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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 Sep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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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 3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봄날 새벽, 아직 아무도 밖을 나서지는 안 했지만 팽팽한 긴장감에 일찍부터 눈이 떠진 선수들 몇몇 엔트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늘 그렇듯 긴장감은 너무나 치열하기에 고요한 것인지, 고요하기 때문에 치열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주전 자리를 따내서 선수촌을 자랑스럽게 내설 것인지, 상비군으로 남아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를 다시금 노리게 될지가 갈리게 될 것이기에 모든 것을 건 선수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예비선수로 남는다 하더라도 최종 엔트리에만 남는다면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제공될 것이기에 그저 상비군만으로 잔류하는 것만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른 새벽을 여는 굳은 다짐으로 부산스러운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H는 룸메이트의 비밀스러운 외출 준비를 몰래 살피느라 이 다른 긴장감 운데 잠이 달아난 상태였다. 룸메이트는 그리 부산스럽지 않게 짐을 챙기고는 다른 날 같지 않게 잠시 동안이나마 생각에 잠긴 듯했다. H는 정적을 견뎌내느라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이 들었다. 룸메이트가 다시 문을 나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H는 다리에 쥐가 날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H는 멀어져 가는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침대에서 일어나 미처 생기지 않은 경련을 미리 풀어고서는 살짝 열려있는 창틈을 통해 룸메이트가 사라져 가는 방향을 켜보았다.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H는 룸메이트가 다시 두 사람이 쓰는 숙소 빠뜨린 것을 찾으러 돌아기라도 할 것처럼 방문이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H는 스마트폰 앱을 켜고 지도에 표시된 룸메이트의 위치를 확인했다.


'어디... 정확하게 표시되고 있는 건가?'


운동하느라 비록 동년배보다 IT기술을 다뤄본 경험은 적었지만 운동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디지털 기기에 대한 관심은 어느 누구보다 뒤지지 않았기에 룸메이트의 위를 추적하는 일쯤은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성격 탓인지 H는 위치추적 앱에서 나타난 룸메이트의 위치가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초미리면... 외지 사람들을 위한 숙소가 많다는 그곳인가? 차도 없이 움직이는데 꽤나 멀리도 갔다.'


지도 상에 깜빡 거리는 룸메이트의 위치는 이제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H는 룸메이트가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생각하고는 최종 위치를 다시 찾기 위한 이정표를 남겼다. 곳은 룸메이트가 새벽마다 나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굵직한 숙제를 해낸 듯한 마음으로 그날 훈련에 필요한 짐을 서둘러 챙기기 시작했다. 룸메이트 녀석 때문에 게 된 벽을 건설적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아니, 꼭 룸메이트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하던 바였을지도.



훈련장을 향해 빠른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H는 룸메이트가 그 시간 뭘 하러 갔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몇 백 미터 남짓 이동할 동안 룸메이트의 위치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덕분에 언제 도착했는지 몰랐을 정도로 지루할 틈이 없이 훈련장에 도착했다. 연습을 이제 막 시작한 유일한 동료 선수도 평소와는 달리 의외의 시간대에 나타난 H를 보고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신의 연습에 몰두했다. H는 이른 시간, 아무도 없을 시간대에 자신의 징크스를 극복하려고 연습장에 나왔지만 자신 말고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웠는지 동기부여 약해졌고, 특히나 룸메이트가 혹시라도 또 다른 위치로 옮기지는 않았는지 살느라 기록이 잘 나올 리 없었다.


H는 차라리 이럴 바에야 룸메이트의 의심스러운 여정을 좇아 이른 아침 길을 나섰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 했다. 게다가 오늘 종일 일정으로 코칭 스텝이 제안한 선수별 맞춤형 훈련인 멘탈 트레이닝 세션이 H에게 예정되어 있었고, 알아본 바로는 멘탈 트레이닝으로 스포츠 최면을 시킬 것이라는 언지가 있었다.


'스포츠 최면이라니... 무의식 중에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으로 가상 시합에 나간다면 없던 트라우마가 다시 생기고 있던 자신감마저 사라질 것 같아!'


H는 멘탈 트레이닝 교수를 소개받는 지난 자리에서 선수들에 대한 융통성이 있을 것 같은 첫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비교적 부담감이 적은 첫 번째 트레이닝 세션을 제친다고 해도, 정규 훈련 일정에 익숙하다 보니 수별 맞춤형 훈련에 참석해야 하는 사실을 깜빡했다는 변명도 통할 것 같았다. 아니면, 생소하고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멘탈 트레이닝이 부담스럽다거나 솔직히 효과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등 고민을 털어놓으면, 선수들을 설득하려는 태도로 한 번의 이탈 쯤은 쉽게 눈 감아줄 듯했다.


그렇지만 H가 다시 생각해보세션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불참하는 것이 교수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도 같았다. 마침 H의 스마트폰이 룸메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알림을 전해왔, 그가 선수촌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이 아니어도 룸메이트를 을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선수촌으로 돌아오는 건가...

오늘이 아니더라도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날이 있겠지.'


H는 실망감, 혹은 아쉬운 감정을 뒤로하고 멘탈 트레이닝 교수와 일정을 잡기 위 메시지를 남기려고 게시판의 연락처를 살보았다. H가 직접 보았던 교수의 첫인상은 학계에서 자주 봤던 교수들과는 조금 괴리가 있는 모습이었지만, 게시판 연락처와 나란히 붙어있는 교수의 사진은 꽤나 구적이고 분석적인 면이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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