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분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현 Oct 19. 2022

분화

비산8

H는 의심스러운 룸메이트가 방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안을 살폈다. 어쩐 일인지 그날은 입소 2주 만에 처음으로 룸메이트는 없었다. 왠지 생소하게 느껴지는 방안에 들어서면서 바닥에 아무렇게 널부러져 있는 그 신발을 보았을 때 갑자기 용 솟구쳐 나오듯 뛰기 시작한 심장소리로 H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어디를 나간 거지? 신발 속 장치를 이틈에 빼놓을까?’


‘아니야… 괜히 건드릴 때 돌아오면 완전히 들키는 거잖아? 관두자’


선수단 전체 인원의 개인 일정표라도 있을 때 룸메이트 일정이 있는 틈을 노리는 게 났겠다는 생각에 눈앞의 신발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안 한 것처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만 이내 신발로 향하는 시선을 H는 어쩔 수 없었다.


‘제길. 그래 오늘이다. 오늘이야. 괜히 마음 졸이며 질질 끌 필요 없잖아?’


결심을 굳히고 과감해진 H는 바닥에서 주워 들었다. 그리고는 신발 바닥에 붙어 있을 추적기를 찾기 위해 깔창을 들춰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H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세탁실에서 신발을 세탁하면서 위치추적장치가 떨어져 나간 게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질문도 머리를 스쳐갔다. 그렇지만 이내 그럴 리 없다는 걸 깨달았다. 책상 위에는 룸메이트가 신발에서 찾아낸 위치추적장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들켰다...? 뭐라고 둘러대어야지?’


이렇게 되물었지만 이미 하얗게 되어버린 H의 머릿속에는 별다른 묘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숙소를 뜨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입소한 선수촌을 이대로 나간다는 건 H의 인생에 있어 인생일대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 같아 그 마저도 쉽지 않게 생각되었다.


H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동안 룸메이트는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와 우두커니 서있었다. 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할 말을 생각해 놓은 것처럼 H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굳이 다른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아도 지금 네 표정을 보아하니 네 짓인 듯하네…? 왜지? 뭘 알고 싶었던 거야?”


H는 수세에 몰린 복서처럼 숨만 헐떡일 뿐 아무런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룸메이트는 마치 정리할 시간을 허락하는 듯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입 안을 맴돌던 말은 입 안을 돌다가 이내 사라졌다.


“좋아. 나한테 말을 못 하겠다면 감독님한테 이야기해야 할 거야.”


메이트는 바로 폰을 집어 들고 H를 겁박했다. 겁에 질려 허세 한번 부리지 못하고 있던 H는 본능적으로 메이트가 집어 올리던 폰을 내려치고서 이내 다시 룸메이트의 눈치를 살폈다.


룸메이트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H의 멱살을 잡았다.


“이거 말로 안 되겠네. 너 이 자식, 선수촌에서 쫓겨나고 싶어?”


H는 룸메이트의 폰을 자기도 모르게 쳐낸 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는 게 심하다 싶었지만 이런 생각에 빠져들기 전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