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_젊은 ADHD의 슬픔
"나 성인 ADHD인 것 같아" 친구의 말에 ADHD가 뭔지 찾아보고 있다. 도대체 ADHD가 뭔데? 그렇게 찾다 만난 책 한 권, 이걸로 충분히 ADHD가 뭔지 알 것 같다.
브런치 대상 수상작
에필로그
나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고, 이는 어릴 적의 발달 장애를 바로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세하지만 가짓수가 많은 불가능과 축축한 우울이 0세부터 들러붙어 있었다. 서른에 닿은 지금도 집중력과 충동, 주의력을 비롯한 여러 가지의 조절에 장애를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태어날 줄 몰랐던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좀 더 상냥하고 재미있게 표현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에서 이 책이 출발했다. "모르겠다'라는 진술과 싸우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표현들의 힘을 빌렸다. 이것은 시간 여행 없이 나의 과거 혹은 미래와 화해하려는 기록이다. 내 질환과 삶이 나를 기만한다면, 나 역시 불가능을 기만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잘 쓴 글은 글의 첫머리에서 판가름 나듯, 책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에필로그다. 책 표지와 목차에 이어 에필로그까지만 읽고 이 책을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지음 작가의 에필로그를 읽는 순간 이 책을 꼼꼼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충 볼 책이 아니었다. ADHD에 대해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가 저자의 문체에 반했다고 할까?
축축한 우울이 0세부터 들러붙어 있었다.
'모르겠다'는 진술과 싸우기 위해 표현들의 힘을 비렸다.
미래와 화해하려는 기록이다.
맨 처음 정신과로 이끈 건 흡연 문제였다. 뇌파 측정, 지능 검사와 우울증, ADHD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정지은 님은 ADHD가 맞습니다. 정확히는 주의력결핍 우세형입니다." p34
경계성 지능장애 수준,
지적장애인과 일반인의 경계선에 내가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너무 슬퍼 터진 생수병처럼 눈물을 짜냈다. 자존감은 완전히 젖어 곰팡이투성이가 되었고, 눅눅한 마음에서도 코를 조롱하는 듯한 냄새가 났다.
"지음 님의 치료 목표는 남들보다 뛰어나지는 게 아니라, 딱 남들만큼만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네."라고 했지만 실은 참 거지 같은 목표라고 생각했다. 날고 기어 봐야 고작 평균이라면 날거나 기려는 시도 또한 무의미했다.
ADHD 진단 후, 갑자기 외계인이 된 듯한 느낌과 성격적 개성이라 착각했던 오로지 병적 징후 들일뿐이었다는 이물감에 오래 괴로워했다.
그때 난 믿지도 안는 신의 눈에 띄려고 철딱서니 없는 시비를 자주 걸었다. 듣고 있으면 엿듣지만 말고 부도난 나의 삶을 압류하라고 치댔다."나에게 반말한 인간은 네가 처음이야. 소원을 들어주지." 환장할 클리셰를 꾀하려는 시도였다. p59
'지 결혼식에도 늦을 년'
대다수의 ADHD 환자들은 청각 자극에 취약하다.
내가 정녕 미친 또라이 쓰레기라면, 그걸 인지했다는 점에선 가망이 있다. 대체 왜 이러는지는 모르지만 궁금해하니 언젠가는 답을 찾을 것이다. 모든 결론은 탐구에서부터. 모든 갱생은 후회로부터 기인하니 말이다. p93
Q. ADHD여서 좋은 점도 있나?
이 질문은 마치... 똥을 밟은 사람에게서 향기롭냐고 묻는 것 같다. p98
Q. 검사 비용은 얼마인가?
30~45만 원이다. 나는 ADHD 검사, 웩슬러 지능검사, 자율 신경계 검사, 우울증 검사 등을 했다.
Q. 약, 효과는?
콘서타와 스트라테라
1. 시간관념 생성
2. 의욕 고취
3. 비현실감 제거
4. 꼼꼼함
5. 효율적 우선순위 정비
6. 감정 조절
7. 언어 조절
Q. 부작용은?
수면장애
우울함, 가라앉은 기분
식욕 부진과 폭발
입 마름과 빈맥
불안
경미하거나 심한 신경증
파친코에 다니는 건달처럼 등교를 지속했다. 성적도 품행도 나쁘고 갖가지 말썽이 끊이지 않는 내게 학교란 희망도 잭팟도 없는 곳이었다. 경찰 같은 선생님이 불시에 나를 연행해 가는 곳이기도 했다. 내가 교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나에 대한 불가능뿐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조별 활동에 충실하지 못하고, 성실한 결과물을 하나도 못 내는 내게 모두 '너는 왜 그러냐'라고 물었다.... 나도 몰랐다. p146
못난 생각들이 반죽처럼 뒤섞였고 어떤 방으로도 구워지지 않았다.
가지 각색으로 엉망인 우리들을 묶는 키워드는 스프링클러처럼 불시에 터지는 눈물일지 몰랐다. 나는 대게 어이없고 화나서 울고, 유정이는 억울해서 울고, 지원이는 힘이 부칠 때마다 울었다. 함께 울 때는 없으니 한 사람이 울면 나머지가 변호사와 개그맨의 역할을 나눠 맡았다. p183
모자람은 꽤 괜찮은 친구다. 나를 거장으로 만들어 주진 못해도 거장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아마추어로는 만들어 주니 말이다.
인생을 떳떳하지 않게 만든 수많은 실수들이 ADHD에서 기인했다는 것 때문에 오랫동안 내 병을 받아들일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평생 충고가 통하지 않는 아이로 살며 수집한 평가는 아래와 같다.
1. 충분히 설명해 주어도 "왜? 언제? 누가? 내가? 아닌데? 몰라? 어떻게 알아? 등으로 되묻는다.
2. 나이에 맞지 않는 사고를 한다. 대책 없는 결정, 허술한 계획. 시공간을 가리지 않는 공상과 몽상
3.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고 말꼬리를 잡는다.
4. 주변이 너저분하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다.
5. 명령이든 공동체의 편의를 위해 모두가 합의한 룰이든,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다.
6. 생각 없이 말한다.
7. 멍청한 건지 상대방을 우습게 보는 건지 헷갈리게 만든다.
8. 뭘 하든 두 번 손이 가도록 만든다.
9. 말이 많은데 영양가 없는 말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대화가 피상적이다.
10. 공지사항을 숙지하지 않고 당연히 준비물을 챙기지 않는다.
11. 잘 깨고, 잘 떨어뜨리고, 잘 잃어버린다. 본인 몸도 잘 다친다.
12. 자꾸 칭얼대는데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13. 우연히 꽂힌 흥미, 사람, 취미에 1차원적으로 집착한다.
14. 무리하게 파고들다 무리하게 정지한다.
등등
나의 최악은 '변할 듯 변하지 않으며 끝끝내 사람을 지치게 하는 점'이라고 했다. p207
하릴없이 삐걱대는 나날도 전부 춤이었다고 말이다. _에필로그
│책을 읽고 느낀 점│
제목만 봐서는 큰 기대감이 없었다. 정신과를 다니며 증상을 개선해 보려는 의지에 대한 뻔한 클리셰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했었다. ADHD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자 책을 펼친 거라 기본 정보만 습득해도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잘 쓴 책이여서 놀랬다. 작고 보잘것없는 네잎 클로버를 발견했을 뿐인데 굉장히 운좋은 사람이 된 것 마냥 신나듯, 프롤로그를 펼치는 순간부터 날 것 그대로의 자연산 팔딱이는 작가의 문체에 빠져 신나게 책을 읽었다. 어떤 문장은 그냥 보내기 아까워 기록으로 남겨놨다. 이래서 대상이구나. 그래! 대상 인정! 요즘 신인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뻔한 전개와 맥락 없이 결론 짓는 풍선 빠진 글을 읽느라 지루하던 참에 이런 책을 만나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ADHD로 사는 삶이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왜 그런지 모르고 사는 삶속에서 우울감을 느끼고, 답을 찾아 헤매다 결국 자존감이 떨어졌겠지..... 만, 아픔을 글로 풀어내어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텐데, 작가는 결국 해냈다.
나는 먹고살기 바쁘고 작문 실력도 별로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글쓰기의 배설작용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나서 용번을 보는 것처럼 마음에도 배출구가 필요하다. 마음이란 비워주지 않으면 고일뿐이니 정신적 배설이 시급하다. p236
글쓰기를 배설작용과 항우울제보다 낫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했다.
자신이 ADHD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너는 ADHD가 아닌 것 같고, 나도 아닌 것 같다'고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고민이 된다면 전문이에게 상담을 받아야겠지만 말이다.
우선, ADHD는 아닌걸로!
ADHD 자가 진단 테스트는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