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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미모미 MomiMomi Apr 17. 2020

진실한 사람은 착하고 아름답게 되어 있어

뼛속까지 내려가서 그린 그림 <윤형근의 청다색>


진실한 사람은 착하고 아름답게 되어 있어 

<윤형근 작가의 청다색 Burnt Umber>

1928년생의 윤형근 작가는 김환기 작가의 사위로 더 많이 알려져 있던 화가다. 작가의 초기 작품들은 다양한 시도와 더불어 장인어른의 그림과 어딘가 닮아있는 흔적도 작품 군데군데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작품은

1973년 숙명여고 부정입학 사건을 겪은 후 대변환기를 겪는다.


교사로 재직 시절 작가는 해당 학교의 부정입학 사건을 고발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던 그는 ‘상식’을 지켜내다 무수한 고초를 겪었다.  


어두운 시대에서 “화가 나서”그림을 그렸다는 의 작품은 땅의 색인 암갈색과 하늘의 색인 푸른색을 섞어 무수히 덧칠해 나감으로써, ‘순검정 (burnt umber)’에 가까운 커다란 막대 기둥 같은 구조를 완성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땐,

마포 자루에 둔탁해 보이는 굵직한 검정 기둥에서 뭔지 모를 응축된 억울함이 느껴졌다. 색감이 화려한 작품들 속에서 홀로 말없이 자리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작품에서 왠지 고집스러운 사연이 가득할 거란 추측이 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2018. 출처. 한겨레 신문>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고인이 된 윤형근 회고전 관람을 통해 화가의 인생을 엿보았다.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가슴 밑바닥에 간직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작품들을 통해 온몸으로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겉으로 화려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남들이 보고 환영할 만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위치한 ‘타들어감’과 정면으로 마주할 뿐이었다. 자신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그것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려낸 것이다.    

타 들어가는 화를 피할 수도 없었고 피하지도 않았다.


붓도 아닌 듯한 커다란 빗자루 같은 도구로

땅의 색과 하늘의 색을 무수히 덧칠할 뿐이었다.

자신의 내면을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본질 하나만을 향해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는 시대를 향해서도 진실했고, 자신이라는 한 사람에게도 처절할 만큼 진실했다.


<작가의 화실 사진,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화가만큼의 정치적인 고초를 겪는 시대는 지났지만,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무수히 많은 내면의 고초를 겪으며 살아간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는 물론이고,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올린 내면의 상처 입은 자아와의 관계 속에서도 그렇다. 반복적으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의 순탄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인생길을 성장으로 이끄는 단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밖으로 꺼내놓는 과정과 시간이 부족하다. 그때그때 상처를 임시로 덮고 원래 삶이 그렇다는 듯 하루하루를 땜질하며 나를 외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윤형근의 작품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써내려 간 일기장 같다.

고민이 있고,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있는데
미래의 이름 모를 독자에게 읽힐 것을 염두하여

‘오늘은 힘들었지만, 내일은 그래도 좋아질 거야.’라고 급하게 마무리한 겉만 긍정으로 색칠한 일기장이 아니다.


시간을 들여 가슴 밑바닥에 위치한 어두움과 찌질함을 끝까지 파고 헤치는 한판의 정면승부와도 같다. 나와의 정면대결이다.


`내가 나의 깊숙한 것을 인내하고 만나주지 않으면 이 세상 누가 이것을 만나주겠는가?`

예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을 듯한 자신의 밑바닥을 만난다는 것은 여간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솔직하기가 제일 어렵기 때문이다.


백지를 펴놓고 자신의 감정의 뿌리를 찾아 내려가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결국에는 해야 하는 일이다. 적어도 죽기 전에 몇 번 즘은 진짜 나와 만나봐야 되지 않을까?  


나의 찌질함과 만남의 과정은 눈물 콧물 범벅이지만, 만남의 결과는 의외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가끔은 찌질함이 진정한 최선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며, 스스로를 칭찬하게도 한다.

윤형근 작가의 순검정의 막대 기둥은 모든 껍질을 벗어던진 나의 본연의 모습을 비추어 주었다.


작가는 수 만 번의 덧칠을 통해 화를 승화시켰을 것이고, 진실한 나를 만나는 환희를 맛보았을 것이다. 집요한 자기와의 만남을 통해 결국에는 커다란 천지문이 활짝 열리는 광경을 보았 것이다.

작가는 돌아가고 이 세상에 없지만, 진리 한 가지에 집중한 작가의 정신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나는 이렇게 미련할 정도로 한 가지에 몰두하고 파고드는 작가들을 사랑한다.


예술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일반인에게도 정작 중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멀고도 멀 것 같은 예술이지만 내 일상에 찾아와 중요한 것 한 가지에만 집중하라고 길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서 보았던 작가의 인터뷰 글 마무리할까 한다.


공중에 부유하며 헷갈리게 하는 수많은 문제들과 직면했을 때 내가 자주 떠올리는 작가의 말이다.


"한두 장은 속이며 그릴 수 있을지 몰라도 계속 그리면 그 사람의 품위가 나타나게 돼 있어. 그 사람의 품격이 작품의 품격이야.

진선미
진만 가져가면 돼
진실한 사람은 착하게 돼 있고
진실한 사람은 아름답게 돼 있거든.

진짜 그림은 무서운 감동을 주는 거야.
그것이 그림이야.
추사 선생님의 세한도를 봐.
그 시절에 제주 유배지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고난을 겪은 거지.
엄청난 차원의 감정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그런 그림을 못 그려.

미술은 아름다운 것이야.
겉이 알록달록한 게 아니고...

내면이 아름다운 것.
진리에 사는 것
진리에 생명을 거는 것

품격 있는 사람이 점 하나 찍으면 아름답지
작품은 그 사람의 흔적. 분신이야...



<배경 이미지 출처. PK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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