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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Nov 18. 2022

나의 편은 누구인가

나의 편은 누구인가.     


 피해자 변호사 제도가 생긴 이후 2013년부터 나는 일반이든 전담이든 피해자국선변호를 해왔었다. 쓸데없이 공감을 깊이 하는 성격에 어릴 때부터 슬픈 드라마만 봐도 수도꼭지처럼 울고 누가 울고 있으면 또 울고 엄마는 늘 말했었다. ‘엄마 죽으면 그렇게 서럽게 울어라’. 지나치게 말랑하고 부셔지기 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와서인지,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로스쿨을 가기로 했을 때 다들 축하와 걱정을 동시에 나누었었다. 머 그렇게 잘못된 걱정은 아니었지 싶다. 2013년 피해자국선변호사제도를 알게 되었고 나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를 위한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로스쿨 자소서에 썼던 말을 지킬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해 계속적으로 자해를 하여 폐쇄병동에 입원 중이었던 피해자를 병원에 찾아가서 만나기도 했고, 재판에 나올 수 없는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수많은 피의자, 피고인이라는 이름의 가해자들에게 당신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엄벌을 탄원했다. 해바라기센터에서 아직 어린 아이들에 대한 친족 성폭력에 대한 피해자 조사를 동석하게 되면 정돈되지 않은 아이들의 언어를 공소장에 적을 수 있도록 특정 하는 것을 도와야 하는데, 나는 공소장이 아니라 머릿속에 그 폭력의 현장이 자꾸 그려졌었다. 피고인 변호인의 반대신문 이 있을 때면 수사단계에서부터 거듭되는 기억의 환기로 인한 고통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보람이 있었던 날이 많은 만큼 고통과 슬픔의 공감이 내 안에 쌓여갔다. 어느 친족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증인신문이 있었던 날이었다. 그 날은 마치 내가 증인신문을 하고 내 친모가 새 아빠 때문에 나를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법정에서 회사로 돌아가는 길 내 뒤에서 나를 발견한 같은 회사 변호사님이 뒷모습만 보고도 무슨 일이 있는 지 물을 정도였다. 나는 슬픔을 공감하는 것에는 생래적인 능력이 있었지만, 내 안에 누적되어 가고 있던 그 덩어리진 슬픔들을 덜어내고 희석시키는 방법은 알지 못했었다. 그러다, 개인적으로 커다란 슬픔이 나를 찾아왔을 때 더 이상은 내가 피해자들을 도와줄 수 없겠구나. 내 마음엔 더 이상 공간이 없구나. 그런 마음으로 미련 없이 피해자 변호사를 그만두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슬펐으나 그들을 위해 계속 싸워주기에는 한없이 미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가 있은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났다. 당일에 일찍 자는 바람에 상황을 전혀 모르다가 그 다음날 남편이 보여준 영상들이 문제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붕괴나 화재 없이 150여명이 서서 압사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모자이크 된 영상을 보고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에 압도당하면서 또 그 황망함이 불면의 밤으로 나를 이끌었다. 친구들을 바다에 묻은 세대가 그 세대가 아니던가. 그 아이들의 절망과 공포와 슬픔, 부모님들의 애통함이 나의 마음에 또 새겨졌다. 일주일 넘게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나는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을 정말이지 잘 못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내가 맡았던 사건 중에 구치소 내에서 다른 재소자를 폭행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기록을 읽다가 피고인들의 잔악함과 초범이었던 피해자의 공포와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가 내게 또 다시 엄습했다. 의견서가 도저히 써지지 않았다. 나는 왜 또다시 피해자에 이토록 공감하게 되는 것인가. 무력감이 몰려왔다. 가장 무성의하게 의견서를 써서 냈다. 내가 만난 피고인은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이렇게 저렇게, 슬픔들이 쌓여간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모든 슬픔이 가벼워 보여서 피해자를 변호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너는 아버지가 살아계시잖아?’라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나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슬픔이 내 마음의 강을 범람한 이후에는 함께 슬퍼해 줄 자신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피고인 국선변호인을 하면서 조금 더 변호사로서 프로의식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지금의 나는 아직도 피고인의 변호인으로 일하면서도 피해자의 슬픔이 더 다가온다.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알면서도, 피고인이 엄벌에 처해졌으면 하는 사건이 많다. 헌법에 정해진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내가 세운 얄궂은 ‘정의’에 기운다.      

 이렇게 자책을 하다가 생각해본다. ‘나는 누구편이지?’라고 묻다가 다시 돌아서 묻는다. ‘누가 나의 편이지?’ 나는 나를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에 능숙한가? 나는 나의 불편함에 대하여 따져 묻는 것이 익숙한가? 늘 아니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내가 ‘피해자’를 위해서 혹은 ‘피고인’을 위해서 아니면 그들을 대신해서 누군가와 싸워 왔다면 나는 이제 ‘나’를 위해서도 싸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 슬픔을 딛고 내 무력함을 숨기지 않고 나만은 나의 편이 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지난 시간동안 내가 나의 편이 되는 것에 인색했기 때문에, 내 마음에 가득 찼던 타인의 슬픔을 덜어내지 못했었고 깊이 잠들지 못했으며 글이 써지지 않았고, 정체된 고속도로 한 가운데 있듯, 나의 앞길을 알 길이 없었던 것 같다. 


 내 정원이 엉망인 정원사가 되지 않도록, 내 마음의 편에 내가 똑바로 서서 모든 슬픔과 마주하고 또 나를 위해 억지 의견서도 쓸 수 있고, 나를 위해 말도 안 되는 증인신문도 할 수 있는 그래서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편’이 될 수 있기를. 오늘도 자의식과잉 범벅인 글을 썼지만 봐주기로 하자.     

이제 나는 ‘내’ 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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