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배우 이진욱은 "꽃뱀"에 의해 억울한 성범죄 사건에 휘말렸으나, 당당하게 자신의 무죄를 증명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꽃뱀 참교육" 키워드를 검색하면 이진욱 사진이 인터넷 밈처럼 돌아다닌다. 경찰 출석할 때 이진욱의 당당한 표정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판례를 찾아보았다. 사실 이진욱 사건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본 적도 있었는데 (소속사인지 이진욱 팬인지 모르겠으나) 신고를 당해서 업로드한 글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열심히 올린 글이 사라지니 짜증이 나서 포기했으나 기여코 다시 이 사건을 파헤쳐보기로 했다.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6. 14. 선고 2016고단9011 판결
2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2. 7. 선고 2017노2323 무고
판결을 보고 싶은 사람은 참고하길 바란다.
글을 쓰기 앞서
일단 위 판결(원심 & 2심) 링크는 무고죄를 다룬다. 즉 이진욱이 여성을 무고죄로 고소한 사건의 판례이다. (여성이 이진욱을 성폭력으로 고소한 판례가 아니다.) 이 두 판례에서 우리가 쟁점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바로 '성범죄를 바라보는 태도' 자체이다. 1심은 '피해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무고죄를 무죄로 판결하였고 (이진욱이 여성을 꽃뱀으로 고소했는데 법원(원심)은 그게 아니라고 판단함), 2심은 '이진욱의 입장'에서 판단하여 집행유예(2심은 여성을 꽃뱀으로 판단한다.)를 선고한다. 두 가지 모두 서술할 테니,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한다. (나는 이 글에서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사건 개요
이진욱은 라멘집에서 지인과 밥을 먹다가 지인이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A를 부른다. A는 그 둘과 식사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이진욱은 지인에게 A의 번호를 물어본다. 이진욱은 저녁 11시에 A에게 연락한다. 집에 가도 되는지 물어본다. A는 거절하고, 이진욱은 한 차례씩 문자와 전화를 한다. 결국 A는 이진욱이 집에 오는 것을 허락한다. 이진욱은 A집에 도착하여 메이크업이 불편하다며 씻고 싶다고 한다. 이진욱은 샤워한 후 속옷을 입지 않고 나와 A와 합의된 섹스(이진욱 주장)vs성폭행(A 주장)한다. 이진욱이 집에 돌아간 후 는A 친구에게 현 상황을 알린다. 조언을 받은 A는 다음 날 병원에 갔으나 진료를 거부당한 후 친구의 아는 변호사를 소개받아 이진욱을 고소한다.
페미니즘의 관점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여성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면 과연 섹스를 허락한 것일까?'이다.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남성이 DVD방에 가거나 모텔에 가거나 집에 가면 여성이 섹스를 허락했다고 착각한다.
남성들은 여성 자취방에 들어가기 위해 세상 무해한 척 다 한다. 더워서 씻고 싶다, 버스가 끊겼다, 집에 있는 기구를 고쳐주겠다, 술에 너무 취했다 등등. 섹스가 하고 싶고 허락을 받으려면 "나 섹스하고 싶어!!!"라고 말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왠지 그렇게 물어보면 당연히 집에 못 들어오게 할 것 같으니 일단 다른 이유를 말하고 어떻게든 집에 들어간다. 그러고는 집에 들어가면 "앗? 너 나 집에 들어오게 함? 그럼 우리 섹스함? 네가 허락한 거임! 합의한 거임! 우리 섹스하는 거임!" 착각하면서 들이대기 시작한다. 남성도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섹스를 안 할 것처럼 굴지 않았는가? 결국 남성도 스스로 알고 있다. 무해한 척 들어가고 그다음부터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그 범죄 전략을. (하지만 이들은 정말 모르기도 하다. 무의식적으로 알면서도 의식적으로는 '정말' 모른다. 그러니 억울해한다. 그러니 피해 여성을 꽃뱀으로 만든다. 문 열어줬는데? 그럼 섹스한 건데? 잠깐 지갑을 맡겼다고 그 안의 모든 것을 가져가도 되는 건 아니다. 아니 이런 걸 일일이 알려줘야 해?) 그러니 무해한 척하며 집에 들어가지만, 들어가고 나면 돌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범죄라고 부른다.
이진욱은 섹스를 하고 싶었다.
판결문을 보면 애초에 이진욱은 섹스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밤 11시에 전화한 거겠지. 여성은 이진욱을 그날 처음 봤다. 그리고 판결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피고인은 D에게 고소취소 등의 대가로 금전을 요구한 바도 없고 사건 당일 D와 처음 만난 관계에 불과하여 오래된 개인적 원한이나 적대적 이해관계를 가질일도 없었다.
피고인= 피해 여성
D= 이진욱
판결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여성은 금전 요구도 없고 원한도 없다." 그러니 만약 여성이 꽃뱀이라면,
여성은 "꽃뱀"이지만 금전을 요구한 적도 없고, 사건 당일에 이진욱을 처음 만났고, 개인적 원한도 적대적 이해관계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여성은 이진욱을 고소했는가? 돈도 필요없고 원한도 없고 그날 처음 만난 남성 배우 이진욱을? 대체 왜 왜 고소했는가? 그냥 재미로? 심심해서? 갑자기 이진욱이 싫어서? 아니지 원한 없다잖아. 그럼 왜? 아니 정말로 왜? 판례 공부하려고? 아주 악질적인 꽃뱀이어서 돈도 원한도 없어도 그냥 막 고소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성폭력이니까. 성폭력 피해를 입었으니까 고소를 했겠지.
꽃뱀이면 이 사건은 진짜 이상해진다. 개연성이 하나도 없다. 반대로 성폭력이면 그냥 이해가 된다.
이게 수많은 성폭력 사건의 전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성폭행의 개념이 최협의설을 따른다. 즉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한 적이 있어야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말이다. 이게 참 웃긴 게 폭행죄를 한번 최협의설로 이해해보면 바로 알 것이다.
폭행을 했을 때 당신은 무조건 저항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암묵적으로 폭행에 동의한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때렸는데 가만히 있었다? 당신은 맞는 걸 동의한 것이다.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저항했어야 하지 않는가? 왜 가만히 앉아서 맞고만 있었는가? 바로 당신이 폭행을 즐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평등 인식이 높은 나라에서는 사전동의 개념을 성범죄를 판단한다. 즉 성관계는 사전동의가 필요하다.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그럼 섹스할 때 다 글이든 말이든 뭐든 일일이 동의를 받으라는 것이냐? 맞다. 그렇다는 것이다. (암묵적인 동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거절해도 못 알아듣는 게 문제라는 거지.) 그런데 섹스는 사적 관계에서 있는 은밀한 행위이다. 충분히 교감을 갖고 친분이 쌓인 상대는 사전동의가 다른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합의될 수 있다. 사전동의를 받지 못했다면 과감하게 섹스는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
그렇다면 왜 2심은 왜 집행유예(여성이 꽃뱀이 맞다라는 판결)를 내렸을까?
바로 피해자다움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2심은 모든 사안을 남성 중심적으로 판단하였다.
2심 판사의 중점은 이것이다. 여지를 주었다는 것. 이진욱을 집에 들였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당연히 섹스를 동의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 갑자기 여성이 이진욱을 고소해? 금전 이유도 없고 당일에 만나서 원한도 없는데? 이유가 그럼 뭐지? 아 섹스하고 다음 날 이진욱이 연락하지 않아서. 그래서 여성은 이진욱을 고소했다! 자존심이 상해서! 수치심이 들어서! (12일 범행, 14일 고소인데 하루 연락이 안 되어 여성은 화가 나서 이진욱을 고소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2심 판결은 계속하여 여성이 얼마나 헤픈 사람인지, 가벼운 사람인지, 섹스에 개방적인 사람인지 설명한다. 판사는 이진욱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다. 저렇게 헤프고 집에 아무 남자나 초대하는 여자인데 당연히 섹스도 허락한 거겠지! 그래 놓고선 다음날 돌변하다니 참 이상한 여자야. 거의 이런 식이다. 2심의 판결을 보면 이 시대의 가부장제적 사고방식을 볼 수 있다. 판사는 이진욱의 의견에 치우쳐서 사고한다.
1심은 왜 무죄를 선고했나.
원심 판례 중
앞서 본 바와 같이 성관계가 있은 다음날 친구인 H의 조언을 듣고 일반병원을 거쳐 경찰병원으로 가 고소를 하게 된 것으로 피고인의 고소 경위가 매우 자연스러운 점, 피고인이 D을 모함할 의도로 허위 고소를 하였다고 볼 사정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보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하였다는 피고인의 진술을 합리적 이유 없이 허위라고 배척하기는 어렵다.
D이 블라인드 설치를 해 주겠다고 하면서 피고인의 집으로 찾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피고인을 상대로 성행위를 한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순간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여지도 충분하여 피고인이 그러한 두려움으로 적극적 저항을 하지 못하였다는 진술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도 없다.
*피고인=피해 여성
*D= 이진욱
여성이 이진욱을 집으로 부른 건 그냥 부른 거다. 집에 초대했으니 물건을 훔쳐가라는 무언의 허락이 아니듯이, 집에 초대했다고 섹스에 동의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진욱은 곧바로 "아 집에 초대했으니 섹스하라는 것이구나, 섹스해야지!" 하고 피해 여성에게 성행위를 했고 여성은 순간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범행 과정에서 속옷과 옷이 늘어났고 몸에 가벼운 타박상이 생겼다고 한다.
반대로 2심을 읽으면 이진욱이 정말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 1심과 2심을 비교해서 읽어보길 바란다. 요약을 하자면,
1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진욱은 피해 여성의 집에 갔고, 집으로의 초대가 섹스 허락인 줄 알고 했는데 여성이 거부했으며, 이진욱은 그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후 여성은 이진욱을 고소한다.
2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금전 목적 없고, 원한도 없으나 섹스한 후 자신을 갖고 놀았다고 생각하여 너무 화가 나서 여성은 이진욱을 고소한다.
이렇게 된다.
사전동의 개념만 있어도 그 사건은 명백한 이진욱의 범죄로 판결났을 것이다. 아니, 사전동의 개념이 있다면 무수히 많은 사건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없어도 그런 식으로 판결해서는 안 되었다.) 안희정 사건에서 보듯이, 판사는 안희정의 가해행위를 물어보지 않고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물어본다. 대체로 성범죄 사건은 이렇다. 성이 들어가는 모든 것은 편견이 가득하다.
추가 요약 결론
2심 판결에서 여성을 "헤프게" 보고 있다. 이 여성은 이진욱 지인과 "섹스"를 한 사이고, 남자친구가 "따로" 있고, 이진욱이 집에 왔을 때 "야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 단어를 조합하면 한국사회에서 이 여성은 헤픈 여성이 된다. 그리고 헤픈 여성과 한 섹스는? 대체로 합의와 동의가 있다고 간주된다.
판사는 이 여성을 헤픈 여성으로 보았다. 헤픈 여성은 섹스를 함부로 하고 그러니 이진욱을 고소한 것은 성폭행 때문이 아니라 무고라고 본 것이다. 중요한 건 이진욱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자신의 지인이 어떻게 이 여성을 소개한 것인지 모르지만, (상상해본다면) 이진욱 지인은 이 여성을 헤픈 여성이라고 소개했을 것이다. 본인도 이미 섹스를 했으니 너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셋이 있을 때 이진욱이 블라인드를 잘 고치니 이진욱에게 부탁하라고 운을 띄운 거겠지. 이진욱은 이 여성과 섹스를 할 생각이었다. 이 여성이 헤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섹스를 하러 집에 갔고, 샤워를 하면서 속옷을 벗고 나왔고, 그리고 바로 동의없이 섹스를 시도했고.
가해자의 행동을 보지 않고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언행, 행실 등을 토대로 성범죄를 판단하면 안 된다.
중요한 건 여성이 "헤퍼"지면, 성범죄가 쉽게 용인된다는 것이다. 이진욱은 이 여성을 헤프게 보아서 동의 없는 섹스를 시도했고, 판사도 이 여성을 헤프게 보고 무고죄 유죄판결을 준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것을 보고 긴가민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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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추가 요약 결론]을 쓸지 말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결국 내가 이 여성의 행실을 구체적으로 쓰게 되는 것은 아닌지? 괜한 지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이걸 읽고 여성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돌아서는 건 아닐지. 사적인 정보를 너무 많이 드러내서 (아무리 판례에 써 있다고 하지만) 2차 가해에 가담하는 건 아닌지.
결국 이 내용을 썼던 건, 2심 판결의 태도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당신이 교통사고를 냈을 때 당신의 평소 거짓말하는 행실을 토대로 이를 보험사기로 직관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게 정상이다.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사건을 바로 보지 못하는, 그리고 피해자의 행동과 평소 행동을 문제삼는 당신이 유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