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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 Dec 24. 2020

분화

비산5

의뭉스러운 룸메이트의 행동을 보고 있으니 날이 갈수록 그선발과정이 더욱 궁금해졌다. 일상적인 훈련을 건너뛰는 것은 물론이고 정해진 숙소 통금시간도 일상적으로 위반하는 선수가 선수촌에 함께 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고, 부 선수 중에 일탈 행위 즐기는 부류가 있기는 했지만 강도 높은 노동으로 밤낮이 바 동료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종종 성적부진이나 빡빡한 일정 관리를 견디지 못한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풀려고 즐기는 일탈 박이나 음주를 즐기는 경우가 있었지만, 룸메이트의 경우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선수가 돈벌이를 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프로선수가 되면 과외로 운동을 지도하는 일거리가 들어와 수입이 크게 늘겠지만 이제 겨우 선수촌에 입단한 선수에게 그런 과외비를 지출하려는 학부모는 없었다. 선수촌 훈련 기간을 제외하면 H의 동료선수 중에도 소일거리로 택배나 공사장 일을 전전하다가 프로선수가 되면서 운동에 집중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다.


부업을 해야 했던 선수들은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선수촌에 입소하면서 소일거리를 그만두고 훈련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보통이었지만, H가 생각할 때는 룸메이트가 뭐랄까 그 소일거리를 위해 입단한 듯이 운동보다는 부업이 우선이었다. 식적으로 짐작해봤을 때 선발에 깊숙이 관여할 수도 있는 연맹의 누군가가 이 베일에 싸인 조직원을 선수단의 일원으로 꼽은 게 분명했다. 처음 잠행을 나가는 룸메이트를 보게 된 날 룸메이트의 종목이 사격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했었기에 H는 사격연맹의 누군가가 룸메이트를 선수로 위장시켜 구린 일을 벌이고 있작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괜히 구린 일에 얽히지 않는 게 좋겠지.'


H와 같은 신출내기 선수들은 더이 체육계 지도층에 잘못 보여 선수생활뿐만 아니라 은퇴 후 경력마저 순식간에 단절되는 허다했기에 개인적 호기심은 이쯤에서 접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 인색한 편인 H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해진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룸메이트 신발에 몰래 넣어둔 추적기를 그대로 남겨놓는 것이 왠지 모르게 꺼림직했기 때문이었다. H는 방문을 닫고 나서는 순간에도 신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의 엘리베이터는 분주한 병원 관계자들과 방문객들의 잦은 탑승으로 인해 거의 층마다 서는 터라 K 같이 기다림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친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저층부에 있는 소아과 같은 병동을 방문할 때면 K는 보통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초입 게시판에는 약회사 의약품정보 담당자들의 방문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안내문이 조그맣게 붙어 있었다. 게시판 옆을 지나치면서 K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는 표정이었지만 병원 엘리베이터만큼이나 병원 영업 3년 차에도 적응이 쉽지 않은 것 같았다.


환영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발길도 하지 말라는 건가.. K 스스로의 경계심과는 달리 계단을 오르며 스쳐 지나가는 간호사와 레지던트들의 눈빛에는 무관심뿐이었다. 계단을 이용하는 방문객들이 워낙 많기도 했고 하루 수십 명의 환자와 환자 가족을 살피다 보니 른 사람에게 신경 쓰는 것조차 어쩌면 그들에게는 사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층 소아과 병동에 이르자 K는 빠른 걸음으로 교수실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전 약사 선생과 통화하면서 교수 연구실 위치와 개인 연구시간을 확인지만 막상 병원에 도착하니 구두로 들었던 설명은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고 이제는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는 이밍이라고 생각됐다. K는 자신을 피해 종종걸음으로 지나쳐가는 간호사를 붙잡고 의선위 위원인 부교수실이 어디인지 짧게 물었다. 연차가 조금 되어 보이는 간호사는 친절하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K를 순간 살피는 듯하다가 짧게 대답했다.

 

"개인 연구시간에 교수님은 보통 소아과 레지던트들과 함께 임상실험 병동에 계세요. 저희는 교수님께 급한 연락이 안 될 때면 임상실험 병동 막내 레지던트에 연락하는데 연락처 알려드릴까요?"


부교수 연구실 위치만 물었을 뿐인데 몰랐던  알려주며 다른 연락처로 레지던트 연결해주려는 태도로 미루어 보아 간호사가 자신을 방어적으로 고 있는 것 같고 K는 생각했다. 전직장에서도 일면식 없는 고객사에 찾아가 영업을 할 때면 서무직원들에 안내조차 받지 못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K는 여전히 당황하지 않고 간호사에게 두었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지한 분위기로 시 한번 부교수실의 위치를 물었다.


"지금 당장 교수님을 봬야 하는 건 아닌데요, 교수님께 드려야 하는 물건이 있어서 연구실에 좀 놓고 가려고요. 교수님 자리에 놓고 갈 수 있게 위치만 알려주세요. 부탁입니다."


K 다 못해 속내가 러내는 진정성 눈 앞의 간호사를 대하려고 했지만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없었다. 간호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리고는 K가 뭘 믿고 이리 거침이 없을까 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 잠시 스쳤지만 이윽고 눈 앞의 K를 의식한 듯 바로 몇 분 전과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그러면?"


진정성이 한 것인지 K는 순간적으로 되물었다.

지만 그게 아니란 걸 깨닫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드려야 한다는 물건은 제가 전달해 드리는 건 어떨까요? 지금은 부재중이시니까요."


간호사의 단호한 표정과 말투는 4층에서 더 이상 용무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했고, K 입장에서는 그나마 힘들게 가져온 선물상자를 전하는 것도 아 보였다. K조심스레 간호사에게 상자를 건네며 표정을 살펴보니 그녀는 여전히 차분했고 누군가를 속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건넨 말들이 맞다면 임상실험 병동같이 공개된 장소에서 전달하는 것보다는 그녀를 통해 부교수실에 조용히 놓고 가는 편이 나았다.


"부교수실 책상 자리에 꼭 놔두시 자세한 이야기는 상자 안의 제 명함에 적힌 연락처를 통해 하고 싶다고 전달 부탁드립니다"

"네, 그럼요. 그렇게 전달해 드리죠."


간곡한 부탁에 돌아온 한결 그러진 목소리에는 문제가 생길만한 상황을 무사히  다행인 것 같다는 그녀의 마음배어있는 것 같기도 했고, 간호사라는 일이 아니면 상냥했을 그녀의 평소 말투가 자연스레 나온 것 같기도 했다. 이것이 그녀가 그리 이율배반적인 성격은 아닌 것 같아 조금 더 안심이 됐다. 그녀를 만난 것은 이제 만나려고 하는 병원 관계자들의 냉랭한 태도에 비해 인간미가 느껴질 터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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