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미모미 MomiMomi Apr 23. 2020

소정 변관식의 외금강 삼선암 추색

뚝심 한 사발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위원들이 점심식사로 냉면을 함께하는 자리였다. 당시 수상자 선정을 놓고 미술계에 비리와 파벌 싸움이 난무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수상작품 선정을 놓고 작품성과 예술성의 우위를 논하기보다 파벌싸움으로 물든 혼탁한 심사과정이었다. 이에 화를 못 이기고 먹고 있던 냉면 한 사발을 집어던진 심사위원이 한 명 있었다.

그가 바로 소정 변관식이다.

그는 이후 심사위원 자리를 박차고 나가 더 이상 미술계의 주류에 얼씬 않고, 홀로 재야의 길을 걸었다. 8년간 금강산을 드나든 덕분에 금강산의 진풍경을 수많은 작품으로 남겼다.

한국화.
솔직히 좀 올드해 보이고 어딘지 모르게 칙칙해서 왠지 할아버지 댁에나 어울릴 법한 그런 그림이라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누군가는 중국과 일본과는 대조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림인 한국화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며 비판을 할 때도 못 들은 척했다.


물론 나 같은 일반인이 들은 척하거나 못 들은 척하거나 무슨 차이가 있겠으나, 귀퉁이에 곰팡이가 스멀스멀할 것 같은 역사가 깃든 흑백의 그림은 나의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소정 변관식, 외금강 삼선암 추색


2019년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한국화의 두 거장 전에서 우연히 마주한 소정 변관식 화백의 작품 하나가 나의 이런 무지한 선입견을 저 멀리 날려 보냈다.


벽에 걸기 좋게 옆으로 기다랗게 그려진 다른 한국화와 달리 세로로 길쭉길쭉한 이 작품은 그다지 친절한 맛은 없었지만 답답함을 뻥 뚫리게 하는 사이다였다. “Yes”를 강요하는 외부 압력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No”를 힘차게 날리는 축구공 같았다.

작품의 이름은 ‘외금강 삼선암 추색’이다.
 
한국화. 운 좋게 눈이 살짝 열린 기회가 와서 엿보았더니 의외로 어렵지 않은 구석도 있었다. 의외로 참신한 맛도 있었다. 의외로 알아가는 즐거움도 선사해 주었다.


먹 하나로도 이리 많은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재주 또한 놀라웠다.  

작품명의 한자를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대충 금강산 바위의 가을 절경을 그린 것이로구나 감이 왔다. 시커멓게 그림 화면을 가로막고 있는 굵직한 나무로 보이는 저것이 삼선암이라 일컫는 세 개의 바위 가운데 하나다. 


금강산을 가보지는 못하지만 실제 풍경이라고 하니 진짜 저런 나무같이 길쭉한 바위를 직접 보고 싶다. 

내가 이러한데 고향이 북녘인 어르신들 마음은 오죽할까?

한국화를 볼 줄 모르는 맹 눈인 나에게

작품에서 화가의 충만한 기백이 느껴졌다.

첫눈에 압권의 소재를 데려와 실작품 첫 소절에 이를 구현했다면 여간의 배짱과 자신감이 아니다.


그림 앞을 시커먼 바위가 턱 가로막고 있는데도 구도가 편안해 보이는 건 화가의 뛰어난 사전 계산 아니면 엄청난 습작과 상상의 시간이 깃들어 있을 거라 짐작해본다.

어찌 되었건 이 작품을 보자마자 나의 두 줄 감상 평은 이러했다.

시원시원해서 마음에 듦’, ‘왠지 모르게 통쾌함’

작품에 관심이 생기니 작품 옆에 쓰인 작품 설명 글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미술에 대한 설명 글은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다. 쉬운 단어로 설명해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텐데 늘 아쉬운 부분이다.

‘변관식의 수많은 금강산 그림 중에서 손꼽히는 명작이자 대표작품이다. 금강산의 삼선암 봉우리를 대담하게 수직으로 치켜세운 구도뿐만 아니라 그의 대표적 기법인 적묵 법과 파선 법으로 만들어진 먹빛은 감상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변관식의 금강산 그림들은 시각적인 사실성보다는 장엄한 풍경이 주는 감동과 주관적인 해석에 그 의의가 있다.’

생소한 단어들이 있었지만 그만의 특별한 기법이 있었기에 작품이 강렬하게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함께 전시된 청전 이상범 화백의 평화롭고 얌전한 작품에 비해 뭔지 모를 반항아적 기질이 짙게 다가온 것은 그의 성품과 화법이 작품에 녹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소정 변관식 선생의 뒤를 캤다.

국전 심사위원 파벌 싸움으로 인한 냉면 사발 사건과 미술계 주류에 몸담지 않았기에 생전 그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기사들이 있었다. 동료 화가들이 대중의 입맛에 맞게 좀 더 밝고 평화롭게 그려보라며 이렇게 조언하기도 했단다.

자네 그림은 너무 검네.”

당시 많은 화가들이 연한 묵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 반면 변관식 화백은 진한고 마른 먹 색을 이용했기에 그림이 더 칙칙해 보인다고 동료들이 비꼬았던 것이다. 


그들에 대해 변관식 화백은 더욱더 검게 그리는 것으로 응대했다 한다. 이 대목에서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화백의 외고집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파벌싸움이나 하는 화가들에게 냉면사발을 던질 수 있는 그의 ‘욱’함이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 왠지 더 친밀하게 다가왔다.  마치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니들이 예술을 알어?’

변관식 화백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진하고 입체적이고 시원시원하다.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의 갓을 쓴 노인들의 몸짓이 재미있다.

허리가 꾸부정한 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손과 발의 방향이 같다. 화가의 실수인지 재치인지 모르지만, 냉면 일화를 떠올리며 한 번 웃고,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을 보며 한 번 더 킥킥 웃게 된다. 비록 생전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겸재 정선 이후 금강산을 가장 잘 그린 화가로 평가받다.

전시회에서 구입한 도록 마지막 페이지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우유 한잔을 옆에 두고

부지런히 습작을 하고 있는 백발이 성성한

선생의 사진도 실려있었다.


주류를 거부하고 홀로 금강산을 방랑하며 답답한 마음을 자연에서 달래고 작품으로 승화시킨 노장의 모습이었다.  당시의 주류였던 일본풍과 중국식 화법을 거부하고 본인만의 화법을 개발한 혁신가의 모습이었다. 

출처. 갤러리현대 발간 도록

가끔 마음이 답답할 때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소정 선생의 도록을 꺼내어 작품들을 감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가 틀린 것 같은데 더 큰 힘을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여 올 때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순발력과 말주변이 부족하여 바로 대응을 못해 속앓이를 할 때가 있다. 소정의 작품은 그런 나에게 탄산수다.

소정처럼 냉면사발을 집어던질 뚝심은 없지만 그림을 보며 내 나름의 뒤풀이를 해본다. 가본적 없는 금강산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말이다.

세상 어딘가에 닮은꼴인 내 편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타인의 비판이나 조롱을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었던 예술로 승화시켰던  진정한 예술가. 그를 닮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청과 이우환 화백의 Dialogu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