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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31. 2022

“왜 이런 참사가 반복될까?”

안전에 예민할 것


지난여름 딸네 가족과 천안의 한 리조트에 물놀이를 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물이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풀과 강처럼 물이 돌아서 흐르는 긴 유수풀이 있었다.


일곱, 여덟 살 손자와 파도풀에 들어갔는데 안쪽은 내 키보다 깊었다. 한 2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날 물놀이를 즐길 수가 없었던 건 내 눈이 노란색 튜브에 파묻힌 손자들 수영모만 쫓아다녔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특이한 빛깔의 모자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 사위와 딸이 각자 한 녀석씩 떠맡고 있었지만, 나는 불안해서 물놀이를 즐길 수 없었다.


두 번째로 들어간 풀은 유수풀인데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이 키가 1미터 24센티 이상으로 둘째 녀석 키가 딱 그만큼이었다.

성인용 튜브를 끼고 들어간 녀석은 머리가 거의 안 보였다. 어린이용 튜브는 물에 뒤집어질 수 있어서 성인용으로 고른 것 같았다. 녀석은 튜브 속에서 아래쪽 물만 보고 파도를 탔을 것이다. 그래도 물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겁이 없었다.


유수풀에서 장난을 심하게 치는 학생들을 봤다. 중학교 2, 3학년 정도 되어 보였다. 내 옆에서 놀고 있었는데 네 명이 버둥거리는 한 명을 강제로 물에 밀어 넣어 못 나오게 하는 거였다. 그 장면은 마치 노래방 같은 곳에서 생일을 맞은 친구를 괴롭히는 생일빵 같아 보였다.


'너무 심하네... 저렇게 물에서 못 나오게 하면... 어, 어, 어, 저러다.'


한 명이 네 명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드문드문 안전 요원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다가와 말리거나 지적하는 이가 없었다. 나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녀석들을 지켜봤다. 기다리다 멈추지 않으면 뜯어말릴 셈이었다.


다행히 장난이 그쳤다. 물에서 나온 아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이는 풀 가장자리에 서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순한 애였다. 나는 지금도 그 아이가 친구들에게 화를 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한동안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시간이 잠시 흐른 후 아이는 친구들에게 갔는데 거리를 두는 눈치였다.


'사내들이란… 녀석들을 무사히 키우긴 너무나 힘든 일이겠다. 세상에 깔린 게 위험이로군.'


그날 유수풀에는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서 물속에서 다리가 부딪힐 정도였다. 무리에 휩쓸려 대여섯 바퀴를 따라 돌던 나는 '이거 원,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돌다가 죽겠네.' 생각했다.

게다가 막내 손자를 챙겨야 하니  물놀이가 즐겁지 않았다. 딸과 사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했는데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결국 지쳐서 끙끙거리며 사람들을 헤치고 가장자리로 빠져나왔다.




이태원 사고 소식을 들은 날 밤, 남편과 나는 술을 조금 마셨다.


경찰을 코스튬 복장한 걸로 알았다는 말이 들렸다. 경찰이 현장에 있었던들 지시를 듣기나 했을까. 밀려오는 인파를 어찌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리 많이 몰려올 줄 아무도 몰랐다.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곽 속의 성냥처럼 빼곡히 군중에 의해 등 떠밀려 좁은 골목에 들어서게 되었다, 숨 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가슴으로 팔을 올릴 수도 없었던 곳,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던 곳.


자식을 잃은 어느 외국인 부모는 바늘로 피부를 1억 번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에 살지도 않는 외국인이 먼 나라를 찾아와 그날 그 시간 그 좁은 골목에 들어가 죽음을 맞은 걸 부모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욥기’를 읽었다.

우츠에 사는 욥은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이였다. 하지만 가족과 재산을 아무런 이유 없이 부지불식간에 잃었을 때 욥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님, 어찌하여 '저'입니까?"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의 시 「우리는 질문만 하다가 사라진다」가 떠오른다.


"어디에서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사는 것일까

어디에서 소금은 그 투명한 모습을 얻는 것일까

어디에서 석탄은 잠들었다가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

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

소나무는 언제 자신의 향을 터뜨리기로 결심했을까

오렌지는 언제 태양과 같은 믿음을 배웠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뿌리들은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왜 나뭇잎은 초록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1999년 6월 경기도 화성의 청소년 수련 시설 씨랜드에서 불이나 유치원생 등 23명이 숨졌다.

인솔 교사들은 대부분 먼저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다. 필드하키 국가대표 선수였던 김순덕 씨는 아들(당시 6세)을 잃었다. 다섯 달 후 그녀는 정부의 무책임한 사고 수습에 항의하며 현역 시절에 받은 훈장을 모두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이 나라에 더 이상 기대가 없다며.


하지만 그녀는 막상 뉴질랜드에 가서 보니 이런 참사는 국가만이 아니라 국민도 책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다.


아래는 세월호 사고 직후인 2014년 4월 20일 중앙일보 인터뷰 요약본이다.


-국민이 죄인이라는 뜻인가?

아들의 죽음에 나도 책임이 있었다. 사전에 내가 가든, 다른 유치원 부모가 가든 수련회 답사를 했어야 했다. 이곳에서는 항상 미리 부모가 답사를 하거나 따라가는 부모도 많다.


-어린이나 학생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다른가?

이곳에서는 열두 살까지는 부모나 보호자가 학교 수업이 마치면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 단체로 학교 밖을 나설 때 교사들은 안전 문제를 꼼꼼히 챙긴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살도록 한다. 사회적 보호와 독립의 선이 명확하다.


-왜 한국에서 이런 사고가 반복된다고 생각하나?

 한국 국민은 교육을 잘못 받았고 지금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에서는 개인보다 타인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한다. 학교에서 그룹 과제를 부여하고 그런 것을 잘하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반면에 한국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교육한다. 그러니 공동체 의식이 무너진다.


그녀가 강조한다.

모두가 변해야 합니다. 내 식구 내 자식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정말 각자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인터뷰 전문 https://www.joongang.co.kr/article/14504129




여름휴가를 다녀온 며칠 후 뉴스를 들었다.

태권도 학원에서 강원도 홍천에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갔다가 8세 아동이 사고를 당했다. 마흔 명을 인솔한 교사가 두 명이었다던가. 이날 다섯 개 태권도 학원이 리조트의 파도풀에 들어갔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 하나에 어른 둘이 지켜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사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전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무감각하다.


미국 CDC(질병 통제 예방센터)는 대규모 인파가 밀집하는 장소에서의 여행자 행동 지침을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이런 안전 매뉴얼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좌측통행이 자연스레 몸에 배듯 심폐소생술과 같은 응급조치, 인파가 몰릴 때  '안전'을 먼저 떠올리는 예민한 감각을 키우게 학교는 교육에 신경 써야 하고 정부는 사회 곳곳의 안전 매뉴얼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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