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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Jun 18. 2020

델리만쥬의 유혹을 이겨내는 법

 폭풍처럼 밀려드는 업무와 송곳처럼 나를 파고드는 부장님의 잔소리를 힘겹게 버텨내고, 간신히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를 빠져나온다. 일곱 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인파를 헤치고 구로역으로 향한다. 오늘의 1호선은 얼마나 더 지옥 같을까. 생각만으로도 질려버린 나는 고개를 저으며 플랫폼으로 향한다. 그때 익숙한 냄새가 내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 냄새는 순식간에 내 마음을 뒤 흔든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욕망뿐이었던 머릿속은 어느새 달콤한 냄새로 가득 찼다. 이쯤 되면 이 냄새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파를 따라 걸어가던 난 단호하게 멈춰 선다. 비스듬히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 간다. 사람들은 짜증 섞인 얼굴로 몸을 피하며 내게 눈총을 준다.

 “미안합니다. 근데 지금 꼭 델리만쥬를 먹어야겠어요.” 

    

 Delicious와 만쥬의 합성어인 델리만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8년이다. 그 후 2000년대에 들어 지하철 역을 중심으로 한 공격적인 매장 확장으로 90여 개의 매장이 영업을 하기도 했다. 폭신한 빵에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을 넣어서 바로 구워낸 델리만쥬는 지하철 역 가득히 향긋한 냄새를 풍기면서 나를 포함한 수많은 학생들의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두 장과 열 개 남짓의 만쥬를 바꿔주곤 했다. 지금도 델리만쥬의 냄새를 참아내는 일은 무척 힘겹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구십 개가 넘었던 델리만쥬의 매장은 현재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줄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그 냄새가 더욱 반갑다. 지하철을 타고 어딜 가더라도 먹을 수 있었던 델리만쥬는 이제 몇몇의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그 향긋함을 허락한다.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했었던 나는 구로역 델리만쥬 집의 다이아급 단골이었다.

 아침을 챙겨 먹는 것이 사치스러웠던 바쁜 출근길에 델리만쥬 한 봉지를 산다. 운이 좋아 방금 만들어 낸 따끈따끈한 만쥬 한 봉지를 받아 든다. 따뜻한 만쥬가 훨씬 맛있긴 하지만 사실 이럴 땐 무척 난감하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다 먹어야 하는데 바로 먹어버리면 뜨거운 커스터드 크림에 입천장을 다 데어 버리고 만다. 역에서 회사까지 오 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뜨겁고 맛있는 것을 다 해치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걸 덜렁덜렁 들고 회사에 들어가기도 그렇다. 그럼 가방에 잘 숨겨가지고 가면 어떨까? 아니다…이 드넓은 구로역도 가득 채우는 델리만쥬의 냄새가 우리 부장님 코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다. '아, 사지 말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며 대합실 벤치에 앉아 그 뜨거운 델리만쥬를 기어코 전부 뱃속에 밀어 넣은 뒤에야 회사로 향하곤 했다.


 2015년, 회사를 그만뒀다. 백수만이 누릴 수 있는 아침의 여유를 만끽하던 중 충격적인 기사를 발견했다. <달달한 그 냄새’ 지하철 델리만쥬 사라질 위기?> 매일같이 맡았던 구로역의 델리만쥬 냄새가 아직도 코 끝에 맴도는 듯한데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다이아급 단골 고객을 잃었던 델리만쥬는 어느새 매출 부진으로 인한 자금난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었다. 단순히 안타깝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어린 시절 늘 함께했던 고향 친구가 사업하겠다며 서울로 간지 일 년 만에 빚쟁이에 쫓겨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봤다면 비슷한 느낌일까? 

 회사를 그만두며 ‘언제 델리만쥬만 사 먹으러 한번 와야지’ 생각했다. 매일 출근 시간에 쫓기며 먹었던 델리만쥬를 그곳에 앉아 느긋하게 먹어보고 싶었다. 그 소박한 소망을 채 이루기도 전에 법정관리라니! 기사를 보고 급히 달려간 구로역에선 더 이상 그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결국 구로역의 델리만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구로역을 이용할 때가 있으면 이제 다른 업종으로 바뀌어 버린 그 매장 앞을 잠시 서성인다. 내가 매일매일 사 먹었다고 해봐야 그 매출이 얼마나 되었겠냐만은 왠지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이 곳에서 더 이상 나를 유혹하는 델리만쥬의 냄새가 나지 않는 건 결국 내가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공덕역에서 델리만쥬를 발견했다. 어쩐지 익숙한 냄새가 난다 했는데 역시 그 냄새였다. 반가운 마음에 천 원짜리 두 장을 들고 가게로 향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열 개들이 만쥬 한 봉지는 천 원짜리 한 장을 더 필요로 했다. 천 원짜리 두 장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고 카드지갑을 꺼냈다. 아주머니는 밝게 웃으며 카드를 받아주신다. 구로역의 아주머니는 카드 결제를 환영하지 않으셨다. 

 만쥬 한 봉지를 들고 대합실에 앉았다. 구로역은 아니었지만 공덕 또한 못지않은 오피스 단지다. 만쥬를 한입 베어 물었다. 커스터드 크림은 뜨겁지 않았다. 우물거리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검색창에 '델리만쥬'라고 적어넣었다. 몇 번 스크롤을 내리고 기사를 클릭한다. <'역사 내 달콤 아이콘' 델리만쥬, 법정관리 딛고 '재도약'> 

 만쥬를 하나 더 입에 넣는다. 달콤하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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