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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Nov 18. 2022

어느 컨텐츠 중독자의 상념

네, 맞습니다. 저는 중독자입니다. 처음엔 활자중독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책부터 시작해서 글자가 적혀 있으면 일단 읽게 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8할이 활자중독덕분이지 싶습니다. 언젠가부터는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습니다. 사실 제가 정말 싫어하는 장르가 아닌 이상, 정말 영화를 많이 봐서 넷플릭스를 아무리 돌려봐도 사실 볼게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미드를 본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넷플릭스가 없었던 어둠의 시절부터 온갖 미드를 봤습니다. 그 덕에 토익 LC공부는 조금 쉬웠지요. 틈만 나면 뭘 보는 컨텐츠 중독자로서, 웬만한 걸 보면 별 감동이 없습니다. 어제 본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지금 읽고 있는 책 작가가 누구지? 저 미드는 본 거 같은데 왜 내용이 기억 안나지? 나이가 들수록 이런 증상은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저의 마음에 깊이 남은 작품들이 있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거야”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해준의 대사입니다. 이 영화는 제가 연이어 이틀 동안 두 번을 봤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로 칸에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고, 그 서사도 감독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작가를 따로 두는 박찬욱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봉준호가 더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헤어질 결심’은 영화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완벽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줄거리는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남편을 죽인 것으로 의심 받는 여자 서래, 그를 수사해야 하는 형사 해준(애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아내가 있는)의 사랑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사이에 살인 사건이 크게만 세 개 일어납니다. 영화는 멜로와 스릴러를 섞어 놓은 듯한 외형을 하고 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남는 것은 사랑에 대한 담론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쉽습니다. 그러나 헤어지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든, 마음을 잠식하고 있는 깊은 슬픔이든, 나쁜 습관이든, 후회로 얼룩진 기억이든 그것들과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영화는 서래의 마지막 선택을 충실히 보여주면서, 헤어질 결심을 했지만,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미결로 남고 싶었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아름다웠습니다. 마침내. 박찬욱이 사랑을 찾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최근에 저로 미드를 보다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한 것은 미드 ‘천국의 깃발아래’입니다. 스파이더맨 2로 익숙한 앤드류 가필드가 정극 연기를 통해 연기력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형사물입니다. 그런데 그 배경이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몰몬교로 알려진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라는 종교입니다. 이 드라마는 아내와 돌이 갓지난 아이가 참수된 참혹한 살인 사건 현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사건의 담당형사는 독실한 몰몬교 신자이고, 이 살인 사건이 발생한 유타의 한 지역은 거의 몰몬교 신자들만 거주하는 지역이어서 모든 이웃과 가문이 서로를 잘 알고 있는데다 강력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지역이라 더욱 그 충격은 크게 다가 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몰몬교의 독실한 신자인 형사와 그의 파트너인 인디언 출신 무신론자 형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종교와 믿음, 신앙과 맹신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갈등에 대해 주인공 형사의 섬세한 감정 표현을 통해 그 간극을 잘 보여줍니다. 결국은 몰몬교의 극단적 근본주의 사상과 그 사상이 개인적인 신념이 어린 시절부터 강압적인 종교 교육과 폭력적인 가정 환경에서 잘못 증폭되었을 때 어떠한 비극이 생겨나는 지를 통해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가져오는 폐해에 대하여 보여주면서, 바람직한 가장으로서 신앙심을 통해 사랑을 발현하는 형사의 모습을 통해 종교의 순기능 또한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이것은 비단 몰몬교만의 문제는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기독교든 천주교든 이슬람이든, 역사적으로 종교는 폭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전쟁과 폭력이외에도 신에 대한 믿음은 잘못된 증폭이 있다면 개인의 인격이라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종교는 개인에게 위안과 엄격한 도덕적 삶에 대한 기준이 되어 준다는 점에서 신의 존재 유무와 무관하게 좋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맹목이라는 것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인간의 추상적인 사고가 종교를 만들었고,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 인간은 문명을 만들어 낸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종교는 인간의 삶과 계속 함께 해 왔습니다. 그러나, 신의 말씀이라는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 할 때, 또는 개인적인 욕망을 신의 계시로 해석하게 될 때 종교는 평안과 사랑과 구원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쉽게 여성에 대한 억압, 비신자에 대한 배타와 차별 나아가서는 전쟁 등을 합리화 시켜주는 강력하고 파괴적인 도구가 됩니다. 이 드라마는 이러한 점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수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철학적인 만큼 전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적극 추천은 살짝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제가 읽은 책 중에 저의 노트에 뭔가를 적게 한 책이 있어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짐 알칼릴 리가 쓴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물리학의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 교양서 수준으로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일반인에게 혼란을 주는 비유를 배제하여 간결하고 흥미롭게 물리학, 그리고 우주에 대하여 매우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양자역학이 존재론적인 질문을 인간에게 던져준다는 점에서 양자역학을 상당히 좋아해서 관련 교양서를 많이 읽어봤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아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만큼 양자역학은 인간의 기존 관념에 반하는 과학적 사실이어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열역학 제2법칙 등 물리학에서의 기본적인 원리를 통해서 시간이라는 것은 정말 무엇인지, 우주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하여 드로잉하듯 굵은 선으로 그려 쉽게 설명해 줍니다. 또한 과학과 철학이 어떻게 닿아있으며 과학자가 어떤 철학적 입장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하여 실재론과 실증주의를 가져와 작가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이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살아가고 알고자하는 우주는 무엇인지, 시간은 정말 비가역적인지, 시간은 정말 상대적으로 흐르는 것인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양자물리학자인 작가는 현대 물리학의 거의 모든 핵심적인 것들을 포함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그저 그럴 때 혹은 마음이 너무 시끄러울 때 저는 과학서를 읽습니다. 우주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투쟁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광활함과 그 암흑 같은 미지의 영역을 생각하면 우리 인간은 사실 너무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 넓은 우주에서 우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인가를 생각하며 감사하게 되기도 합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인가, 확립된 물리법칙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신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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