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이슈가 터지고 그 안에 있던 남성들이 26만 명이라는 통계가 나왔을 때 썼던 글을 지금에서야 올린다.
1. 통계
평소에 SNS에 글 한번 쓰지 않던 예전 동아리 회장인 그 사람이 n번방 사건이 있고 나서 게시글을 올렸다. 가해자는 당연히 잘못했지만 26만 명이라는 숫자는 잘못되었다, 가 그 사람의 요지였다. 그렇다면 그 숫자에 대해서 따져보겠다.
정말 26만 명이라는 숫자는 잘못되었는가?
2. 왜 그래 다들?
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sns 피드나 블로그 등 지인들 중 하나 같이 그 숫자에 연연했다. 왜 그렇게 숫자에 딴지를 걸고 싶은 걸까. 태도조차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위계적이고 가르치려고 했다.
"n번방? 당연히 잘못되었지. 하지만 26만 명은 틀린 통계야. 다들 지금 흥분 상태라서 화난 건 알지만 틀린 건 틀리다고 해야 옳지."
숫자에 연연하는 사람들은 마치 너희가 보지 못한 걸 내 뛰어난 통찰력으로 알아차렸다고 뽐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3. 맥락
시급한 일에 이상한 딴지를 걸어오는 것 자체가 문제적이지만, 태도의 문제는 잠시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논리적으로도 허점이 많다. 그럼 이제 그렇게들 좋아하는 논리로 상대해보자.
26만은 다른 n번방 모든 방 접속자의 취합 숫자라고 한다. 누구는 26만+a라고 한다.
여기서 +a는 무엇일까? 이 +a는 바로 대한민국의 성착취 영상에 대한 역사로 비롯된다. 빨간 마후라 사건을 아는가? 노홍철이 불법 복제하여 그 비디오를 다른 친구들에게 팔아서 금전적인 이득을 얻었다는 그 사건이다.
빨간 마후라사건은 가출 청소년인 여중생 A양이 다른 고등학생 남성 두 명에게 집단 성폭행 피해를 받은 사건이다. 그 고등학생 남성 두 명은 성폭행 행위를 녹화하고 영상으로 만들어서 팔았다. 그리고 온 대한민국이 그 비디오를 보려고 난리였다. 그 영상에서 피해자는 빨간 스카프를 하고 있어서 빨간 마후라 사건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집단 성폭행 영상을 온 국민이 시청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97년도에는. 그럼 지금은? 정준영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카톡방에서 다른 영상을, 사진을, 심지어 본인이 불법 촬영한 영상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2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빨간 마후라 사건의 피해자는 피해자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경찰이 나서기는커녕 당시의 감각으로는 불법 촬영이라는 가해를 파악하지 못했다. 영상이 있어? 그럼 그냥 피해자는 동의했다고 치는 것이다. 수사는 착수되지 않는다. 뒤에서 그 비디오를 구하려고 난리지. 당시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까 n번방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26만 명이라고 했지만,
유료방도 있지만 무료방도 있다. 돈만 주면 또는 무료로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했다. 그 영상은 다른 플랫폼으로 당연히 공유가 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웹하드 사이트들, 그리고 카톡, sns로 지들끼리 공유했겠지. 다운을 받아서 친구들한테 보여줬을 수도 있고.
이것은 처음이 아니다. 마지막도 아니다. 웹하드 소라넷 위디스크 양진호 버닝썬 정준영 다크웹 n번방까지, 이 수많은 범죄들을 보고 공유하고 착취한 남성들이 과연 26만일까. 26만은 단지 수사적 표현이다. 과장된 게 아니다. 오히려 적게 잡아 그 숫자다.
4. 지인
그래서 그 사람 SNS를 언팔했다. 이런 사건이 있고도 그 처참함과 잔혹함보다는 숫자를 지적하고 싶은 그 태도가 너무나 문제라고 생각한다. 숫자에 연연하기 전에 이전부터 이어진 대한민국의 불법 촬영물의 역사에 대해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