기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저개발국이지, 뉴욕 같은 대도시가 아니다. 나라 간 경제적 불균형이 해소되어야 지구라는 큰 집의 환경 문제도 올바르게 공론화될 수 있다.
책을 덮고 난 지금, 나 자신도 이 책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잠시 책에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저자의 주장과 달리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책은 그간 내가 미심쩍어 했던 여러 의문에 답을 줬다.
저자의 목표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편적 풍요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사실을 올바로 전달하는 게 그의 관심사이다. 과학자, 언론인, 활동가는 환경 문제를 정직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저자는 강변한다. 방대한 저술을 한 저자와 한글로 옮기느라 애썼을 역자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