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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의 브런치 Jul 03. 2024

19살, 다시 너를 키운다면

엄마의 가르침 

   현재를 살아가기 힘들어설까? 최근 드라마「선재 업고 튀어」,「내 남편과 결혼해줘」 에선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리프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지나보니 속았고, 친구가 배신했고, 시한부 선고를 받은것도 억울한데 남편이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을 죽인다. 이 모든 기억을 안고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통쾌하게 복수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내용이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일들은 반복됐다. 하지만, 문제를 대하는 생각과 태도를 바꾼다면, 운명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 다른 드라마는 복수가 아닌 사랑을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데, 그 사랑이 애틋하고 아름다워 꽁꽁 감춰둔 연예 세포가 깨어나기도 했다. 


어느날, 딸님*이 내게 물었다. 

"엄마,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어?" 처음에 든 생각은 "으.. 다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걸 또 하라고? 엄만 지금이 너무 편하고 좋은데? 이제야 안정을 찾았는데 다시 돌아가라고? 난 지금이 딱 좋아."라며 상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아니, 그래도 꼭꼭 돌아가야 해. 결혼하기 전으로 말이야. 그럼 뭘 하고 싶어?" 다시 찬찬히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좋다. 

"엄만, 다시 돌아가도 너를 낳을거야. 꼭 너를... 그리고 지금처럼 아낌없이 사랑해 줄거야. 너에게 쏟아 부은 사랑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서로 마주보고 웃음) 딱 거기에 몇 스푼 더 넣어 이번엔 흘러 넘치게 할거야. " 진심이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힘들고 고달팠지만, 행복했고 많이 웃었다. 바닥에 남은 몇 방울의 사랑까지 아낌없이 삭삭 긁어 다 부어주었기에 후회도 없고 아쉬움도 없다. 지금의 내 자리, '엄마'라는 삶을 사랑했다.


'엄마'라는 자리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은 묵직하다.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 있을 수 없고, 바람타고 유유하게 날아 다닐 수도 없다. 원할 때 마음대로 꽃피울 수도 없고, 뿌리를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다. 그늘 한 점, 물 한모금 없는 척박한 땅에서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야 할 때도 묵묵히 그 자리를 버텨야 한다.  잠이 쏟아져도 아이가 울면 달려가 필요를 채워줘야 하고, 몸 아파 누웠어도 아이 배고프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 냉장고 문을 벌컥 열고, 뚝딱 밥을 차려내야 한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단 순간, 평생 떼지못할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나는 죽고 없소'의 시기인 사춘기 시기를 혹독하게 보낸 후라 그 어렵다는 고3 시기를 무탈하게 보내고 있다. 섬세하고 까칠한 아이의 사춘기는 길고 고달팠다. 끝이 안 보이는 까만 터널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폭풍우 몰아치고 번개쳐 무너졌던 집터를 다시 세우는데에는 피나는 노력과 고단한 인내가 있었지만,  '비온 후 맑음'이라 했던가. 이제야 안정을 되찾았다. 아이는 다시 내 품에 안겼다. 그 터널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혹한기 훈련을 한 번 더 치뤄야 한다면, 이번엔 힘을 빼고 출발해야겠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을거다. 별 거 아닌 일에 소리치고, 반찬 투정하고, 토라지며 억지를 부린 철없던 어린 나를 너를 통해 본다. 그 시절 어머니는 얼마나 더 고달팠을까..  왜 그토록 세상 모든 게 어머니 탓이라는 듯 찌질하고 파렴치하게 모든 감정을 쏟아냈을까..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내 아이가 그토록 내 속을 썩이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미처 몰랐을거다. 여전히 투정부리며 속을 긁었을테고, 할머니가 돼서도 나에게 못해준 것만 떠올리며 원망했겠지. 





19년전, 아니 훨씬 전 20대로 돌아간다면, 여행 한번 못해보고 일만 하다 어찌어찌 결혼한 억울함을 먼저 풀어야겠다. 배낭메고 어디 갈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니 스멀스멀 웃음이 난다. 하지만, 네가 안겨준 가슴 터질것 같은 따사로운 행복이 바람타고 안부를 전할 때, 나는 그 시간속에서도 너를 그리워할 것이다다. 죽도록 밉고, 살고 싶을정도로 사랑스럽던 너의 보드라운 숨결을 다시 느끼러 갈 것이다. 



내 타임리프 드라마는 복수보다는 '사랑'이다. 지금의 기억을 안고 19년 전으로 돌아가 너를 다시 키운다면 

한 손에는 사랑과 다른 손에는 여유를 쥐고 있을테다. 불안과 걱정보다는 여유로움으로 바라보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시간을 기다려주며, 매일 꼭 가슴터지게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줄거다. 모자람 없이 너를 키웠고 성실하게 나를 키웠지만, 딱 하나 아쉬운게 있다. 그날의 기록을 모아 책을 쓰지 않은 것이다. 책은 나같은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며 굳게 닫은 신념을 폴폴 먼지나는 창고에서 꺼내 이젠 닦고 싶다. 





*이 글에선 딸을 딸님으로 표현합니다. 


엄마의 가르침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 

시작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애플라이프]블로그에서

엄마들의 사소한 고민을 들어주는 육아상담을 하며

아이 마음 스르르  열리는 마음 대화법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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