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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월 Nov 23. 2020

"보지 달린 게 벼슬인가요?" 은하선 숙대 강연취소사건

(두 이미지는 은하선 페이스북의 글임을 밝힘)





사건 개요

최근 SNS(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은하선 숙명여대 강연 취소 사건'이 화재다.


은하선은 이전에 본인의 가게에 온 여성 두 명이 트랜스젠더와 게이를 혐오하는 것을 보고 쫓아낸 적이 있는데, 이후 자신의 SNS에 "보지 달린 게 벼슬인가요?"라고 글을 올렸다. 사람들은 이 발언이 여성혐오 표현이라고 비판하고 은하선을 강연에서 쫓아냈다.


그렇다면 저 발언은 정말로 여성 혐오 표현일까? 아니라면 무슨 표현일까? 은하선 숙대 강연 취소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혐오표현? 대항 표현?


"보지 달린 게 벼슬인가요?"라고 말했을 때, 이 말은 혐오표현이 될 수도 있고 대항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대항 표현이란, 쉽게 말하면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서) 저항 의미를 가진 표현이다. 


만약 일베 남성이 정수기를 들지 않는 여성을 보고 "보지 달린 게 벼슬인가요?"라고 말한다면 이는 혐오표현이다. 그러나 은하선의 경우처럼, 트랜스젠더와 게이를 혐오하는 여성에게 "보지 달린 게 벼슬인가요?"라고 한다면 이는 대항 표현이 될 수 있다. 즉 여기서 트랜스젠더와 게이에게 혐오 표현을 한 여성은 (차별 또는 혐오 표현을 한)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상황에서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저 발언의 맥락이다. 일베 남성이 한 말은 정수기를 들지 않는 여성(그놈의 정수기 얘기도 이후에 쓸 예정)을 비하하는 말이고 반대로 은하선이 한 말은 트랜스젠더와 게이에 대해 혐오하는 사람을 비판하기 위한 대항 표현이다.


이때의 상황은 마치 명절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만 있는 남성들에게, "꼬추 달린 게 벼슬인가요?" 하는 말과 유사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꼬추=남성특권=명절에 왜 남성은 가만히 앉아서 일을 안 하는지?, 라는 도식을 형성한다. 즉 꼬추라는 남성 정체성을 들먹이며 여성만이 가사노동하는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하선도 보지=(시스젠더 또는 헤테로) 여성의 특권, 을 도식화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특권을 간과하고 상대방의 약자성을 모욕한 손님들을 비판한 것이다. 


여성이라고 언제나 혐오표현 객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도 혐오표현을 할 수 있다. 일베 남성의 여성 혐오 표현과, 시스젠더 여성이 트랜스젠더 여성을 공격하거나, 헤테로 여성이 퀴어 남성을 공격하는 것은 (각 맥락마다 당연히 다르겠지만) 모두 혐오 표현이다.



'여성'은 약자인가

여성은 약자일까? 이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여성은 약자가 아닐 수 있다. 아니, 정확한 대답은 여성이 약자인지는 상황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여성 내에서도 더 강한 여성이 더 약한 여성(가장 유명한 예로 콜린스의 <흑인 페미니즘>: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을 차별할 수도 있다. 여성은 단일한 공동체가 아니다. 계급이, 사는 곳이, 성 정체성이, 학벌이 다를 수 있다. 


서울에 사는 명문대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과, 지방에 사는 고졸 퀴어 여성이 같은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여성을 같은 존재로 치환하여, 이들이 그러므로 같은 약자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여성이 남성보다 강자일 때

이 논리를 이어가면, 여성이 남성보다 특권을 갖고 있을 때도 있다. 명문대 여성이 고졸 남성에게 혐오 표현을 할 수 있다. 헤테로 여성이 퀴어 남성에게 혐오 표현을 할 수 있다. 서울 사는 여성이 지방에 사는 남성에게 혐오 표현을 할 수 있다. 비장애인 여성이 장애인 남성에게 혐오표현할 수 있다. 


미디어와 언론에서는 여성이 약자인 상황을 은폐하고 남성의 가상의 약자성을 발휘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IMF 때 여성의 실직률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았는데 남성의 실업률만을 다룬 것. 그래서 IMF 때 아버지들은, 가장은 눈물을 흘리는 것. 그에 반해 여성의 눈물은, 여성의 취약함은 아예 드러내지도 주목하지도 않았다는 것. 이럴 때는 당연히 여성의 약자성이 구조적으로 은폐되었으니 드러내고 짚어내는 게 맞다. 그러나 이 부분과 은하선 사건을 일맥상통하게 보면 안 된다. 은하선은 여성의 약자성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혐오 표현을 지적한 것이다. 


남성이 혐오표현을 했다고 그의 소수자성을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를 들어, 전라도에 사는 남성이 여성혐오 표현을 썼다고, 그걸 듣고 화나서 일베처럼 그 남성을 욕해도 되는가? 이것이 그동안 여성을 침묵하게 한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해도 되는 행위인가? 모두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이를 용납해도 되는 것인가?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아니라고 하면 가끔 어떤 이들은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을 비교한다. 독립을 위해 폭탄을 던져도 되는 것처럼, 이때는 잘못한 남성의 소수자성을 공격해도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 말이 이렇게 들린다. 독립을 위해 일본 여성을 공격하자! 이것이 독립운동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인가? 이것이 정말로 여성운동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그 구분은 읽는 분들이 판단하시길 바란다. 



결론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에서 주로 교차성을 간과하고 비판할 때가 많다. 은하선을 비판한 숙대 동아리들도 모두 래디컬인 점을 보면 말이다.


여성은 단일한 주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건드리는 것은 모두 여성혐오로 연결된다, 라는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에 저런 오독이 생긴 게 아닐까 한다. 남녀가 함께 있을 때 여성이 더 강자일 때도 분명 있다. 남성이 약자성을 갖고 있을 때도 당연히 있다. 이 부분을 잊고 여성이 무조건 약자라고 단언하는 것은 여성주의적 사고방식 거리가 먼 가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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