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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Nov 28. 2021

천연 효모 빵?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주말 신문의 책 리뷰를 읽으면, 때로 저자의 이전 책에 관심이 간다. 

이미 검증된 책이고 도서관에서 쉽게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작은 시골 빵집 ‘다루마리’를 경영한다. 그는 첫 직장에서 착취당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천연균에 비유해 풀어나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자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른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지 않다. 1990년대 초반,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안식년을 맞아 헝가리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게 된다. 그곳에서 저자는 헝가리의 풍성한 식문화를 접하게 된다. 경제 발전이 늦은 만큼 헝가리에는 첨가물이나 방부제가 없는 식재료가 재료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신선하고 소박한 먹거리, 농가에서 직접 제조한 와인.


그곳에서 저자는 산화방지제를 넣지 않은 와인이 식초로 변하는 과정을 자주 본다. 

식초의 영어 단어인 ‘vinegar’의 어원은 ‘와인’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vin’와 ‘시다’라는 뜻의 ‘aigre’를 합한 것이라 한다. 즉 신맛이 나는 와인이라는 의미이다. 알코올이 너무 발효되면 초산균이 알코올을 분해해서 식초로 변하게 된다. 


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을 물과 섞어 먹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오랜 항해로 시큼해진 와인이니 그럴 법도 하다. 


당시 일본에는 알코올을 허가 없이 양조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저자는 지금도 ‘발효는 만인에게 열린 기술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빵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저자는 첫 번째 취직한 빵집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한다. 빵집의 일꾼들은 수시로 바뀐다. 


왜 노동자는 이렇게 일해야 하는가?  

이렇게까지 일해야 자본가는 이익을 얻는 걸까? 

저자는 의문을 가진다.


그는 점차 노동자를 오래 일하게 하는 것만큼 자본가가 많은 이윤을 손쉽게 얻는 방법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이것은 정당한 거래의 결과였다. 어디에도 부정은 없었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자본가는 가격대로 노동력을 사고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자본가가 판 상품을 산 사람은 자유롭게 그 상품을 사용한다. 

노동력도 상품처럼 위와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어째서 노동력이 상품이 된 걸까?

마르크스는 노동력이 상품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 노동자가 자유로운 신분일 것. 노예처럼 지배당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자유가 보장되어야 자신의 노동력을 타인에게 팔 수 있다. 

둘째, 노동자는 생산 수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노동자가 자기 소유의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 상품을 만들어 팔 수 있다.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용당하는 것이다. 


저자는 시스템의 바깥으로 탈출하려는 시도를 한다. 직접 빵집을 열기로 마음을 먹는다. 

공장에서 제조한 이스트를 쓰지 않는 빵집, 직접 찾은 천연 균으로 만든 빵으로 저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뒤 기반을 잡는다. 고용한 직원들에게 빵집의 재정 상황을 수시로 알려주고 정확한 비율의 임금을 지불한다. 휴일을 준수하며 지나치게 과도한 수익을 남기지 않게 빵집을 운영한다. 


빵과 균에 관한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다. 


일본에서 유통되는 밀가루의 약 90%는 수입인데 수입 밀가루에는 매번 출하 전에 살충제를 뿌린다. 운송 중에 벌레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 살충제는 수확(harvest) 후(post)에 뿌려지기 때문에 이름이 ‘포스트 하베스트(post harvest) 농약’이다. 


농부는 자연의 상황과 변화를 알아차리는 감성이 있어야 자연의 힘을 빌려 땅을 다지고 터를 만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번개를 벼의 마누라, ‘이나즈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나즈마는 한자로 벼 도(稻)에 아내 처(妻)를 쓴다. 

"번개가 치면 공기 중의 질소가 물속에 몇 톤이나 녹아들거든. 공기 중의 질소가 비에 녹아들면 그 물이 땅을 비옥하게 하고 그 덕에 벼가 여물지 그래서 번개를 벼의 마누라라 하는 거야. 옛날 사람들이 과학은 몰랐어도 오감과 경험으로 자연을 속속들이 알았던 거지." p206


물과 밀. 천연균은 자기 고장의 물과 자연농법으로 키운 밀에만 반응했다. 저자가 만들고 싶은 빵을 만들다 보니, 재료의 세계화에 역행하는 희한한 지역 빵집이 되었다. 




소상공인의 핵심 가치는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기술자가 기술과 감성을 연마해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하면 가능한 일이다. 


지인 부부가 시골에서 제법 유명한 홍차 가게를 운영한다. 취미로 다도를 하던 부인이 남편의 제2의 직업으로 권유해 만든 가게인데, 몇 년간 이따금 들러보면 항상 분위기가 일정하다. 별로 싸지 않은 가격에도 손님은 끊이지 않는다. 차 맛을 보려고 몇 시간씩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직원을 좀 쓰면 어떻겠냐는 의견에 부부는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그렇게 하면  이윤은 늘겠지만 지금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균을 만드는 섬세하고 인내를 요하는 과정을 읽다가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천연 효모 빵'이 단순히 브랜드 이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정문주 옮김,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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