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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Penguin Apr 01. 2020

슈퍼 뇌는 가능할까? -(상)

Savant syndrome - 뇌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일까?

레인맨 (1988)

레스토랑의 담당 서버의 명찰을 본 레이가 혼자 중얼거린다. "샐리 딥스, 딥스, 샐리 461-0192"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어요?" / “어떻게 알았어?”

당황한 웨이트리스와 동생 찰리가 동시에 물어본다.

"전화번호부 읽으라며, 딥스, 샐리 461-0192.”

“형이 기억을 잘해요, 가끔 작은 것들까지요”  

“아주 똑똑하네요,  어쨌든, 저는 그럼 주문받으러 좀 있다 다시 올게요.”

서버는 몸을 빙글 돌아 주방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했어?” “몰라”

“책 전체를 외운 거야??” “아니”

 “시작부터 읽은 거야?” 어” “ 어디까지 갔는데?”

“g, g, 가트세이큰, 윌리엄 마샬 가트세이큰.”

“g까지 외웠단말이지?”

“그래 g”

“a, b, c, d, e f, 에서 g까지?"

"g,  g 반 까지만.”

“훌륭하네.” “어”

(영화 '레인맨(1988)'에서)


오래된 영화 '레인맨'을 본 사람들은 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전화번호부를 다 외웠다고 놀라기엔 잠시 이르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레이는 바닥에 떨어진 이쑤시개의 수를 재빨리 헤아리는데 놀랍게도 이 수는 정확한 숫자이다. 이 두 장면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레이(더스틴 호프만 분)에게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영화의 감동 포인트는 형을 이용해 아버지의 유산을 챙기려던 이기적인 찰리 배빗 (탐 크루즈분)이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모습과 형제간의 우애를 보여주는 데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기억에 남는 저 장면은 다른 궁금증을 갖게 한다.

‘저거 진짜 있을 수 있는 얘기야?'


진짜 있을 수 있는 얘기일까? 관심이 생긴 사람은 조금만 구글링 해보면 이 이야기가 Kim Peek(1951-2009)이라는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던 사람에게서 비롯된 일화라는 것과, 그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을 서번트(서번트 증후군 Savant syndrome을 지닌)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킴 픽은 백과사전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책을 읽고 기억할 수 있었으며 전화번호부, 지도책 등 닥치는 대로 읽고 그 정보를 기억했다. 그러나, 전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의 기록과 전 세계 대부분의 두 도시 간의 경로를 통째로 외우고 미국 전역의 우편 번호를 외울 수 있는 그의 어마어마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IQ가 89였다는 것과, 셔츠 단추조차 자기가 직접 잠그기 어려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언뜻 매치가 되지 않는 이 능력의 불균형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야기를 좀 더 진행시키기에 앞서, 잠시 위에서 언급했던 서번트 증후군이 뭔지  좀 더 알아보자.

서번트 증후군은 스스로 일반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정신적 장애를 갖고 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분야에서 보통 사람들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정신학적 장애를 일컫는 말이다. (70년대 이전에는 서번트를 ‘백치 idiot 천재’라는, 지금 들으면 다소 멸시적인 명칭으로 설명했다.) 생경할 수도 있으나, 한국에서는 <굿닥터>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의사로 설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되었는지는 드라마를 보지 않아   없지만 실제의 서번트 증후군의 사람들은 특정한 분야에서 비범한 능력이 있으며 (음악, 미술, 계산, 운동능력 ) 이들 대부분 굉장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대략 50% 서번트 증후군의 사람들에게 자폐 증상이 같이 수반되지만, 자폐 증상이 있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을 거라고 섣부른 오해와 기대를 해서도 안된다. (자페 증상을 갖고 있는 사람의 1/10 정도만이 다양한 범주의 서번트 증후군으로 분류될  있으며, 서번트 증후군은  외에도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다른 신경정신학적 장애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


이 포스트의 상단에 삽입된 이미지는 또 다른 서번트 증후군인  스티븐 윌트셔 (Stephen Wiltsher)의 공식 그림 판매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그림의 썸네일이다. 그는 한 번 본 걸 기억해서 사진처럼 머릿속에 저장한 후 그걸 그리는 능력이 있으며, 그가 헬리콥터를 타고 뉴욕 상공을 돈 후 그걸 기억해 그림으로 그렸던 과정은 유명하다**

스티븐 윌트셔, image from  https://throomers.com

이 외에도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서번트 증후군인 사람들의 한쪽으로 돌출된 능력을 보는 것은 경이로운 측면이 있다. 올리버 색스의 저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든가 ‘뮤지코필리아’ 등에도 이런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나온다. 보통 사람은 헤아리기 어려운 단위수의 소수(prime numbers)를 헤아리고, 천년 전과 천년 후의 특정 날짜의 요일을 바로 알아내며 모든 오페라 악보를 기억하는 사람들. 이 어마어마한 암기능력과 계산 능력 등은 어떻게 발현되는 것일까? 특히 후천적으로 서번트 증후군을 갖게 된 사람들의 경우처럼, 갑자기 음악적 재능이 발현되거나 암기능력이 뛰어나게 되어버린 사람들을 보면 문득 우리 뇌도 궁금해진다. 사실은 우리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흔한 속설인 우리가 평생 사용하는 뇌는 단지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와 겹쳐져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필자가 뇌를 연구한다는 얘기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서 “영화 ‘루시’ 보셨나요? 실제로 우리는 뇌의 10%밖에 쓰지 않는다면서요? ‘루시’처럼 뇌의 잠재력을 전부 사용하게 되면 슈퍼 휴먼이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가끔 듣게 된다. 앞으로의 포스트에서 우리의 뇌가 한 기능을 수행할 때 얼마나 많은 영역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있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10%의 뇌만 쓴다는 말은 흔한 오해에 가깝다.  

그럼 보통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서번트 증후군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야말로 어떤 부분의 뇌를 ‘100%’ 쓰기 때문일까? 서번트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의 한쪽으로 돌출된 재능을 결코 단순한 구경거리나 가십거리로 소비해서는 안 되는 일임은 분명 하나 그들의 뇌에 어떤 특이점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향후 뇌의 정보처리를 이해하고 치료나 원인 규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다음화에 계속)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the-superhuman-mind/201212/kim-peek-the-real-rain-man

** Treffert DA. The savant syndrome: an extraordinary condition. A synopsis: past, present, future. Philos Trans R Soc Lond B Biol Sci. 2009;364(1522):1351–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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