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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월 Oct 13. 2020

몇 살인지부터 물어보는 한국 사람

해외 배낭여행 중 한국 사람을 만났다. 그 남성은 경상도 말투로 무뚝뚝하고 예의 없게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내 나이를 말하니 그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자신보다 당연히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이가 더 많아서 그런 듯했다.


한국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이다. 누구를 만나든 나이부터 물어본다. 대학에 가서도, 동아리를 할 때도, 해외봉사를 갈 때도, 대외활동을 할 때도, 직장을 가질 때도, 소개팅을 할 때도, 동호회를 할 때도 말이다. 우리 한국 사람은 언제나 나이를 먼저 물어본다.


그리고 상대방의 나이를 알고 나면, 한국 사람들은 편해진다.




정상성 문화


한국은 정상성이 중요한 나라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경로가 있고 그것을 벗어나면 이상하게 본다. 반대로 생각하면 대체로 정상성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몇 살이세요?"

"24살입니다."


그럼 이제 추리가 들어간다. 남성이라면 대학을 가고 군대 제대 후 복학했을 것이고, 여성이라면 졸업반으로 취준생이거나 빠르면 이미 취직해서 직업 1년 차일 것이다,라고 추리한다. 만약 이러한 추리가 대부분 맞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면, 본인이 너무나 정상성에 가까운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정상성에 가깝게 살다 보면 인지하지도 못한 채 정상 경로에서 이탈한 사람을 타자화하고 이상하게 본다. 대학을 안 갔거나, 해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거나, 일을 일찍 시작했거나, 잘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한다거나, 등등. 우리는 정상성에 너무나 빠져있다.




나이는 위계


나이는 위계다. 외국 친구들은 아무도 나이를 묻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 중국도 나이에 관대하다. 5살 정도까지는 다 친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친구를 사귀면 아무리 친해도 나이를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니 나이로 위계 권력을 사용하기가 한국보다 덜하다.


한국은 나이를 위계로 사용한다. 단지 형, 오빠라는 이유로 언니, 누나라는 이유로 동생 취급을 하거나 본인의 나이 권력을 사용할 때가 많다. 남성의 측면에서 써보자면 개인적으로 형과 오빠는 싫으면 한없이 싫어질 수 있는 위치인 것 같다. "내가 형이네."라고 하는 순간 바뀌는 사람이 있다. 어떠한 역할극을 원하는데 거기서 상대방이 동생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순간 버럭 화를 낸다. 웃긴 건 동생 역할을 제대로 할 때는 그 연기에 대한 대가로 상을 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방송가에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강호동-이수근, 유재석-하하, 등등 강라인 유라인 또 연예인들이 예능에서 나갈 때 형 동생 하는 경우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오빠는 심지어 더 심하다. 여성이라서 차별하고 나이가 더 적어서 차별하는 이중 차별에 시달린다. 예능 프로 <아는 형님>만 봐도 나이 어린 여성 게스트가 나올 때 무조건 애교를 요구한다. 그리고 애교를 하고 말이다. 한 여성 게스트가 라디오 스타에서 애교를 요청받고 거절한 적이 있다. 이때 시청자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이 이 여성 게스트에게 악플을 던졌다. 왜? 오빠의 위계와 권력을 무시했으니까. 나이 연극을 수행하지 않았으니까. 반대로 나이 적은 여성이 나이 많은 남성에게 애교를 요청하지 않는다. 할 수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다.




나의 경우


친해지면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말을 놓으라고 한다. 말을 놓으면서 호칭까지 놓으라고 한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상대방은 나를 형이나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내 이름을 부른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없이 편하고 관계가 자유로워진다. 위계가 없는 관계가 진정한 친구 관계이다.



잃어버린 친구들


해외에서 유학한 친구의 말을 듣고 한국식 나이주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해외에서 생긴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의 나이가 모두 제각각이라고 했다. 반면 내 친한 친구들은 모두 나와 같은 나이였다. 왜 친한 사람 중에 동생이나 형, 누나는 없을까. 혹시 내가 나이주의에 과하게 몰입해서 동생에게는 위계적으로 대하고 형 누나에게는 동생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일까. 결국 모두가 불편해서 친해지기 어려웠던 건 아닐까. 만약 연령주의가 아니라면 나에게 더 나은 나이가 제각각인 좋은 친구들이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연령주의를 해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식 나이를 Korean Age라고 부른다. 전 세계가 만 나이를 사용하고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이런 괴상한 나이를 쓰고 있다. 공식 문서에는 이미 만 나이를 적용하지만 문화적으로는 한국식 나이가 우세하다. 만 나이로 모두 통일해서 나이가 다들 복잡하게 변했으면 좋겠다. 그 변화를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나이 문화가 조금은 덜 위계적이게 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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