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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y 11. 2024

저출산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하여

MBC다큐 '아이 낳으라는 법 있나요'를 보고 나서

얼마 전 방송된 MBC 다큐플렉스 68회 <아이 낳으라는 법 있나요?>를 보았다. 체외수정 24회차를 시술받고 여전히 시도 중인 여성, 시술비로 빚에 시달리는 40대 난임부부, 20대에 첫 아이를 출산한 여성, 첫 아이 출산 후 경력단절로 이민을 꿈꾸는 여성, 난자냉동한 유튜버 부부, 현실적 조건으로 결혼과 출산을 꿈꿀 수 없는 20대 커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출산율 0.72명이라는 심각한 저출생 현상의 원인과 대안을 다양한 상황에 놓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보여주는데, 전문가 나부랭이가 나와서 엄근진한 태도로 고나리질하는 부분이 없어서 좋았다. 헌법을 인용해서 아이를 낳고 키울 권리를 기본권의 차원으로 다루며 무엇이 필요한지 세부조항으로 열거한 방식도 신선했다.

난임인구가 해마다 늘어나서 2023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23만명이라고 한다. 라떼만 하더라도 20만명을 넘었다,며 뜨악했었는데 이 무슨 안타까운 통계인지. 난임 당사자 여성 두 명의 이야기가 나오는 동안 쉴새없이 눈물이 흘렀다. 난임 소재만 나오면 무작정 눈물버튼 눌리는 나란 인간...


오히려 출연한 당사자들은 초연하고 해탈한 태도였고, 난 그저 모아둔 과배란 주사와 약병 더미들, 임신시켜준다는 용한 한의원 앞에 새벽부터 늘어선 난임부부들의 텐트 행렬만 봐도 줄줄 흘렀다. 난임시절 익히 들었던 ‘경주대추밭한의원’이었다. 난임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헬로 베이비>를 쓴 소설가 김의경님의 사연이었는데 어둡고 무거운 주제임에도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고 위트 있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소설가인 남편분이 정육일을 하시다가 지금은 시술비로 쓴 빚을 갚기 위해 물류센터 일을 하는 중인데, 청혼할 당시 “나는 고기를 썰 테니 의경씨는 글을 쓰세요” 고백했다는 부분에서 이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아끼는지, 이 부부에게 아이는 어떤 의미일지 알 것만 같았다.


다만 한 가지 불편했던 부분은 여자는 대학원생, 남자는 NGO에 근무중인 20대 커플의 이야기였다. 단란한 연애를 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애로사항은 지금의 소득으로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문제인데, 팩트폭격 하려는 양 그들을 재무설계사 앞에 데려가 앉혀서 소득을 낱낱이 공개함과 동시에 “이 소득으로는 상담하는 의미조차 없다”는 평과 이대로 결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굳이’ 듣게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두 사람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화하는 모습이란.. 주인공 희수씨가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아이에게 차별적인 사회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절절히 공감됐다.


하지만 이 다큐가 근본적인 현실을 다뤘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다. 저출생 현상의 원인으로 모두가 알지만 동시에 모두가 쉬쉬하는, 젠더 이슈를 제외하고서 논할 수 있을까. 나는 저출생의 해결방안으로 일·가정 양립 제도가 확산되는 것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여성이 육아로 인한 휴직이나 단축근무 혹은 유연근무를 쓰는 것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이로울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득을 보는 건 배우자 남성이 아닌가. 내 주변의 워킹맘들은 육아휴직 기간에는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우자의 눈치를 봐야 했으며 복직 이후에는 과잉노동,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직장 내 근무시간이 줄어들수록, 그녀들에게는 가정 내 가사 및 돌봄노동의 증가를 의미할 뿐,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쓰는 경우는 없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저출산의 원인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남성이 가사노동을 절대로, 죽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육아는 남성의 성 역할이 되어야 한다. 남성도 육아와 모성으로 인한 죄의식, 스트레스, 자기분열, 커리어 포기 경험을 겪어야 한다.” 그래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국가는 남성을 ‘따라갈’ 뿐”이기에.


최근에 읽은 책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에서 통쾌했던 부분이 있다. 책의 시선에 따르면 현재 사상초유의 저출생 현상을 애석해하는 것이야말로 기이한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저자 세라 자페는 자본주의나 국가 같은 제도가 노동력 착취를 위해 등장한 것처럼, 가족제도 역시 여성의 노동력을 통제하기 위해 시작됐기 때문에 “여성이 제공하는 노동을 싸게 혹은 무료로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체제의 붕괴를 아쉬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일갈한다.


현재의 저출생 현상을 애석해하는 건 누구의 입장인가, 무엇이 달라져야할 것인가. 모두가 외면하는 문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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