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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 Apr 02. 2020

무통주사, 엄마의 의사를 존중해 주세요.

만삭의 하루7


'무통천국'

단순히 진통을 약하게 해 주는 주사를 얘기 하나보다..라고 무미건조하게,

임신 전엔 조금 유치한 단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한글자 한글자 곱씹어 감사해야 할, 말 그대로의 무.통.천.국 이었다.

주사의 효과도 개인차가 있다고 하던데

만약 나에게 효과가 없었다면 자연분만이 가능했었을까 싶다.


잠시나마 천국을 안겨주었던 무통주사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다시 미칠 듯 아프다 괜찮아졌다가 반복되고 최대한 호흡을 크게 쉬었다.

진통이야 내 의지가 아니지만, 호흡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통 중에 일정하고 깊은숨을 쉬기란 말하기 힘 빠질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내가 숨 쉬지 않으면 나와 연결되어 있는 우리 아이는 숨을 못 쉰다.'

이 생각 하나로, 숨을 쉰다는 생각을 넘어 뱃속 아기에게 숨을 넣어준다고 생각하며 호흡을 했다.

(간호사분들이 귀가 따갑게 외치시기도 한다. '애기 숨 못 쉬어요!!')


지금까지 봐왔던 출산 중인 산모의 숨 가쁜 모습은

산모 본인의 숨이 가빴던 것보다, 이런 이유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몸도 사시나무 떨리 듯 떨렸다.

아파서 몸이 떨렸던 적은 아주 예전, 몸살이 걸렸을 때 딱 한 번이었다.

그마저도 잘 기억이 안 나, 몸이 파르르 떨렸다는 후기를 보면

추워서 떨리나? 무서워서 떨리나? 싶었다.

진통을 겪으면.. 그냥 떨린다. 나도 왜 떠는지 모르겠는데 몸이 미치도록 다다다달 떨린다.


자궁문은 얼마 안 열리고, 너무 아파하니 무통주사가 한번 더 투입됐다.

또다시 온몸이 쏴~한 천국이 오고

새벽부터 오후까지 자지 못했던 졸음이 한번에 쏟아져왔다.

진통 그래프는 그대로 올라가는데 졸음이 온다는 것은 무통주사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이다.


잠을 자도 되냐 정말 간절하게 간호사에게 물었다.

잠깐 자도 괜찮다는 말이 귀에 닿는 순간, 레드썬.


절대 못 자게 하는, 미치도록 지루한 선생님 수업을 듣던 고등학생 때가 떠오른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았던 극한의 수면욕구.




무통주사의 효과 및 산모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의견들이 분분한 것 같다.  

나 또한 몸에 약을 주입하는 촉진제를 맞은 상황이라

무통주사까지 들어가면 아이에게 안 좋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었다.

하지만 고통의 끝이라는 산통을 쌩으로 겪기엔, 난 통증에 매우 약했고(평소 마사지도 잘 못 받는다)

그런 괴로운 고통만으로 아이를 낳는다면 너무 끔찍한 기억만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크고 단순한 이유,

시대에 따른 기회를 잡는 것도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혜택.

옛날엔 없어서 못 맞았던 것을 의학이 발달하며 사용할 수 있다는데,

굳이 안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산모는 자신의 몸과 아이를 위해 열 달 동안 그 흔한 진통제 하나 못 먹어가며 버틴다.

그런 산모도, 출산이라는 극한의 고통은 무섭기 마련이다.

엄마가 힘들면 아이도 힘들다는 얘기를 임신 기간 내내 들었고,

나 또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조금이나마 덜 힘들 수 있다면, 결과적으론 아이에게도 더 좋은 일이 아닐까.


무통주사를 접해보지 못했던 부모님 세대를 통튼 어른들,

그리고 몸소 산통을 겪을 수 없는 남편들 중

간혹 무조건 무통주사를 반대하는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사랑과 전쟁에서 볼법한, 뒷목 잡을 권리 침해다.


선택은 엄마가 하는거예요.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것도 엄마,
아이가 가장 염려되는 것도 엄마입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고민 해 내린 엄마의 결정을 존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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