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6년도부터 나의 일상은 점점 달라졌다. 언어 습관을 고치고, 평소 하던 제스처와 행동을 고쳤다. 한 번에 고쳐지지 않아서 천천히 오랫동안 반복해서 고치는 것을 연습했다. 거의 2년 동안을 여성 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에 조심했다. 18년도쯤 되자 꽤 유해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섹스하기 전 준비사항
그리고 유난히 걱정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섹스'였다. 섹스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수많은 글과 영상이 있었다. 그런데 섹스에 대해서 (지정 성별) 남성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글은 없었다. 있다고 해도 단순히 추상적으로 '여성을 배려해라', '폭력적인 섹스를 그만둬라' 밖에는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섹스 전에 준비해야 할 기본은 이것이다. 동의&합의, 콘돔, 젤. 그리고 여기에 추가된다면 성향에 따라서 기구를 준비하든 다른 것을 준비하든 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더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고, 그때 마침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인터뷰를 보았다.
"우리는 섹스를 하기 전에 성병 검사를 한다."
그렇다. 나는 섹스 전에 성병 검사를 했다.
내 주변은?
한국에서 누가 성병 검사를 할까?
자신이 성병에 걸렸을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만이 할 것이다.
그러니 주변 한국 사람 중에 성병 검사를 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성병이 있다고 짐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성병 검사한 것을 숨긴다. 반대로 섹스 전 상대방을 위해 성병 검사하는 사람은 한국에서 없다.
상대방을 위해 검사를 했다고 해도, 성병 검사한 사람 = 성병 보균자, 가 되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검사한 사실을 털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성병 검사를 하는 사람은 없거나, 입을 다문다.
섹스하기 전에 성병 검사를 여성이 남성에게 요구한다면? 날 성병 보균자로 보냐고 화를 내며 되물을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에서 성병 검사는 흔한 것이 아니므로.
성병 검사: 나의 경험
내가 페미니즘을 접하고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나는 성병 검사를 했다. 상대방이 요구한 적도 있고, 내가 먼저 성병 검사를 하고자 한 적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빨간 마후라와 수많은 섹스(불법 촬영) 비디오부터 안희정, 박원순, 정준영, 승리, 버닝썬, n번방, 손정우, 갓갓, 조주빈 등등까지 수많은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여전히 여성은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고 정당한 처벌은 없으며 더 나은 대안은 흐지부지 되고 있다. 한국의 성매매 산업은 영화 산업보다 크고 카페의 수보다 성매매 업소가 더 많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카페에 안 가본 사람?"이라고 묻는 것과 "성매매를 안 해본 사람?"이라고 묻는 게 단순 수치로 따지면 비슷한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심지어 주변에서조차 얼마나 또 많은가. 군대에 가서 처음 제일 놀란 것은 스물 초반 나이에 벌써 성매매를 경험하고 그것을 자랑처럼 떠들어대는 인간들을 본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랑처럼 여러 "썰들"을 풀어냈고 주변은 그 이야기를 재미나게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비단 군대 문화 때문일까. 그들은 제대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될까. 아니다, 그들은 제대하고 사회로 나가 여전 성매매를 한다.
이렇듯 성폭력과 성매매가 얼마나 일상에 만연한가. 성희롱과 성추행을 겪어보지 않은 여성이 한국 사회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성폭려은 너무나 많은 곳에 있다.
퍼포먼스로
그래서 조금은 운동(movement)으로써, 그리고 퍼포먼스로써, 성병 검사를 한다. 나는 이러한 문화와 폭력에 반대함을 증명하듯이, 또는 혹시라도 나에게 성병이 있을 수 있으니 예방 차원으로. 반대로 상대방 여성에게는 딱히 요구하지 않는다. 보건소에서 하면 기록이 남고 병원에게 기록이 남지 않게 하려면 비싸다. 그래서 굳이 요구하지는 않는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낙인이 쉬운 사회이니.
보건소 직원은 나에게...
나는 만나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성병 검사를 했다. 두 번 이상 넘어가니까 보건소 직원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혹시 양성이 나오면 전문가 선생님을 불러주겠다고. 내가 자주 성병 검사를 한 기록을 보고 나를 무언가 안 좋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좋은 마음이었으나 여기서 또다시 깨달았다. 성병 검사를 받는 사람은 다 보균자구나. 보균자가 아닌 상태로 검사를 하는 사람은 없구나 하고 말이다.
문득 보건소 직원에게 페미니즘적 이해와 나의 애인의 건강을 위해 성병 검사를 한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게 당연한 사회가 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주변에 멀리 퍼트리고 있다. 우리 모두의 페미니즘을 위해서,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성병 검사는 필수 선택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