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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Nov 20. 2020

그들은 어쩌다 최악의 손님이 되었나



얼마 전, 인터넷에서 '카페 손님 별 난이도'라는 글을 보았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5-60대 남성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최상급 난이도의 손님이었다. 그들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그들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난이도 최하의 손님으로 꼽힌 20대 남성과 비교하자면,( 동네 병원은 애초에 20대 남성이 자주 오지 않는 곳이지만 가끔 감기 같은 잔병 때문에 오더라도) 그들의 등퇴장은 아주 조용하다. 이에 비해 5,60대 남자들은 문을 열면서부터 '자, 지금부터 싸우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등장한 그들은, 환자 이름을 적는 노트에 대충 글씨를 갈겨쓰고 팔짱을 끼고 서서 우리를 노려본다. 알아보기 힘든 글씨 탓에 "혹시 성함이 홍길동 씨 맞으세요?'라고 확인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기 썼잖아!!!!"라며 초면에 반말과 화를 섞어서 대화를 트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중년 남성들이다.




그들은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며, 무례하다.



검진 문진표를 작성하다 말고 갑자기 "지금 나 숙제시키는 거야?"라고 탁탁  종이를 내려친다거나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왜 이렇게 오래 걸려?'며 눈을 부라리는 것도 그들이다. 당연히  말끝은 다 짧다. 물론 중년 여성들도 잘 따지고 예민한 편이지만, 그 점은 2-30대 여성들도 비슷해서 두 연령층 사이의 갭은 그렇게 크지 않다. 그러나  20대와 5-60대 남성들 사이의 간극은 30년의 세월만큼이나 크다.



20대 때는 그들도 순수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을 텐데, 그 30년 동안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갑자기 최하 난이도에서 최강 난이도로 점프버린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병원에서 중년 아저씨들을 겪으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그들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화를 낸다는 것. 예를 들면,



     나        :   오늘 1차 검진도 같이 하실 건가요?

아저씨      :   1차 검진이 뭐야?

    나         :   가장 기본적 검진으로, 혈액, 소변 X-ray검사 등을 말합니다

아저씨      :   그럼 2차 검진은 뭔데?

    나         :   예? ???

아저씨     :    1차가 있으면 당연히 2차가 있어야 될 거 아냐?



 반말은 일단 접어 놓자. 별로 중요하지 않내용에 대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는 것에 주목하자.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 드릴까요 아니면 아이스커피 드릴까요"라는 알바생의 2지선다형 질문에 "아니 이 날씨에 내가 차가운 걸 먹겠어?"라고 굳이 서술 답안을 제출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한창 바쁠 때 이 말꼬리의 수렁에 빠지게 되면 정말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들은 특히 나이가 어린 직원에게 강하게 군림한다는 점이다. 순하게 생긴 20대 여직원이 실수를 하게 되면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다가 중년 아줌마의 나름 억센(?) 얼굴을 한 내가 대응하면 화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다가 덩치 좋은 중년 남자 과장이 구원투수로 나타나면 말투가 부드러워지면서 급하게 상황을 자체 종료하는 식이다.







내가 겪어 본 5-60대 남성들. 그들은 정말 갑질 of 갑질, 갑질 그 자체이다.




그들은 우리가 눈치빠른 부하직원처럼 행동해 줄 것을 기대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센스 있게 알아서 불편함을 제거해주며

큰 소리 한 번 내면 알아서 설설 기기를 원한다




그들이 가장 화를 많이 내는 경우를 살펴보면 주로 우리가 센스 없이 되묻는다거나 자신의 생각에 납득되지 않게 일처리를 하고 있거나 혹은 업무 중 버퍼링이 걸려 버벅거릴 때이다. 그들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폭탄처럼 지니고 있다가 느려 터진 아들놈이나 뺀질거리는 신입 직원 같아 보이는 우리를 만나면 이곳이 집이나 회사가 아닌, 병원이라는 것도 잊고 그만 안전핀을 뽑아 버리는 것이다.







30년간 가정과 회사를 위해 달려왔지만 어느덧 노답 꼰대충으로 전락해버린 자신을 발견한 그들은 매우 당스럽고 허무하다. 가정과 직장에서 소외를 당함으로써 생긴 분노 그들은  뜬금없이 제3의 장소(편의점 혹은 카페, 병원)에서 터뜨리고 있다. 그리고 그 갑질에 찍소리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의 힘이 아직 건재하다는 느낌받게 된 그들은 필을 받아  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식의 갑질을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들의 갑질의 원인 중에는 과거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부과한 의무와 부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만일  30년 동안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왔다면 지금, 그들은 우리에게 훨씬 너그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구석이 있을거라고 그렇게 그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그들을 겪어내기는 힘들다. 30년의 세월을 연구한다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그들은 역시 최고 난이도 손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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