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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vo Nov 10. 2020

분화

비산4

"트라우마는 심리적으로 선수들의 운동능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심해지면 자기 파괴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학계 사람 별것도 아닌 발견에 과한 의미부여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어온 H는 심리치유 코칭스텝이 초반에 소개하는 내용을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았다. H가 보기에는 기파괴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은 경우 같았다. 보다 H의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건 오랜 시간 이론수업을 듣고 숙소로 복귀어도 돌아오지 않은 룸메이트다.


H가 트라우마에 대한 이론을 지겹도록 듣 있을 때 분명 룸메이트가 움직이고 있었기에 H는 룸메이트가 곧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상 GPS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H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도 룸메이트의 흔적 찾을 수 없자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확인해 룸메이트의 위치를 살폈다. 오전에 있었던 위치에서 이동했지만 룸메이트는 아직 선수촌이 아닌 외부에서 훈련이 아닌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뭘 하러 돌아다니는 거지? 그것도 매일 훈련도 열외로?'


H는 선수가 훈련을 받지 않고 선수촌에 머무를 수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는 듯이 자 흥분해서는 중얼거렸다. H가 생각한 것처럼 선수촌 시스템은 훈련을 받지 않는 선수들을 수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숙사에 H의 룸메이트 같은 인원이 자리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은 경우였다. 물론 코칭 스텝 중에는 선수들과 공동생활을 위해 입소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스텝을 H와 같은 현역 선수와 같은 숙소에 배치하는 경우는 없었다. 스텝들은 기숙사 외부에 묵거나 선수촌 숙소를 제공하더라도 스텝끼리 배정하기 때문이었다.


GPS에 나타난 룸메이트의 위치는 이제 선수촌 인근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H가 더 이상 알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도상에 표시된 룸메이트는 인 국립공원 초입의 어디쯤이었고 이제는 어느 한 곳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시나브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제 H에게는 룸메이트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연 언제쯤 돌아올까 가 관심사가 되었다.


우선은 룸메이트가 돌아왔을 때 룸메이트 몰래 신발 에어쿠션 사이에 던져 넣은 소형 위치추적기를 내야만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그 일을 빨리 처리해야만 그나마 내일을 위한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갔다는 강박관념에 의 매분마다 룸메이트의 위치를 피고 또 살폈다. 그렇지만 H의 바람과는 반대로 룸메이트는 점점 선수촌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인적이 적은 지역이라 차편도 조만간 끊길 텐데 늦까지 무슨 일이 벌이고 있는지 H도 어지간히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뜬눈으로 지새우기는 내일 훈련 일정이 걱정이 더해가서 추적기는 그냥 잊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추적기는 신발 쿠션을 들춰보지 않으면 딱히 걸릴 일도 없었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룸메이트 성격에 추적기가 발견되어도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 같았다. 제대로 말 한번 섞어보지 않은 H에게 서로 불편한 질문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룸메이트가 숙소로 돌아온 건 자정 넘어 2~3시경이었 거 같았다. 택시도 드문 시간이라 먼 거리를 걸어서 선수촌에 복귀하느라 꽤나 피곤했는지 방에 들어도 인기척을 줄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룸메이트가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에 얕은 잠에 빠져있던 H가 깨자 룸메이트는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깼네. 미안. 별일 없으니 다시 자라."

"무슨 일이냐 이렇게 늦게"

"그렇게 됐다. 어서 자."


그 늦은 시각, 처음으로 말을 건 룸메이트와 긴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기에 H는 자리에 다시 누웠다. 룸메이트 대에 앉아 가방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로 잠이 들어버린 것 같았다. H는 지금껏 만나봤던 동료 선수들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의 룸메이트 같은 캐릭터는 이전에도 없었고 나중에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H가 깨어보니 룸메이트는 침대에 엉덩이를 대자마자 잠에 빠져 아침까지 앉은 채 자고 있었다. 늦은 새벽, 잠이 들었으니 아마 훈련장에 시간 맞춰 출석하는 것은 고사하고 H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도 자고 있을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H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얼마 전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왔을 때 룸메이트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 훈련을 금세 마치고 일찍 쉬고 있었던 게 아니라 새벽까지 바깥을 누비느라 쌓인 피로를 저녁까지 자면서 풀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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