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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 Apr 12. 2020

애낳고 부끄러울 줄이야  

나만 이런걸까? 1


폭풍이 몰아친 후 고요 속에 있자니

얼얼한 회음부를 제외하곤

생각보다 몸과 정신이 너무 말짱한 느낌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세상 다 죽어가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누워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곧 민망함이 차올랐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의료진들이 다 달라붙을 만큼 몸을 비틀어대고

배가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고 흐느껴 울다가,

큰 폐질환이 있던 사람 마냥 숨이 넘어갈 듯 쎅쎅거리기를 반복했는데

애를 뿅 내보냈더니 그 모든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만신창이처럼 힘없이 누워 입원실로 옮겨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 정신과 몸은 너무 멀쩡했고,

상태를 봐주러 들락날락하시는 간호사님을 볼수록 너무나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물론, 동시에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분들의 노고와 격려가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어떤 병원은 산모를 격려한답시고 괜시리 윽박지르고 혼내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난 절대 채찍질이 통하는 타입이 아니다.

다행히 이 곳 분들은 모두 당근을 주셔서 무사히, 잘 해낼 수 있었다.

정말 극한 직업인 듯하다..

(손잡아 주신 간호사님 멍이나 안 들었으려나..)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너무나 쏘쿨하게 대하시는 간호사님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괜히 제 발 저리나 싶었다.

오빠도 워낙 많이 겪으신 분들이니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필요 없을 거라며 위로했다.


얼른 입원실로 가 좀 더 편안히 있고 싶었지만

마지막 관문, 소변보기를 클리어해야 옮길 수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아주 약하게나마 나왔지만 통증 때문에 정말 쉽지 않았다.

'큰 일 볼 때는 정말 죽겠구나..'싶었다.


급 부끄럼쟁이가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쫄보 같은 약소한 인사밖에 전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산모의 출산을 바쁘게 준비하고 계시는 영웅 같은 간호사님들을 뒤로하고

편안히 휠체어에 몸을 맡겨 입원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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