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등린이, 100대 명산 챌린지를 시작하다
나 혼자 산 탄다(5)
등산화도 마련했겠다, 배낭도 인터넷에서 저렴한 등산가방으로 하나 샀으니 어지간한 등산장비는 갖춘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봤자 등산화, 등산가방 이 두 개가 전부였지만 등산을 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를 갖추게 되어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제 정말 어느 산이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샘솟았다. 특히 등산가방은 3만원도 채 안 되는 초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했지만 나름 배낭가방으로써 갖추어야 할 기능들을 탑재하고 있었다. 가장 편리한 점은 매쉬 소재로 된 등판 덕분에 등에 땀이 덜 찬다는 점과 양옆의 수납공간 덕분에 물을 소지하기가 편리하다는 점이었다. 가방을 메고 있는 상태에서도 손쉽게 가방으로 손을 뻗어 물을 꺼낼 수 있으니 굳이 가방을 풀지 않아도 되었다. 산 타기 전에는 이런 기능성까지 바라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일반 배낭이 갖고 있는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등산의 제 목적을 갖춘 가방이라면 등산하기가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 자연스레 알아보게 되었다. 역시 모든 운동의 시작은 돈인가 보다. 그나마 등산은 초반에 어느 정도 장비만 갖추면 큰돈이 들지는 않는다지만 어디 사람 욕심이 그뿐이겠는가. 알아갈수록 등산 메이커에도 관심이 가게 될 것이고 좀 더 기능성을 갖춘 등산 제품들에 눈이 돌아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등린이에 걸맞은 저렴하지만 갖출 건 갖춘 등산 가방만으로도 대 만족이다.
등산화는 준비되었으니 이제 필드를 누벼볼 차례였다. 어서 빨리 실전에 투입되어 등산화를 써먹어보고 싶었다. 운동화와는 얼마나 다른 착용감을 선사할지 기대만으로도 설렜다. 등산가방에도 김밥 한 줄, 초코바 한 개, 물 한 통, 소시지 두 개 등 등산에 필수적인 행동식들을 알차게 챙겨서 등산 중간중간에 꺼내 먹을 상상을 하니 얼른 새로운 산으로 떠나고만 싶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명산인 수락산과 도봉산은 클리어했으니 다음 주말에는 어떤 산을 마스터해볼까 하는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산 몇 번 탔다고 이젠 어지간한 산은 다 탈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부실한 자신감마저 생기고 있던 차라 그다음 산은 좀 더 난이도가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 몇 번이나 타봤다고 그런 근자감이 생겼었는지 좀 웃기긴 하다.
그렇게 등산 입문에 접어들고 있던 차에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챌린지를 접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100개의 명산을 인증하는 국내 모 등산 브랜드에서 만든 100대 명산 챌린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다녀온 산 정상 사진을 찍어서 인증 어플에 업로드하면 쉐르파가 그 산 정상에 올랐음을 인정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10개의 산을 인증할 때마다 인증 패치도 준다고 하니 인증 굿즈까지 얻을 수 있어 구미가 당겼다. 평소 해외여행을 가서도 그 나라의 이름이 세겨진 마그넷을 꼭 사 왔는데 그걸 사서 우리 집 냉장고에 붙여놔야 그 나라에 갔다 온 인증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행 마그넷 모으는 것처럼 이 등산 인증 패치를 모으는 것은 내 안의 묘한 정복감을 자극했다. 등산은 그 자체로도 즐거운 것이지만 나름 공신력 있는 창구를 통해 그 산에 오른 것을 인증받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운 도전임에 분명했다. 대충 후기들을 읽어보니 100개 완등 하는 데에 넉넉잡아 3년은 넘게 걸린다는 게 중론이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보아도 일주일에 1개면 한 달에 4개, 12개월이면 48개, 어림잡아 2년이면 가능한 수치이나 매주 등산을 한다는 가정하에 성립 가능한 예시였다. 지금의 열정 상태라면 매주 등산은 기정사실이고 정말 불가항력적인 예외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2년 안에 100개 산을 완등하고 기념패까지 받아서 집안에 진열해놓고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라떼는 말이야~ 100대 명산 완등 했었잖아~'라며 거들먹거리는 장면이 순식간에 오버랩되자 괜히 누구한테 들킨 것처럼 슬그머니 민망해졌다. 어쨌든 도전은 즐거운 것이니까 이왕 등산하는 김에 100대 명산 챌린지에 도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100대 명산을 알아보았다. 다음 등산 도전지는 서울의 100대 명산 중에서 한 곳이 될 예정이었다.
서울의 100대 명산을 알아보니 총 5곳이 있었고 수락산, 도봉산, 청계산, 북한산, 관악산이 바로 100대 명산이었다. 그중에서 최근에 다녀온 수락산과 도봉산을 제외하니 그나마 청계산이 가까워 청계산을 첫 100대 명산 인증지로 선택하게 되었다. 인증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증 타월을 매장에서 수령해야 했는데 마침 청계산 근처에 매장이 있어서 미리 전화를 해서 재고 확인을 해보았다. 그런데 매장에 타월이 두 개 정도밖에 남지 않아서 빨리 수령해야 한다고 해서 마음이 다급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매장까지 헐레벌떡 뛰다시피 해서 도착하니 마침 딱 한 개 남아있어서 무사히 수령할 수 있었다. 힘들게 얻은 타월이니만큼 이 인증 타월로 청계산 정상을 반드시 정복해서 첫 인증을 남겨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아났다.
청계산은 지금까지의 산과는 달리 바위보다는 계단이 많은 산이었다. 끝없는 계단과의 전쟁을 벌이는 기분이랄까? 청계산과 함께 하는 즐거운 계단 스쿼트 운동을 한두 시간쯤 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달했다. 혼자 산에 올랐던지라 정상석에 도착해서도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뻘쭘하게 바라보며 누구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해볼까...... 속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같이 온 일행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어서 선뜻 부탁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역시 혼자 등산을 하면 이런 부분에서 불편함이 발생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예 아무도 없으면 부탁해볼 사람이 없으니 더 난감할 텐데 다행히 사람이 많이 있어서 누구한테 든 간에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해볼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된 셈이었다. 그간 해외여행으로 다져진 관광객에게 사진 부탁 스킬을 시전 해보자 싶어 정상석 근처에 서있는 사람을 찍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죄송하지만 사진 하나만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저도 찍어드릴게요!"
다행히 흔쾌히 찍어주시겠다고 해서 타월을 들고 냉큼 정상석 옆으로 다가섰다. 타월을 두 손으로 펼쳐 들고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첫 인증을 마쳤다. 이날이 바로 100대 명산 인증의 첫 시작이었다. 처음 인증을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드디어 등산인으로써 첫걸음을 내디딘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아직은 겨우 제대로 된 등산화와 초저렴이 등산가방 하나만 구비한 초보 등린이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첫 인증을 마치고 나니 진짜 등산인이 된 것만 같아서 기분이 뿌듯했다. 그리고 어서 빨리 다른 산들도 차례차례 정복해보고 싶은 의지가 샘솟았다. 청계산을 등산해보고 느낀 점은 그 이전의 산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의 산이라는 점이었다. 수락산과 도봉산은 바위바위한 산들이었던 반면에 청계산은 바위보다는 계단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매력을 가진 산들을 좀 더 많이 경험해보고 싶어 졌다.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다른 산들은 또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다음은 또 어떤 산을 경험해볼까? 즐거운 고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